절차만 정당하면 오케이?…좋은 언론-교육 전제돼야
6.13지방선거, 자칫 체제변혁의 문을 열까 두려워
   
▲ 조우석 언론인
"투표 잘못하면 인민민주주의로 가는 문이 열릴 것"이란 경고가 등장했지만, 그걸 귀 담아 들은 이는 없었다. 국가체제를 바꾸려는 세력의 헛꿈을 키워줄 순 없다는 견제론 역시 먹히지 않았다. 집권여당의 사상 최대 압승, 보수 야당의 궤멸로 나타난 6.13지방선거는 그래서 걱정이다.

사실상의 중간평가인 이번 선거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표를 받아든 문재인 정부의 폭주를 앞으로 어찌할 것인가? 더 큰 쇼크는 대한민국 하늘에 구멍이 뚫린 점이다. 지방선거 결과가 나름 예상됐던 것이라면, 하루 전날 미북정상회담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격이었다. 떠버리 미 대통령이 만들어낸 대형 참사이자, 미국의 대북외교 70년 역사상 최악이었다.

졸렬한 4개항 합의문도 걱정이지만, 미 최고지도자의 입에서 미군철수 얘기가 그날 거푸 세 차례 나온 것 자체가 최악의 안보위협을 말해준다. 나쁜 소식은 그걸로 끝이 아니다. 국내정치-외교안보 동반위기에 더해 경제위기까지 덮치는 재앙적 상황이 실로 걱정인데, 앞으로 2~3년이 관건이다.

그런 음울한 예측은 6.13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당혹스러운 국민의 선택 때문에 불가피하다. 이렇게 미욱할 수가 있을까? 각종 매체들은 '6.13 민심'을 놓고 표피적 해석에 매달리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유권자들은 12년 전 16개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1대 15로 쪼그라들었던 민주당(당시 여당 열린우리당)을 12대 4로 일으켜 세웠는데,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결과다.

판단의 잣대가 없고, 원칙 역시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일테면 패륜 막말에 여배우 스캔들까지 일으킨 경기도지사 후보 이재명의 55% 득표율은 어찌 해석해야 할까?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의 몸통 김경수를 당선시켜준 경남도민의 선택도 실로 당혹스러운 결과다. 광역단체장만이 아니라 지방의회까지도 민주당이 독식했다.

결정적으로 민주당은 신익희-조병옥-장면을 뿌리로 한 정당, 미국 민주당 같은 리버럴 성향이 아니라 운동권 좌파정당으로 DNA를 바꾼 지 오래다. 그런데 유권자 누구도 그 점에 신경 쓰지 않는다. 반면 자유한국당 소리가 나오면 모두가 고개를 돌린다. 그 결과 이번 선거에서 그 당을 TK지역정당으로 축소시켰다.

일테면 박정희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구미의 기초의원 비례대표 득표에서 민주당은 44.3%를 얻어 자유한국당(41.3%)을 눌렀다. 누구 말대로 보수의 패배를 넘어 폐기처분일까? 이번 지방선거 결과만 놓고 보면 대한민국 유권자들의 마음에서 보수정당은 지워지고 말았다.

그 당의 몰락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잘못된 대응 때문에 이미 예고됐다지만, 그걸로 다 설명되는 건 아니다. 어쨌거나 건국 이후 자유민주주의라는 이 나라의 헌법적 가치를 대변해온 것은 보수당이 아니던가? 앞으로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의 깃발을 누가 떠메고 갈 것인가? 오래 전부터 이념적 합의가 깨진 대한민국의 현주소 확인에 가슴 철렁하다.

   
▲ 추미애 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의원들이 13일 저녁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서 6·13 지방선거 개표방송을 시청하며 민주당의 압승을 예측하는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환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6.13 지방선거의 결과를 둘러싼 가장 쉬운 설명은 이렇다. 대한민국 유권자들이 이미 무상복지의 달콤함에 빠져들었고, 적폐청산의 구호를 개혁으로 착각했으며, 판문점 회담-미북정상회담 등을 남북관계 개선의 청신호로 받아들인 나머지 문재인 정부에 후한 점수를 줬다는 것이다.

그런 진부한 설명과 달리 좌파에 대한 묻지 마 선호, 우파에 대한 눈먼 분노가 대입된 결과가 6.13 선거의 결과라고 나는 본다. 눈먼 대중의 비이성적 행태 그대로다. 절차적 정당성이 전부인 선거민주주의에 환멸은 그래서 불가피하다. 균형 잡힌 언론환경과 시민교육이 전제되지 않는 선거민주주의란 잘해 보니 중우정치이자, 폭민(暴民)정치의 장식물에 불과하다.

그런 선거민주주의 맹점으로 흔히 드는 역사상의 사례가 두 가지다. 히틀러를 총리로 당선된 1933년 독일 선거, 아옌데를 대통령으로 뽑아 사회주의 실험 3년에 국가를 거덜 냈던 칠레의 1970년 대선…. 하지만 6.13 지방선거의 예상되는 해악은 그 이상일 수 있다.

여전한 분단 상황에 선거를 통한 체제변혁 민중혁명으로 연결되는 아찔한 그림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 5월 대선과 함께 체제전쟁이 시작된데 이어 이번 지방선거에서 디테일까지 완성됐다. 문재인 정부 1년의 성적표도 우리가 다 안다. 국민 삶은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다. 소득 주도 성장이라는 비현실적 정책으로 실물 경기는 더 안 좋아졌다.

최저임금 인상은 편의점에서 중소기업-대기업까지 주름살을 가게 했고, 국민 세금을 퍼붓는 포퓰리즘으로 일관하고 있다. 문재인 식 국가경영은 중남미 '룰라+차베스'의 복사판이다. 청년 실업률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고 주력 산업의 위기 상황도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유권자들이 집권여당에 눈먼 지지를 보낸다는 것은 합리적 이성의 선택이 아니며 집단마취 효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경제위기가 본격화되고, 위장평화가 파탄 나며 인민민주주의 등장 등 지옥의 문이 활짝 열리는 순간 무릎을 친다 해도 때는 늦을 수도 있다. 그게 남북관계의 큰 변화와 함께 찾아올 경우 상황은 정말 걷잡을 수 없다.

일테면 앞으로 1~2년 새 연방제 통일이 추진될 것이고, 덩달아 국가보안법 폐지, 미국철수 등의 변수로 한반도 상황이 출렁일 것이다. 급기야 외국 자본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뜻밖의 경우도 예상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북한에 최소 연 300억 달러(32조 원)씩 10년 동안 경제지원금을 쏟아 부어야 한다.

그런 게 우리 힘으로 감당 가능한가? 내우외환 차원을 넘어 재앙적 상황이란 표현은 그래서 불가피하다. 표피적 진단과 섣부른 처방이 대세인 지금 누군가 본질을 묻고 성찰을 거듭해야 한다는 명제를 재확인한다.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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