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의 해외 진출과 신규사업 올 스톱...국가 경제에도 악영향
   
▲ 국정농단 사건 관련 뇌물공여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실형을 받고 법정 구속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달 22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항소심 속행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미디어펜=김영진 기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2월 법정 구속된 이후, 롯데그룹의 시계는 멈춰섰다. 롯데는 최근 몇 년간 해외사업과 국내외 인수합병(M&A) 등에 지속 투자하며 미래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왔다. 하지만 현재 이러한 대규모 투자에 대한 논의가 무기한 지연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인도네시아에서 추진 중인 대규모 유화단지 건설 지연이다. 롯데케미칼은 인도네시아 국영 철강회사인 KS(Krakatau Steel, 크라카타우 스틸)가 소유한 타이탄 인도네시아 공장 인근 부지를 매입해 대규모 유화단지를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2016년 신규 법인(PT Lotte Chemical Indonesia)을 설립해 KS와 약 50ha에 대한 부지사용 권한을 매입하는 계약을 체결했으며, 지난해 토지 등기 이전까지 완료했다. 

롯데는 이곳에 대규모 석유화학 콤플렉스를 건설한다면 거대 시장을 선점하고 동남아 시장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예상 투자 규모는 약 4조원에 달한다. 투자 규모가 상당한 만큼 이 사업은 인도네시아 정부에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 역시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한 '신 남방정책' 기조에 맞추어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아세안 국가와의 교류 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가 확정돼 본격적인 실행이 시작되면 한국-인도네시아 간 관계 강화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신 회장의 최종 투자 의사 결정이 지연됨에 따라 롯데는 그저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롯데는 지난 2016년 검찰수사로 인해 미국 액시올사 인수를 포기하면서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 기회를 놓친 뼈아픈 경험이 있어 최근 이러한 상황이 더욱 불안하기만 하다. 

롯데가 인수를 추진했던 액시올은 PVC(폴리염화비닐), 염소, 가성소다 등의 제품을 주력으로 하는 화학업체이다. 에틸렌 기반의 범용 제품에 강점이 있는 롯데케미칼은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미래 성장기회를 모색하고자 액시올을 인수해 글로벌 12위 화학업체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전방위적인 검찰수사가 진행됨에 따라 롯데는 업체와의 원활한 인수 협상 및 자금 마련에 부담을 느끼고 결국 인수 추진 계획을 접어야 했다. 이후 액시올사는 롯데가 인수하려던 금액보다 더 높은 금액(약 4조4000억원)으로 미국 웨스트레이크 사에 인수 합병됐고 회사 가치는 급등해 롯데를 떠나 국내 화학업계 전체를 봐서도 큰 아쉬움을 남기게 됐다.

세계를 향해 뛰었던 롯데, 회장 부재로 무기한 연기

또한 롯데는 불확실성의 시대 속 저성장 기조를 극복하고자 해외시장 확대 및 신사업 발굴에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해외 진출이나 신규사업 진출은 대규모 투자가 수반되고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에 최종 의사결정권자의 부재 상황에서 진행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롯데는 올해 들어 국내외에서 10여 건, 총 11조원 규모의 M&A를 검토 및 추진했으나 신 회장의 부재로 인수 프로세스 참여를 포기하거나 무기한 연기하고 있다. 

노무라증권에서 자본시장의 실무을 익힌 신 회장은 최종 의사결정권자로 참여할 뿐 아니라 풍부한 M&A 경험을 바탕으로 진행 과정에서도 실무자들에게 여러 조언과 도움을 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부재가 길어지면서 인수 검토 초기 단계에서 더 이상 진행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롯데 고위 관계자는 "올해 롯데는 베트남 제과업체, 베트남·인도네시아 유통업체, 미국·베트남의 호텔 체인, 유럽의 화학업체 등 거의 전 사업 부문에 걸쳐 인수를 검토해왔으나 실질적인 진행은 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신 회장이 직접 뛰며 구축해온 해외 정·재계 관계자들과의 상호 신뢰와 우호적인 관계에도 비상 불이 켜졌다. 만약 이런 우호적 관계가 무너진다면 해외사업이 지금처럼 순조롭게 진행될지도 미지수다. 신 회장은 최근까지만 해도 일 년의 절반 이상은 해외에서 보낼 정도로 해외사업장을 직접 챙겨왔다. 현지 정·재계 인사들과의 네트워킹 및 정보 교류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신 회장의 글로벌 인맥은 재계에서도 유명하다. 신 회장은 '한-인니 동반자 협의회'의 경제계 의장을 맡는 등 양국의 관계 강화에 노력하며 인도네시아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2016년에는 방한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접견해 현지 투자 강화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러시아에서도 한국 기업으로는 최대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는 등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신 회장은 2015년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러시아 우호 훈장을 수여 받았으며, 앞서 푸틴 대통령은 2013년 롯데호텔 앞에 세워진 푸시킨 동상 제막식에도 직접 참석한 바 있다. 

올해 1월에는 프랑스에서 개최된 '프랑스 국제 비즈니스 회담'에 참석해 마크롱 대통령을 만났다. 그러나 이처럼 글로벌 네트워킹에 직접 나서 온 신 회장이 부재함에 따라, 롯데는 글로벌 사업 기회에 대한 빠르고 전략적인 접근이 어려워졌다. 또한 롯데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커질 수 있다는 점도 롯데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 중 하나다.

한편 롯데가 지배구조 개선 및 경영 투명성 강화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지주사 체제로의 전환 역시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는 지난해 10월 롯데지주를 설립했고 지주사 체제를 완전히 갖추기 위해서는 편입 계열사를 확대하고 롯데손해보험, 롯데카드 등 금융 계열사들을 처리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그러나 롯데는 지주사 출범 후 2년 내 정리해야 하는 금융 계열사 지분 처분작업을 첫발 조차 떼지 못하고 있다. 내년 10월이 기한인 상황에서 이미 다양한 논의와 물밑작업이 선행돼야 하는 시점이지만 그룹 내 핵심사업 중 하나를 정리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총수의 직접적인 관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롯데지주는 롯데카드 지분 93.78%, 롯데캐피탈 지분 25.64% 등을 보유하고 있다.

"일하게 해달라" 신동빈 회장의 호소

7개월 이상 법정구속 중인 신 회장은 지난달 말 자신의 항소심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롯데가 2016년 3월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요청받은 것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선수 육성 관련이었고, 요청받은 재단(K스포츠재단)도 이미 많은 기업이 출연했던 공식 재단이었다"라며 "그 재단에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도, 면담 후 2개월 반 뒤에 유례없이 강도 높은 수사를 받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하소연했다. 더불어 "국가 경제와 회사를 위해 다시 한번 일할 기회를 주시길 바란다"라며 재판부에 호소했다. 이날 검찰은 신 회장에게 징역 14년, 벌금 1000억원과 추징금 70억원을 구형했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2년 동안 롯데만큼 시련을 겪은 기업은 없다"라며 "끊임없는 압수수색과 법정 출석으로 기업 경영은 위축되고, 결국 준조세성 자금 지원으로 인해 총수 구속까지 당하며 한 마디로 새우등 터진 꼴"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 회장의 부재로 롯데 경영 환경이 악화되고, 그룹 전체가 흔들린다면 30만명 이상의 롯데 임직원, 협력사 가족들의 삶에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신 회장에 대한 항소심 선고기일은 오는 10월 5일 오후 2시 30분이다. 

[미디어펜=김영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