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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수령체제 인정하자" 대통령 특보의 망언
문정인의 제주도 발언은 정치적 파산 드러낸 것
한국당조차 침묵…김정은 폭정 눈감는 게 평화인가
편집국 기자
2018-06-30 09:15

   
조우석 언론인
문재인 정부 당국자 입에서 최악의 발언이 나왔는데도 모두가 외면한 채 문제제기조차 하지 않는다. 그것도 청와대의 복심(腹心)인 통일외교안보특보 문정인의 입에서 나왔고, 이 나라 대북정책의 불길한 앞날을 암시하는데도 그러하다. 자유한국당-조중동 역시 일언반구 반응이 없다.


한국사회가 합리적 대북인식이 불가능한 나머지 정치적-지적(知的) 파산 단계로 빠져 들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인데, 문정인 발언은 쇼킹하다. 그는 27일 북한이 원하는 체제보장이란 "미국이 수령체제나 사회주의를 폄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밝혔다. 체제보장이란 막연한 김정은 생존 보장의 차원을 떠나 바로 그런 뜻이라고 특정한 것이다.


그 자리는 제13회 제주포럼 특별세션이었다. 중앙일보는 문정인 발언 그 다음날 4,5면을 털어 포럼 지상중계와 별도로 1면 사이드 기사로 "문정인, 북한이 원하는 건 수령체제 인정"이라고 눈에 띄게 보도했다. 평양에서 온 대변인이라도 더 이상은 불가능했을 발언을 청와대 특보의 입으로 대신한 셈이다.


며칠 전 그는 "지금은 절대로 북한 인권을 협상 조건으로 삼을 때 아니다"라고 발언, 현 정부의 대북 인권문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4월 말에는 "평화협정 이후 주한미군 주둔 정당화 어렵다"는 폭탄 발언을 한 바 있고, 이전에도 사드 배치, 한미 군사훈련 등 안보 현안에 급진적인 주장을 펼쳐 한미관계를 긴장시켜온 장본인이다. 


그때마다 청와대는 사견(私見)이라며 보호막을 쳐주고, 실제론 현실화되는 악순환이 반복해왔는데, 미국이 북 수령체제 인정해야 한다는 이번 발언은 도를 넘어도 크게 넘었다. 김정은은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집단살해죄 등을 저지른 혐의로 처벌해야 할 인물이란 국제여론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가 지난 27일 북한이 원하는 체제보장이란 "미국이 수령체제나 사회주의를 폄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문특보의 발언은 북한의 악마적 체제를 봉인-유지해야 옳으며, 그걸 통해 북한주민 통제를 계속하도록 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진=싱가포르 통신정보부 제공


김정은의 반문명적 폭정을 가능케 하는 핵심 요인이 수령체제라는 것도 상식에 속한다. 수령체제 혹은 수령절대주의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무관한 건 물론 근대 이전의 봉건전제주의의 변종에 불과하다. 무산계급 독재를 말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자체가 엉터리이지만, 북한은 특정 지도자 개인(수령)이 사회전체의 이익을 대표한다고 황당한 주장을 하기 때문이다.


그 고약한 논리를 만들어낸 게 애비 김일성을 신격화해 후계자가 되려 했던 사악한 야심가 김정일이라는 것도 세상이 다 안다. 더욱 놀랍게도 김정일은 그걸 통해 1960년대 이후 북한의 실권을 차지했다. 그 대목은 요즘 베스트셀러인 태영호의 책 <3층 서기실의 암호>을 통해 상당 부분 규명됐다.


그 책 뒷부분에 김정일 집권 이후를 북한이 망조(亡兆)든 시기이며, 당시 북한은 봉건사회-노예사회로 추락했다고 밝혔다. 결정적으로 김일성 신격화를 위해 이른바 유일사상 10대 원칙을 밀어붙였다. 수령절대론 속에 세상은 빠르게 병들어갔는데, 태영호는 그 과정을 "나라 전체가 사기와 허위로 뒤덮였다"(515쪽)고 표현했다. 그게 북한 현대사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문정인 발언은 북한의 이런 악마적 체제를 봉인(封印)-유지해야 옳으며, 그걸 통해 북한주민 통제를 계속하도록 장려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 대목에서 황장엽의 강도 높은 비판도 경청해볼 일이다. 그가 썼던 책 <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다>에 나오는 얘기다.


"수령은 정권을 독점하고 경제를 독점하고 사상까지 독점하고 있다. 수령절대주의는…북한 인민을 무산자(無産者)로 만들고 정치적 무권리자로 만드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사람 영혼까지 빼앗고, 노예근성만 가진 정신적 불구자로 만들고 있다." 그건 추상적 얘기가 아닌 현실 고발이다. 황장엽 탈북 직전인 1995년 식량기근에 굶어죽는 이가 속출할 때의 일이다.


당시 군수공장 노동자들이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장군님(김정일)은 안녕하십니까? 잘 모셔주시길 바랍니다."라고 자동인형처럼 말하며 숨을 거두곤 했다. 끔찍하다. 북한 주민을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미치게 만든 요인이 바로 수령체제다. 그점에서 수령체제란 '악의 근원'이 맞다.


실제로 김정일은 당 간부를 모아놓고 "동무들에게 수령의 신임을 떼어놓으면 단순한 고깃덩이에 불과하다"는 폭언을 시도 때도 없이 내뱉었다. 그건 김정은의 북한에서도 현재까지 계속되는 상황이다. 북한은 전체가 인류 최악의 지옥도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정인의 발언은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다. 김정은 폭정에 눈 감는 게 과연 평화란 말인가? 


수령체제를 허용해 장기적으로 북한이 수령독재 자본주의라는 기형적 체제로 가는 것도 허용하자는 게 이 정부의 속내인가? 그게 개인적 소견이라 해도 문정인의 국가관에 대한 강력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노릇이지만, 정부의 속내가 맞다면 문재인 정부에게 부담을 가중시킬 뿐이다.


지금 당장 이 나라엔 평화 무드가 가득하지만 '수령체제 인정'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구해질 것 같지도 않다. 더구나 문정인은 외교안보 분야의 상왕(上王)이란 전망이 파다한데, 이런 망언을 한 것은 크게 부적절했다. 자유한국당은 물론 조중동의 침묵은 그래서 불길하다. 한국사회의 정치적-지적(知的) 파산 단계가 앞으로 어떻게 귀착될지 두려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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