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100년기념위' 출범, 좌파의 역사 새로 쓰기
이승만-박정희 지우고, 백범의 나라가 도래하나?
   
▲ 조우석 언론인
꼭 10년 전 일이다. 2008년 초에 들어섰던 이명박 정부는 그해 8월 15일광복절을 건국 60주년으로 기념하기로 결정했다. 대한민국이 세워진 것은 해방 3년 뒤인 1948년 8월15일이니까 그해 광복절은 이 나라가 회갑을 맞는 뜻 깊은 해란 판단이다. 놀라운 건 당시 야당의 반응이다.

그해 정부가 주관하는 건국절 행사에 참석을 거부했고, 별도의 장소(백범김구기념관)에서 기념식을 가졌다. 대한민국 건국은 1919년 중국 상해에서 임정이 수립됨으로써 이뤄졌다는 논리를 그때 공식화했다. 그 이전까진 대한민국 건국 자체를 저들이 감히 부인치 않았는데, 운동권정당으로 변질된 야당(현 집권여당 민주당)과 좌파가 그만큼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그들은 건국절 행사가 위헌이라는 소원(訴願)을 헌재에 제기해 쐐기까지 박았다. 그걸 전후해 역사교과서 논쟁이 격화됐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기이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자기나라가 언제 세워졌는가를 두고 사회가 이토록 대립한다는 것 자체가 지구촌에 극히 유례 드물다.

그건 무얼 말할까? 국가정체성에 대한 합의가 그처럼 취약한 게 바로 대한민국이란 뜻이다. 지난해 5월 대선 이후 그들이 권력을 쥐었으니 남은 건 자명하다. '승자의 역사 쓰기' 차례인데, 어제 3일 그게 가시화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날 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임정100년기념위)' 출범식에 참석했다.

그는 1919년 3.1운동 후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민주공화국이라는 국체를 선언했다면서 내년 임정 100주년 기념사업이 정의롭고 공정한 나라의 토대라고 강조했다. 지난 4월 정상회담에서 북 김정은과 3.1운동 100주년 남북공동 사업을 논의했다는 사실까지 밝혔다.

좌파의 역사관을 남북이 공유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으니 저들로서는 진도가 엄청 나간 셈이다. 분명한 건 올해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행사는 정부 차원에서 전무하며, 내년 임정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요란할 것이란 점이다. 좌파의 역사 쓰기가 거지반 완성 단계란 뜻이다. 핵심은 이승만-박정희의 나라는 가고, 백범 김구의 나라가 도래했다는 점이다.

그게 완성될 경우 대한민국 DNA가 완전히 바뀔 것이다. 현대사만 그런 게 아니고 대한민국 주류를 잇던 역대 대통령은 지금 모두 평가절하의 대상이거나 불행한 처지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하와이 깡패'라고 묘사한 게 좌파였고, 부국 대통령 박정희에는 '원조 적폐'의 낙인을 찍었다. 이 나라를 한 번 더 일으켰던 전두환 대통령과 5공은 오래 전부터 청산 대상이고 살인마란 딱지를 붙어놓았고,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은 구속 수감과 함께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이걸 '뉴 노멀'이라고 저들은 떵떵거리겠지만, 대한민국을 걱정하는 이들의 눈엔 전혀 다르다. 87년 체제 이후 시작된 사실상의 좌우합작의 결과가 이렇게 나타났다고 본다.

그게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부 탄생으로 이어지면서 좌파는 체제변혁 민중혁명에 성공했고, 이참에 마음 놓고 역사 새로 쓰기를 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대중들은 필자인 나의 이런 시각에 동의하는 이가 많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김영삼 식의 현대사 인식에 붙들려있는 탓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서울시 중구 문화역 서울284(옛 서울역사)에서 개최된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해 격려사를 하고 있다./사진=청와대 제공

그때 시작한 최악의 바보짓인 '역사 바로 세우기'가 아직도 옳았다고 믿는 것이다. 그게 "현대사는 정의가 실패한 역사"라는 노무현의 뒤틀린 자학(自虐)사관으로 발전했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어진다. "일제와 친일 잔재를 제대로 청산 못했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했다"는 지난해 문재인의 광복절 경축사는 좌파사관을 판박이 형태로 반영한다.

그 결과 이승만-박정희의 나라는 가고, 백범 김구의 나라 도래는 이미 기정사실이다. 얼마 전 조선일보는 국회의장을 지냈던 정치인 김형오(71) 인터뷰 기사로 한 면을 채웠는데, 백범 정신 찬양 일색이었다. "조국 앞에선 좌익도 우익도 없다… 통합의 끈 놓지 않았다"는 제목이었다.

내년 임정 100년-백범 서거 70년을 앞두고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장으로 있는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가 보수 한나라당 출신임에도 이승만-박정희 대신 백범을 떠드는 저 모순을 어찌 볼까? 실은 그걸 모순이라고 보는 이도 없다. 그러니까 조선일보가 저렇게 지면을 헤프게 할애한다. 좌우 구분도 없이 조국을 말했다? 그럼 이 나라 대한민국은 어디 있단 말인가?

못난 정치인, 못난 1등 신문의 행태를 뭐라 하는 이도 없고, 세상은 이토록 적막강산이다. 백범 김구의 나라 도래를 분명히 해줄 건 따로 있다. 서울 시내에 들어설 임정기념관이다. 내년 봄 신축 개관할 임정기념관은 서대문형무소 근방에 지금 공사가 한창인데, 이 역시 놀라운 일이다.

천안 독립기념관과, 광화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그리고 백범김구기념관에 관련 전시실이 있는데 엄연히 중복투자다. 그럼에도 국회가 주동이 돼 만들어지는데, 정말 기이한 노릇이다. 백범 김구가 누구이던가? 대한민국 건국에 반대했고, 한민당을 "민족의 박테리아"라고 비난했던 사람이 아니던가? 대한민국 건국 직후 "비분과 실망"을 담은 성명을 발표했던 게 그였다.

그때 유엔 감시하에 남북한 총선거를 실시하자고 주장했는데, 그건 "이미 성립한 대한민국을 해체하고 새로운 통일정부를 세우자는 주장"(이영훈 지음 <대한민국 역사> 158쪽)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 대한민국 해체론자 백범을 기리는 기념관이 서울에 다시 들어서는 기이한 풍경이 나는 두렵다.

백범의 1948년 4월 평양 행은 김일성의 통일전선 공작에 놀아난 결과라는 것도 삼척동자가 다 안다. 북한이 그렇게 선전했고, 그건 빼도 박도 못하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이 무슨 백범 추앙인가? 이 나라에 국가이성이란 게 있긴 한 건가? 그걸 묻지 않을 수 없는 오늘 현실이 나는 안타깝고 두려울 뿐이다.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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