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은 단어를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전후문맥 속에서의 의미를 헤아리는 작업
   
▲ 홍지수 칼럼니스트
"너는 흉물스럽기가 꼭 현대미술 걸작 같다(You are so ugly you could be a modern art masterpiece)!" 1987년 개봉한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의 영화 <풀 메탈 재킷(Full Metal Jacket)>에서 해병대 신병 훈련교관 하트먼이 파일 사병의 면전에 대고 외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현대미술 작품들 대부분은 흉측해서 미술 작품이라고 불러주기도 민망스럽다. 표현하는 사람의 감정과 주관만 중요하다. 아름답지 않고 역겹다. 보는 사람을 역겹게 만드는 게 목적이라면 아름다울 '미'자를 써서 미술(美術)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 그런 역겨운 '작품'에 이른바 미술평론가들은 온갖 포스트모더니즘 전문용어를 갖다 붙이며 장광설로 포장하고 심오한 의미를 부여한다. 꿈보다 해몽이다. 

어느 국내 유명 화가의 작품에 대해 외국인 미술평론가가 쓴 평론을 번역해준 적이 있다. 아니, 번역이 아니라 거의 암호 해독 수준이었다. 마치 '너(독자)같은 범인(凡人)은 감히 이해하지 못할 내용'이라고 우쭐해하며 지적 우월감을 과시라도 하려는 듯, 장담컨대 본인도 이해 못할 해괴한 말장난으로 가득했다. 그 화가에게 물어봤다. 그 평론 내용에 공감하는지. 다 개소리란다. 그럴 줄 알았다.

사진작가 안드레 세라노(Andres Serrano)는 유리컨테이너에 플라스틱 십자가를 넣고 자기 소변을 채워 찍은 사진 <소변에 잠긴 예수(Piss Christ)>를 공개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생리혈, 정액, 모유 등 신체분비물을 작품(이걸 작품이라고 부르기도 참 역겹다)에 이용하는 이 작가는 <소변에 잠긴 예수>를 27만7천 달러에 팔았다. 

피에로 만쪼니(Piero Manzoni)는 90개의 깡통에 자기 대변을 채워 <예술가의 응가(Artist’s Shit)>라는 딱지를 붙였는데 깡통 하나가 12만4천 유로에 팔렸다. 트레이시 에민(Tacy Emin)은 콘돔과 온갖 신체분비물이 묻은 침대보가 구깃구깃한 채로 널려있는 자기 침대에 <내 침대(My Bed)>라는 제목을 붙여 15만 달러에 팔았다. 개념미술이라고 하는 것들은 정말 개념 없기 이를 데 없다. 

   
▲ 트레이시 에민의 'My Bed'.

포름알데히드를 채운 수족관에 담근 상어. 김밥처럼 썰어 정렬시킨 소. 발표하는 작품마다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영국 미술가 데이미언 허스트(Damien Hirst)는 2007년 플래티넘 해골에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촘촘히 박아 넣은 작품 'For the love of God' 을 선보였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미술품경매회사와 갤러리들은 이 작품의 제목을 "신의 사랑을 위하여"라고 번역했다. 

틀렸다. 이 작품의 제목은 허스트의 모친이 매번 해괴한 작품만 만드는 아들에게 탄식하듯 내뱉은 다음과 같은 말에서 따왔다. "하나님 맙소사, 다음번에는 뭘 만들 작정이냐(For the love of God, what are you going to do next)?" 'For the love of God'은 관용구로서 "신의 사랑을 위하여"가 아니라 '하나님 맙소사'라고 번역해야 맞다. 

앨버트 해먼드(Albert Hammond)가 부른 'For the peace of all mankind'라는 노래가 있다. 제목을 직역하면 인류의 평화를 부르짖는 내용일 것 같다. 멜로디도 잔잔하고 가슴 뭉클하다. 하지만 가사를 보면 인류의 평화와 전혀 상관이 없다. 이런 내용이다. 한 남성이 서로 합의 하에 하룻밤 잠자리를 같이 한 여성이 떠나고 난 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여성이 정말 다정하고 마음에 들어 남성은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그 여성이 어디 몰래 전화번호라도 적어놓고 갔나하고 여기저기 뒤지다가 제발 자기 머릿속에서 사라져달라면서 그 여성을 만나기 이전으로 되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탄식하는 내용이다. "제발, 꺼져줄래?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달라고(For the peace of all mankind, will you go away, will you vanish from my mind)."라고 이 남성은 절규한다. 그러니 노래제목의 "평화"를 굳이 평화라고 해석한다면 인류의 평화가 아니라 이 남성의 마음의 평화를 뜻한다. 이 노래의 제목은 관용구다. 제대로 번역하려면 '제발'이라는 딱 한 단어로 번역하면 된다. 

번역은 단어와 단어를 일대일로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그 단어가 쓰인 전후문맥을 살피고 문맥 속에서의 의미를 헤아리는 작업이다. 그리고 관용구의 의미는 그 관용구를 구성하는 단어들의 의미의 총합과 반드시 같지는 않다(The meaning of an idiom is not necessarily equal to the sum of all its parts). 위의 두 가지 표현이 바로 그런 관용구다. /홍지수 칼럼니스트·<트럼프를 당선시킨 PC의 정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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