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제조업 보조금 타격, TCA 가입 불가"
업계, 국가경쟁력 약화·소비자 편익 저하 우려
   
▲ 최주영 산업부 기자.
[미디어펜=최주영 기자]"5년간 4000억원을 세금으로 내라는 것은 사실상 영업을 하지 말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입니다. 규제를 풀어줘도 모자랄 판에 업체들의 분기 영업익 합산치와 맞먹는 세금을 물리려고 하다니 너무합니다."

요즘 항공업계 종사자들을 만날 때마다 한 결같이 들려오는 푸념이다. 정부가 가입국끼리 항공기 정비 부품을 거래할 때 관세를 면제하는 ‘세계무역기구(WTO) 민간항공기협정(TCA)’에 가입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항공업계가 볼멘소리를 내고 있는 것. 

그동안 항공 부품은 대부분 비관세가 적용됐지만 내년부터 관세면제 제도가 일몰 폐지됨에 따라 관세가 붙게 된다. 이에 상호 협정 체결국 간 관세가 면제되는 TCA 가입이 차선책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정부는 TCA 가입에 별 관심이 없는 모습이다. 

정부의 논리는 이렇다. TCA 협정에 가입하면 대한항공, 아시아나를 포함 일정 규모를 갖춘 일부 민간 기업에만 관세 특혜가 제공될 소지가 높고(기재부), KAI 등 민항기 제조사에 대한 보조금 지원이 금지되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산업부)는 주장이다. 

그 동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정부에 가입 당위성을 호소해 온 항공업계는 크게 실망한 눈치다. 최근 항공기상정보료 기습 인상, 중동항공사 가격 덤핑 심화 등 비우호적 시장 환경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국가 협정상 세금감면을 일부 기업에 대한 '특혜'로 몰아세우는 듯한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항공선진국인 미국과 프랑스, 스웨덴도 항공산업 보조금을 통해 세금 감면 혜택을 받고 있는 실정으로, 현장을 모르는 소리"라며 "항공기가 고장나도 부품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지 못한다면 안전 운항은 고사하게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한 기업 임원도 “미국은 무역전쟁까지 불사하며 자국 기업 보호에 열을 올리는데, 우리 정부는 적폐 대상으로 보고 규제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산업부가 TCA 협정 가입 반대의 근거로 '민항기 제조업체의 보조금 지급 폐지가 우려된다'며 업종 간 차별방지를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을 한 점도 항공업계로서는 고민이다. 항공운송과 제조분야를 포함해 항공산업 전 분야에 걸쳐 적용 가능한 TCA 협정의 주도권을 쥔 산업부의 역할이 과연 형평성에 맞는 것인지 의구심을 표하는 분위기다.

산업부는 과거부터 15대 산업엔진 프로젝트로 추진 중인 무인항공기를 포함해 미래 항공기 기술개발에 적극 지원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국제협정 가입에 따른 위험성 및 행정력 소모를 피하기 위해 보조금을 문제삼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흘러나온다.

오히려 TCA 가입은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거라는 해석도 나온다. 수 조원대 개발비용을 필요로 하는 제조업종이 위험부담을 줄이려면 국제공동개발이 필요하고 이 경우 각지에서 부품을 수입해야 하기 때문에 관세 면제를 받는 만큼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항공운송업은 TCA에 가입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현장에 미칠 파급력이 어마어마하다. 내년부터 대한항공, 아시아나 등 5개 항공사가 납부해야할 세금은 연간 250억원이 늘어나며 비관세제도가 완전 폐지되는 2023년부터 1500억원의 세금이 부과될 예정이다. 5년간 예상 납부 세금은 총 4000억원에 달한다. 

관세감면율이 20% 감소할 때마다 매년 수백만명씩 늘어나는 항공여객을 감당하기가 버거워 질 것이라는 계산이 가능한 이유다. 항공 부품 관세 도입은 곧 원자재 등 원가 상승으로 이어져 자연스럽게 항공료가 인상돼 소비자 편익 저하를 야기할 수도 있다. 

정부는 TCA 가입을 반대하는 합당한 명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대기업 vs 중소기업' 프레임을 씌워 업계간 감정싸움을 불러일으키는 식의 발언은 삼가야 한다. 

우리나라 항공산업에서 항공운송업은 제조업 대비 압도적인 규모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경우 결국 국가경쟁력 하락은 자명한 일이다. TCA를 담당하는 산자부와 국내 관세 감면을 담당하는 기재부의 전향적 검토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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