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 선생이 방송 30년을 맞이해 특별기자회견을 지난달 26일 가졌다. 방문진에서 MBC 대표이사를 선임하는 사건과 MBC의 행복한 울륭인 기자 시사회가 겹친 관계로 많은 기자들이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중요 매체는 참여했다.
11시 정각, 송해 선생의 특별기자회견을 하겠다는 발표가 있자, 한쪽 구석에서 송해 선생이 벌떡 일어났다. 송해 선생은 오랫동안 묵묵히 앞쪽 구석에 기자들과 함께 앉아 있었던 것이다. 방송인 중에서 최고 원로 방송인이며, 그 명성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명예를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일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수수함때문일 것이다. 마을 이장같은 송해 선생의 그 매력이 물씬 풍기는 순간이었다.
그러한 그도 기자들 앞에선 잠시 떨었다. 혹시 잊혀진, 인기가 늙어버린, 알아주지 않는 방송인으로 비쳐질까봐 잔뜩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만큼 송해 선생은 기자들을 존중했고, 기자들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만큼 시청자들을 존중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기자 한명이 롱런의 비밀을 물었다.
송해 선생은 “출연진, 참석자가 바로 무대의 꽃이었다”며 “또 스텝진들이 하나가 되어 호흡을 맞춰서 30년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송해 선생이 거친 담당 PD들은 120명이 넘는다고 한다. 송해 선생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깊은 인생의 맛이 섞인 묵직한 말들이었다. 그러한 묵직한 말들이 참으로 수수하게, 편안하게, 담백하게 흘러나왔다.
“103세 되는 어머니를 모시고, 85세 되는 딸이 노래자랑에 나와서는 딸되는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가사를 가르쳐주는 장면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요. 또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춤을 추면서 노래하던 장면은 고부간의 갈등을 허무는 사회적 출발점으로 역할을 하기도 했어요.”
송해 선생은 “전국노래자랑은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없고, 가진 자도 없는 사람도 없이 남녀노소가 그저 즐겁게 한마음으로 웃고 섞일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고 말했다.
도수 높은 안경 너머로 깊은 주름이 보였다. 기자 한명이 긴 문장으로 질문을 던지자, 송해 선생이 귀를 잔뜩 기울이면서, 인상을 그린다. 세월의 흔적이 순간 느껴졌다. 배삼룡 배우가 고인이 됐고, 구봉서 선생 다음으로 송해 선생이 원로 방송인이다.
제일 인상깊었던 에피소드를 말해달라는 주문이었다.
송해 선생은 함평 나비축제를 말했다. 사건은 이랬다.
나비가 다니는 철보다 일찍 나비축제를 하다보니, 함평군에서 인공나비를 길러서, 축제일 당일에 바구니에 담아서 나비를 날려보내는 프로젝트를 세웠다는 것이다. 당일날, 호랑나비로 인기를 끌었던 김흥국 가수가 무대에 서서 열창을 하기로 했는데, 사건은 당일날 터졌다. 바구니를 열었는데, 인공으로 길른 나비라서, 바깥이 겁나서 어떤 나비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흥국씨도 “호랑나비야 날아라”고 부르면서도 굉장히 당황했다는 것이다. 다행히 나비 2마리가 무대를 조심스럽게 날아올라 적당히 수습은 됐다는 것이다.
후임 MC가 누가 적당하겠냐는 질문에 송해 선생은 정색했다. 아직 방송의 의지가 남아있다는 뜻이다. 참으로 당찬 방송의 집념이었다. 그러면서도 송해 선생은 “이번 동계올림픽 1000m 경기에서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해 이승훈 선수가 금메달을 땄듯이 후임자로 누가 적당할지는 그 누가 알겠는가”라는 말도 했다.
송해 선생은 끝으로 “방송인은 누구나 마이크를 잡고 싶어한다”면서 “기회도 중요하고, 운도 따라야하지만,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송해 선생은 방송 30년을 돌아보면서 “인생은 굴곡이다. 고난이 없으면 행복도 없다”면서 “아픈 다리가 있으면 아픈 다리를 주무르기 보다는 아프지 않은 다리를 쳐다보면서 아픈 불행을 잊고 행복해하는 것이 인생이다”고 전했다.
끝에 송해 선생은 “사람에게 가장 힘든 일은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면서 “다 나같지 않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방송 30년을 지내면서, 나는 인심을 얻는 부자가 됐다”면서 “많은 사람을 알게 돼 즐겁고, 최고로 행복하다”고 회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