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친일파 시비의 숨은 전략…못 막으면 게임 끝
창업주 인촌 죽이기에 동아의 침묵은 그래서 '재앙'
   
▲ 조우석 언론인
글 한 편 쓰고 이렇게 뒷맛이 고약한 경우도 드물다. 동아일보를 겨냥한 매체비평 '한 신문의 추락에 관한 보고서' 상하편이 그것인데, 좌파가 총대 맨 그 신문의 창업주(인촌 김성수)에 대한 건국훈장 서훈 취소에 지금까지 나 몰라라 해온 동아일보의 직무유기란 실로 당혹스럽다. 

단언하지만 이 상태론 2년 뒤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 행사 자체가 무의미하다. 무슨 낯, 어떤 명분으로 100주년을 기념한단 말인가? 그 신문에는 100주년 기획팀인 2020위원회가 있는 걸로 아는데, 축하행사-미래전략 등 그 무엇에 앞서 인촌(仁村) 김성수(1891~1955)에 대한 자리매김이 핵심이다. 동아일보 회생의 길이 앞으로 1년 아주 없진 않다는 얘기다.

오늘 마무리 칼럼에선 두 가지를 짚으려 한다. 인촌의 친일 여부에 대한 판단이 우선이고, 지난 20년 무차별적 친일 시비란 대한민국을 거덜 내기 차원의 공세란 점 규명이다. 사실 인촌을 친일파로 모는 공작은 노무현 시절 과거사위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 출범 이전부터 요란했다. 

당초엔 김성수의 5세 아래 동생 김연수가 표적이었다. 그는 1935년 경성방직 2대 사장 취임 뒤 경방 전성기를 열었다. 일제 땐 "유통엔 화신 박흥식, 제조업엔 경방 김연수"로 통했는데, 그런 그에게 친일파란 주홍 글씨를 붙여 매장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좌파는 그를 친일파 99인에 선정했고, 경성방직을 "전쟁의 아들"이라고 규정했다.

그의 죄목이란 태평양전쟁 때 만주까지 사업반경을 넓혀 원조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다는 것이다. 그 이전 해방 직후의 반민특위 때 그를 구속됐다가 무죄로 풀어준 바도 있다. 사실 당대 최고의 기업가 김연수는 총독부와 협조-협력이 불가피했다. 그래서 만주국의 공직을 맡았고, 국방헌금도 했다.

   
▲ 고려대 총학생회가 지난 3월 8일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인촌 김성수의 동상을 철거하고 인촌기념관·인촌로 명칭 변경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17년 대법원 판결로 친일행적이 인정된 인촌은 고려대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의 교장을 역임했다. /사진=연합뉴스

논란은 그 때문이지만, 그건 훌륭한 저술 <대군의 척후:일제하 경성방직과 김성수·김연수>(2008, 푸른역사)를 펴낸 주익종의 박사 말대로 "식민지 기업의 태생적 한계요, 비극적 운명"이다. 그렇게 동생을 공격하던 불길이 인촌에게 옮겨 붙은 게 지난 20년의 새 양상이다. 아예 생사람 잡는 것인데, 당초 인촌은 반민특위의 조사대상이 아니었다. 

해방 직후 나왔던 책자 <친일파 군상>에서 인촌은 "(친일에) 부득이 끌려 다닌 자"로 분류됐다. 그 책자는 백범 김구 산하의 단체에서 만들었고, 때문에 백범의 속생각을 반영한다. 그럼에도 '인촌=친일파'란 생각은 청년들의 참전 독려의 글을 인촌이 신문에 썼다는 이유다.

그건 인촌의 이름이 도용당한 케이스에 불과해 가치가 없다. 학병 나가는 보성전문 학생들 모임에 나갔다는 시비도 일부 있지만, 그건 학교장 신분으로 당연하지 않던가? 무엇보다 그 모든 게 전시(戰時)라는 특수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인촌의 역할은 동아일보-보성전문-경성방직으로 빛나는 일제시대를 너끈히 앞선다.

한민당의 오너였지만, 그는 늘 "당대의 조정자"로 처신했다. 그래서 인촌을 욕하는 이가 동시대인 중에는 없었다. 다른 거 다 빼도 "단군 이래 최대의 개혁"인 농지개혁을 선뜻 받아들인 공로만 해도 그의 것이다. 최대의 지주인 그가 "대세를 따르자"고 하니 다른 이도 합류했다. 

   
그렇게 인촌을 둘러싼 친일파 시비는 보합상태를 유지하다가 지난 20년 새 태풍으로 변했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이 인촌을 친일파 708명에 포함시킨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대통령 직속 진상규명위가 2009년 보고서에서 인촌을 친일파에 포함시켰고, 끝내 그게 건국훈장 취소 결정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런 변화가 무얼 말해줄까? 

친일파 광풍이란 이른바 민주화 이후 고약해졌고, 친북-반미-반일의 흐름과 하나라는 게 내 판단이다. 친일파 골병은 대한민국을 해체하는 암덩어리로 확대됐다. 그게 어느 정도일까? 친일파 시비 광풍은 당초 북한의 정략적 움직임을 크게 웃도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사실 친일파 시비를 부채질하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는데, 그게 북한이라는 건 두 말할 것도 없다. 미 하버드대의 한국학 교수 카터 에커트에 따르면 김성수 형제는 자신들을 부일(附日)협력자와는 크게 구별했으며, 북한 역사가들도 김성수 형제를 민족개량주의자로 분류했을 정도다. 평양 빨갱이들도 인촌을 섣부르게 매판 자본가로 분류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덧 우린 화신, 경방을 예속자본이라고 하고, 박흥식-김연수를 친일자본가라며 손가락질한다. 그리고 현직 대통령이란 이는 틈만 나면 위안부 할머니들을 청와대로 모시는데, 정상은 아니다. 즉 친일파 시비 광풍은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절단 내는 자해(自害)의 드라마로 확대됐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선 안 될 나라란 생각을 이끄는 게 바로 친일파 시비다. 사실 지난 몇 년 새 국내 명문 사학은 모두 그 지경이다. 이화여대 김활란, 연세대 백낙준, 고려대 인촌 김성수 등이 모두 친일파라며 법석이다. 그들에게 인촌이란 존재는 중요한 표적이다. 그를 쓰러뜨려 교육은 물론 언론, 재계(경방 등 기업활동과 시장경제)까지 요절내려고 저들은 날뛴다. 

즉 우리가 모르는 새 대한민국은 거덜 나는데도 대학교수들은 오불관언이고, 국민들은 개돼지처럼 끌려 다니고 있다. 그게 우리 현주소인데, 궁금한 게 있다. 인촌을 친일파라고 확정 판결한 대법원, 그리고 서훈 취소를 결정한 국무회의는 이런 통찰을 해본 적 있을까? 그럴 능력이 있을까?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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