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은 미국혁명·프랑스혁명과 같은 반열의 인류사적 사건
"건국 부정은 곧 국가해체"…15일 태극기 집회로 긴장감
   
▲ 조우석 언론인
"한 나라가 언제 세워졌는가를 두고 정치와 사회가 이처럼 공공연하게 대립하는 예를 어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마치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이 제 생일이 언제인지도 알지 못하고 내면의 갈등을 일으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현대사 통사(通史) <대한민국 역사>(기파랑)의 저자인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말인데, 그게 정확한 진단이다. 이 대립 갈등이 1948년 8월 대한민국이 건국됐다는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외면한 채 1919년 기원설을 유포시키는 그룹의 탓이다. 그 결과 올해 정부 차원의 건국 70년 행사는 없다. 이에 항거하는 민간단체 행사가 눈에 띄일 뿐이다.

(사)대한민국사랑회와 이승만학당이 주최하는 우남 이승만 애국상 수여식과 학술대회(14일 오후 2시 프레스센터)가 그것이다. 그와 별도로 대규모 태극기집회인 건국 70주년 국민대회가 15일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리는데, 사안이 사안인지라 모종의 긴장감마저 조성되고 있다.

"걸을 수 있는 사람 다 나오라. 손 있는 사람은 태극기 들고, 입 있는 사람 은 대한민국 건국을 외치라." 어제 오늘 신문광고의 격문(檄文)이 그걸 암시한다. 건국 부정을 국가해체 음모로 보는 것이다. 사실 건국절 논란을 점화시킨 건 문재인 대통령 자신이다. 그는 7월 초에 임정이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민주공화국이라는 국체를 선언했다고 밝혔다.

그는 "내년 임정 100주년 기념사업이 정의롭고 공정한 나라의 토대"라고 강조했는데, 1948년 건국에 대한 정면 부정이다. 야당 시절 그는 1948년 건국 주장이란 반역사적이고, 반헌법적이라고 주장한 바도 있다. 유감천만인 게 이런 일부의 도착적 인식이란 20세기 한국인의 경험을 큰 시선으로 돌아보지 못한 한국사회 전체의 무책임 때문이다.

제헌헌법 몇 개 조문을 음미해 봐도 그게 쉽사리 파악된다. 제2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했다. 국제(國制)는 자유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민주공화국임을 선언했다. 두 개 조문만 봐도 70년 전 대한민국 건국이란 개항 전후 그토록 장구하게 진통해왔던 한국사회의 결정적 진화를 알리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원로 역사학자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가 밝힌 대로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은 1776년 미국 건국혁명, 1789년 프랑스혁명과 같은 인류사 반열에서 음미해야 한다. 상식이지만 미 건국혁명과 프랑스혁명이란 국민주권의 정치 원리를 최초로 제도화한 기념비적 사건이자, 근대의 시작을 알린다.

특히 미국혁명은 당시 프랑스를 휩쓸던 자코뱅의 급진 자유주의를 경계했다. 그래서 에드먼드 버크가 주장했던 보수적 자유주의에 입각한 입헌자유와 민주공화국 체제를 세웠고, 인류사상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국가로 일어섰다. 그만큼 인류 대의에 부합하는 보편성이 있다는 얘기다.

   
▲ 문재인 대통령은 7월 초 임정이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민주공화국이라는 국체를 선언했다고 밝혀 건국절 논란에 불을 붙였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은 1776년 미국 건국혁명, 1789년 프랑스혁명과 같은 인류사 반열에서 음미해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그렇다면 대한민국 건국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자유민주주의라는 문명의 파도가 20세기 중반 한반도에 상륙했음을 보여주는 기념비적 사건이다. 더욱이 당시는 냉전의 분기점이었다. 대한민국 건국을 기점으로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사가 방향을 잘 잡았다. 동시에 반세기도 안돼 동유럽과 소련의 공산주의 몰락이라는 드라마를 만들어낸 숨은 동력이다.

대한민국 건국은 그만큼 세계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불행하게 생을 마감한 한 전직 대통령은 건국 이후 우리 현대사를 두고 "정의가 실패했고 기회주의자가 득세했던 과정"이라고 폄훼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어디 특정 대통령뿐인가? 자기혐오와 자학에 국민 다수도 합류했다.

예전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말대로 "대한민국의 성취에 대해 감명 받지 않는 유일한 사람들은 대한민국 국민 자신이다." 결국 그게 커지고 곪아서 건국절 혼란을 낳았다. 희망은 있는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지식인그룹 한국자유회의는 지난해 1월 창립대회에서 다음의 선언문을 발표했는데, 대한민국 건국과 근대화의 가치 그리고 통일이란 명제를 이렇게 탁월하게 압축했다.

"오늘 우리는 한국자유회의 결성에 즈음하여 한국의 근대성 확보 노력이 건국이라는 정치혁명을 시작으로 근대화라는 산업혁명을 거쳐 최종적으로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통일로서 완성된다는 역사적 판단을 근거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선언문이 확인하듯이 대한민국 건국은 세계사적 맥락의 정치혁명이었으며, 박정희 중심으로 한 근대화란 위대한 산업혁명이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통일의 과정에서 북한 전체주의란 괴물은 결국 극복-해체되어야 할 대상이다. 그걸 담은 선언문이 뒤에 가서 대한민국 국가정통성을 파괴하려는 전체주의 전복세력에 대해 경고하는 것도 너무도 자연스럽다.

한국자유회의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지성인들의 모임인데, 역시 남다르며, 듬직하기 짝이 없다. 당장은 온통 오염된 지식인 사회 속에 외딴섬에 불과하며, 여론 확산에 한계를 절감하고 있겠지만, 모두가 이성을 잃은 건 아니라는 희망을 우선 우리에게 안겨준다.

반대한민국 세력의 위세가 민주주의의 타락과 비효율의 단계를 넘어 체제 붕괴로 이어지고 지금의 국가위기에서 그래도 희망의 불꽃이 모두 꺼지지 않았다는 걸 내일 8.15를 앞두고 재확인하는 바이다. 우리가 새삼 짚어볼 명제는 이렇다. 남들이 뭐래도 8.15는 대한민국 건국절이 맞다. 그게 논란의 여지없이 역사적 진실이니까. /조우석 언론인
[조우석]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