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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거목 JP의 공과 과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끈 현대사의 큰 이름
90년 3당 합당, 97년 DJP연합은 평가 엇갈려
편집국 기자
2018-06-26 10:05

   
조우석 언론인
전반적으로 썰렁하다.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의 타계 뒤 추모 분위기가 그러한데, 대통령 조문을 하지 않기로 했고 관례인 훈장 추서조차 논란 속에 겨우 수여하는 절충안을 정부는 선택했다. 언론에서는 '우파 유죄, 좌파 무죄'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먼저 간 3김(金) 중 둘에 대한 국민적 추모 물결에 비해 이번엔 의례적 수준에 그치거나 냉소를 깔고 있다.


이럴 줄 알았지만 유감천만이다. JP가 누구이던가? 5·16군사혁명으로 산업화를 이끈 주인공이지만 동시에 민주화 과정에도 깊숙하게 영향력을 드리운 대(大)정객인데, 이런 홀대라니…. 그게 오래 전부터 이념적 합의가 깨진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입맛이 쓰다.


이런 상황에서 JP에 대한 평가가 소극적인 것도 당연하다. 본인은 오래 전 "박정희는 혁명의 지휘자였고, 나는 혁명을 설계했다"는 자부심 섞인 말로 5.16당시 자신의 역할을 회고한 바 있다. "제2의 이완용이 되더라도 하겠다"며 추진했던 한·일 국교정상화를 통해 받은 배상금은 포항제철과 경부고속도로 등에 쓰이며 대한민국의 밑거름이 됐다.


인생 후반전도 화려해 1990년 3당 합당으로 김영삼 정부 탄생에 기여를 했다. 1997년 이른바 DJP연합으로 김대중 집권을 돕기도 했다. 쉽게 말하자. 현대정치사에 JP란 존재가 없었더라면 얼마나 쓸쓸했을까? 우리 정치에 멋과 숨 쉴 공간을 만들어 줬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지 않다.


그러나 냉정함이 필요하다. JP를 과연 어떻게 봐야 하는가? 우파, 특히 대한민국 정통을 생각하는 진영에서 JP에 대한 평가는 좀 더 냉정할 필요가 있는데, 지금의 국가위기 속에서 그런 공과(功過)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본 JP의 과오는 무원칙이다. 모시던 1인자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확신이 과연 충분했던가? 그 점이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래서 끝내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짜 보수에게 길을 터준 과오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1990년 3당 합당이 그 계기인데, 자신은 소련-동구의 몰락 등으로 정치적 안정이 당시 대한민국에 필요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그 결과를 우리는 잘 알기 때문에 JP의 선택에 호의적일 수가 없다.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표가 대권을 쥔 이후 국내정치권에 운동권 세력이 대거 유입됐다. 대통령 직선제가 채택된 이른바 87년 체제 이후 국내 정치는 '사실상의 좌우합작' 단계로 성큼 진입했는데, YS의 등장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던 것이다. 특히 역사 바로 세우기란 이승만-박정희 이후 대한민국 현대사를 부정하는 흐름을 만들었다.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의 타계 뒤 추모 분위기가 그러한데, 대통령 조문을 하지 않기로 했고 관례인 훈장 추서조차 논란 속에 겨우 수여하는 절충안을 정부는 선택했다. 언론에서는 '우파 유죄, 좌파 무죄'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사진=연합뉴스


특히 5공 청산 특별법에 따른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법정 세우기 역시 득보다 실이 많았다. 촛불집회에 대통령 탄핵 등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폭민(暴民)정치도 그때 씨앗이 뿌려졌다. 이런 게 JP가 원하던 대한민국 현대사이고, 3공화국의 유업을 잇는 정당한 과정이던가?


놀라운 것은 이에 대한 JP의 성찰 내지 비판이 없었던 점이다. 외려 거꾸로다.  "국민을 다스릴만한 소양이 있기 때문에 YS가 대통령이 된 것이다.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채색으로 역사를 칠했다"(<김종필 증언록>2권 210쪽)고 그는 술회했다. 당혹스럽다. 자신이 창당한 민주공화당의 이념적 정체성을 스스로 허문 결과에 대해 이렇게 말하다니….


김대중에게 권력을 넘겨준 DJP 공동정권을 둘러싼 논란도 지금껏 그치지 않는데, 이 역시 점검해볼 요소다. '호남+충청'연합이 영남세력을 야당으로 만든 지역정치의 결과 때문만이 아니다. 이승만-박정희 이후 대한민국 정통의 이념적 합의와 사뭇 다른 정치인인 김대중(DJ)이 집권했고, 그게 노무현-문재인 좌파정부로 이어지고 있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JP의 반성은 없었다. 외려 증언록에서 "DJ는 진짜 공산주의자는 아니다"고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DJ는 용공(容共)이 아닌 용공(用共)이라고 표현하며 그에게 씌워진 혐의를 벗기려 애썼다. 이미 우리는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며 북한을 옹호했던 DJ의 실체를 다 알고 있다. 더욱 놀라운 건 따로 있다.


그런 DJ가 집권한 것이야말로 호남의 상처를 씻어주는 길이며, 그게 박정희 대통령을 위한 길이라고 김종필은 강변을 한다. 이런 게 유연함이고, 실사구시일까? 반복하지만 그의 과오는 정치적 무원칙이며, 현대사에서 가짜 보수에게 길을 터줬다고 하는 비판이 쉬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그런 JP는 5.16혁명 이후 유지해온 명실상부한 2인자 신분에서 어느 날 조력자의 신분으로 바뀌었다. 10월유신 이후부터 일어난 변화다. 그가 끝내 3공화국 이후 벌어진 근대화 프로젝트의 바통을 잇는데 실패했다는 뜻인데, 그건 그에게 개인적 실패이겠지만, 한반도 모더니즘의 꿈이 온전히 안착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거듭 아쉬운 대목이다.


왜 그랬을까? 이점 논란의 여지가 많은 대목이지만, 포괄적으로 말하는 게 좋을 듯싶다. 결국은 그의 경륜과 태도가 최고권력자 박정희의 마음에 흡족하지 못했다는 뜻이 아닐까? 그걸 두고 재승박덕(才勝薄德)으로 푸는 이가 상당수인데, 나 역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만년의 그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나를 옆에 두면 거북해하고, 막상 없으면 아쉬운 존재로 여겼다." 그걸로 자신을 잠시 높일 수 있을지 모르나, 2인자의 처세론 부족했다. 박정희 리더십을 잇지 못한 것은 결국은 그의 탓이란 뜻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점은 생전 JP의 공은 7이고, 과는 3이란 점이다. 특별히 영면(永眠)을 비는 마음은 그 때문이다.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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