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훈, '공작'서 北 국가안전보위부 제2국 과장 정무택 역 맡아
"'공작' 촬영하며 절망감 느껴… 함께 답 찾아가는 과정이었죠"
"'좋은 친구들', 배우 인생의 터닝 포인트… 관객 먼저 생각하게 됐어요"
[미디어펜=이동건 기자] 선수다. 유쾌한 이야기꾼이다. 마주 보고 있자면 선배 배우들이 그를 사랑하는 이유를 알겠다. 독수리오형제의 막내쯤 된다며 자신을 낮추고, 아직은 즐겁게 연기를 하는 단계라며 신인처럼 눙친다. 데뷔 13년 차에 접어들었어도 결코 권태롭지 않고, 장난기 가득한 겸손이 밉지 않다. 배우 주지훈의 이야기다.

"독수리오형제 보셨어요? 가장 마음 편한 건 2호에요. 책임은 1호가 지거든요. 2호는 시크하고, 다른 사람 신경도 안 쓰고, 직언직설하고… 게다가 전 2호도 아니고 5호에요. (황)정민 형도 있고 (이)성민 형도 있고, 그들이 책임감을 가져가기 때문에 편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 '공작'의 배우 주지훈이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CJ E&M 제공


주연 배우에게 출연작 동시기 상영이란 영광스러우면서도 썩 눈치가 보이는 일이다. 올여름 BIG 4 영화('인랑'·'신과함께-인과 연'·'공작'·'목격자') 중 무려 두 작품에 이름을 올린 주지훈이 그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신과함께-인과 연'에서는 하정우와 마동석이, '공작'에서는 황정민과 이성민이 받쳐준다며 사람 좋게 웃는다. 그의 진심은 두 영화 모두에 자부심이 느껴진다는 말에서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다.

"'공작'과 '신과함께2'의 장르와 톤 앤 매너가 유사했다면 비교를 당하고 이야기가 나왔을 텐데, 전혀 다른 지점에 있는 영화라 큰 부담은 없어요. 관객분들이 각 작품의 다른 맛을 느끼는 거잖아요. 윤종빈 감독님은 깊게 고민할 만한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올려 이야기하고, 김용화 감독님은 용서와 구원이라는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거든요. 두 영화가 가진 미덕과 메시지는 비슷한 선상에 있는 것 같아요."

'공작'은 1990년대 중반,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핵의 실체를 파헤치던 안기부 스파이가 남북 고위층 사이의 은밀한 거래를 감지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첩보극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흑금성(황정민)에게서 의심을 거두지 않는 북의 국가안전보위부 제2국 과장 정무택으로 분한 주지훈. 자랑스러운 작품이지만 배우로선 절망스러웠단다. 언론시사회를 통해 주지훈의 호연을 확인한 후라 그의 말은 뜻밖이었다.

"절망이란 단어가 다가오더라고요. '이것밖에 안 됐나?''라는 생각이 덮쳐왔어요. 엄청 준비하고 공들인 시간이 있는데, 촬영을 가니까 목 밖으로 대사가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인터뷰를 하기가 되게 힘들어요. 왜인지는 모르겠어요. 공기와 분위기로밖에 설명할 수 없어요. 근데 어느 날 문득 누군가가 현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툭 꺼냈어요. 그 때 알았죠. 모두가 그러고 있구나."

이야기를 꺼낸 주인공은 '공작'을 통해 자신의 바닥까지 확인했다는 황정민이었다. 그래서 배우들끼리 더욱 똘똘 뭉쳤고, 오롯이 현장에 집중하며 함께 답을 찾아갔다.

"정해진 액팅이 있지만 본능적으로 나오는 액팅이 있잖아요. 그거 하나 거슬리면 이 공기가 깨지는 거에요. 이야기하다 보면 침이 넘어갈 수도 있고, 눈을 깜박일 수도 있는데 이걸 정해놓고 갈 수 없는 거죠. 윤종빈 감독님도 디테일하게 디렉션 주기로 유명한데, 어떻게 하라기보단 '다시 갈게' 정도로 이야기하더라고요. NG가 나서 모니터를 보면 이해가 돼요. 근데 그걸 설명을 못 하겠어요. '공작' 촬영은 함께 답을 찾아가야 하는 과정이었어요."


   
▲ '공작'의 배우 주지훈이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CJ E&M 제공


첩보물의 특성상 긴장감은 기본 전제였고, 배우들이 주고받는 호흡은 티끌 같은 행동에도 흐트러질 때가 많았다. 냉전의 남북관계 속 서로를 떠보고 속이는 심리전이 이어지고, 이를 스크린에 고스란히 옮기려다 보니 감각의 더듬이가 극도로 곤두섰을 만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신은 현기증까지 느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독대 신이다.

"너무 더운 날이었어요. 윤종빈 감독님 디테일이 장난 아니잖아요. 한여름에 찍는데, 군복을 너무 잘 만들어놔서 보온이 너무 잘 돼요. 거기에 세트장까지 너무 잘 지어놓다 보니… 서 있는데 진공에 있는 것 같더라고요. 너무 조용하면 균형 감각에 이상이 오는 거 아세요? 주변이 일렁이는 것처럼 보여요. 김정일 위원장 역 배우가 움직이면 구두 소리가 또각또각 서라운드로 들려요. 정말 혼란스럽더라고요. 진짜로 패닉이 와서 그 신이 잘 산 것 같아요.(웃음)"

가죽 의자 소리에 카메라 팬 소리까지, 촬영장의 모든 소품이 주지훈의 신경을 날카로운 메스처럼 긁어댔다. '공작'에서의 특별한 경험은 배우로서 큰 도움이 됐지만 고통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주지훈은 "촬영이 끝나면 하체에 힘이 풀려서 휘청 했다. 촬영을 하고 나면 심신이 지쳐서 술도 많이 못 마셨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길고 긴 고생 끝에 탄생한 정무택 캐릭터는 주지훈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

"이 친구는 어릴 때부터 철저히 교육받은 엘리트거든요. 의심할 거리가 있어서 의심을 하는 게 아니에요. 단지 사람이 깨끗한지 아닌지를 엑스레이처럼 지켜봐요. 나라에 충성하는 방식이 사상과 체제에 위험 요소가 될 만한 것을 없애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의 입장, 자신의 입장에선 선역인 거죠. 전 정무택을 악역이라고 판단하지 않았어요. 그래야 단편적으로 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요. 애국자라면서 남한 사업가가 선물한 시계를 차고, 그 와중에 그 사람의 사상을 의심하는 장면도 있잖아요. 그런 아이러니도 재밌죠."


   
▲ '공작'의 배우 주지훈이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CJ E&M 제공


캐릭터에 대한 이해와 영민한 관찰력이 돋보이는 주지훈이지만 그동안 주연작의 흥행 타율이 높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올여름에만 두 대작의 타이틀롤에 이름을 올린 성과에 대해 "그 전부터 노는 계속 젓고 있었는데 물이 없었다"고 자조 섞인 목소리를 냈다. 이어 "지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계속 짚고 있던 것들이 근육이 되고 지구력이 돼서 많은 도움을 받는 것 같다"며 "지금은 물고기도 있고 바람도 있다"고 웃어 보였다. 그렇다면 주지훈에게 터닝 포인트가 된 시기는 언제일까.

"전 '좋은 친구들'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좋은 이야기고 사랑하는 작품이에요. 그런데 관객분들은 안 찾아주시더라고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어요. 제가 좋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도 우리끼리만 나누면 영화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관심조차 못 받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제가 재밌으면 작품을 했는데, 그 이후로는 관객을 먼저 생각하게 돼요."

'아수라'의 캐스팅은 영화산업에서 주지훈이라는 브랜드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그는 "'좋은 친구들', '가면', '아수라'를 연달아 했는데, 전 '좋은 친구들' 때문에 '아수라' 출연 제안이 들어온 줄 알았다. 그런데 '가면'을 보고 제안을 한 것이었다"며 "관객과 사람에 대해 모르고, 선입견을 갖고 삶을 재단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지난 연기 생활을 되돌아봤다.

"'신과함께'는 선입견을 깨는 방점이었죠. 영화를 바라보는 시야가 예전보단 넓어진 것 같아요. 영화는 대중문화예술이자 산업이고, 여러 가지 요소가 있잖아요. 배우를 캐스팅할 때도 여러 가지를 종합해서 하는 거고. 그런 것들을 알게 됐고, 제가 마음을 열어야 조금이라도 일을 잘하고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 '공작'의 배우 주지훈이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CJ E&M 제공


다만 작품을 선택할 때 공인으로서 져야 하는 무게를 생각하는 데까진 미치지 못했다고.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곧 그의 인격, 정체성과 결부짓는 일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는지, 우리 사회가 영화계에 얼마나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지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는 고백이었다. 그래서 쉽게 수긍이 갔다.

"그런 고민은 형들에게 많이 들어요. 저도 나이가 좀 더 차고 선배가 되면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 생길 거고. 그런 게 참 재밌는 것 같아요. 미디어는 영향을 주는데, 전 그냥 배우잖아요. 전 그게 헷갈려요. 영화는 깊이 있는 사고를 요하는 것도 있고, 극적인 재미가 있는 것도 있고, 시원하게 즐길 수 있는 것도 있어요. 전 관객으로서도 모두 좋아하는데, 선한 영향력을 주는 것만 찍어야 한다면 아무것도 못 하죠. 근데 작품 속 연기가 영향력이 있는 건 사실이고.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 근접도 못 했고, 밸런스를 어떻게 맞춰가야 할지 고민은 많이 하고 있어요. 부담스럽지만 고민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아요."

여전히 독수리오형제의 막내 입지를 고수하며 너스레를 떠는 주지훈. 촬영을 위해 메이크업을 하면 체력이 30배로 소모된다는 주지훈은 최근 걷기 운동으로 새카맣게 탄 피부만큼 수더분한 사람이었다.

'공작'에 이어 10월 '암수살인' 개봉, 12월 넷플릭스 '킹덤' 오픈을 기다리고 있는 그는 이번 해를 관객들과 친밀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며 기분 좋게 웃었다. 그가 요즘 느끼는 행복감을 털어놓았을 땐 길지 않은 한 시간이 긍정적인 에너지로 완벽히 옮았다.

"요즘 되게 행복해요. 비단 형(선배 배우)들이 잘 나가서 그런 게 아니라 사상을 나누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정말 즐거워요. 똑같은 일을 했을 때 '어우,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고, '힘내자' 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제 주변에는 후자의 사람들이 많아서 에너지를 받고 있어요. (정)우성이 형 만나서 심해졌지만 특히 걷는 게 되게 좋아요. 10분, 15분이고 걸으면 좋은 호르몬이 나온대요. 그래서 머리 복잡하면 걷고 있어요."


   
▲ '공작'의 배우 주지훈이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CJ E&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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