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유진·조우현 기자] 국회 국정감사가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일부 국회의원들의 기업인들 마구잡이식 증인 요청이 '또' 도마 위에 올랐다. 금융 분야는 물론이고 기업 이슈와 무관한 농해수위까지 기업 총수들을 국감장에 부르겠다고 나서며 '호통 국감' 흑역사가 반복될 양상이다.
1일 국회에 따르면 오는 10일부터 29일까지 진행되는 국감에서 재판이나 검찰 수사를 받은 기업인들이 '증인 출석' 우선순위가 됐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이재용 부회장과 최태원 회장이 국회 정무위와 환노위 등의 '증인 출석' 대상으로 거론됐지만 최종 명단에서 제외됐다.
현재까지 증인·참고인 출석요구가 확정된 상임위는 정무위원회와 환경노동위원회 등이다. 국감 증인은 각 위원회의 간사가 의원실에서 신청한 명단을 1차적으로 검토한 뒤 전체회의에서 최종 결정한다.
환노위는 이윤규 애경산업 대표, 박동석 옥시레킷벤키저 대표, 박동욱 현대건설 사장 등을 주요 증인으로 신청했다. 앞서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등을 증인으로 부르겠다고 했지만 채택되지 않았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는 존 리 구글코리아 대표, 조용범 페이스북코리아 대표 등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교통위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등에 대한 증인 채택을 협의하고 있다.
다만 기업 이슈와 관련이 없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소속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을 국정감사 증인석에 세우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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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정부의 사실상 첫 국정감사가 다음달 10일부터 22일까지 열린다./자료사진=연합뉴스 |
농해수위 야당 의원들은 북한에 방문했던 기업 총수들을 비롯해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등을 국감장에 세우겠다는 방침을 여당에 통보했다.
지난 3차 남북정상회담 때 북한에 방문해 ‘북한의 산림을 지원하려는 약속을 했다’는 것이 증인 요청 사유다. 이에 농해수위 여당 간사인 박완주 의원은 “실무적 내용을 잘 알지도 못하는 대기업 총수를 불러 망신주기 하자는 데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권 CEO들도 국감을 앞두고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정무위는 지난달 28일 윤호영 카카오뱅크 은행장, 심성훈 케이뱅크 은행장 등 42명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지난해 채용 비리 사건과 금리 조작 사태 등으로 태풍이 일었던 금융권의 경우 최근 공개된 3당이 합의한 증인 명단에는 은행권 CEO들이 대거 빠졌지만 안심할 수 없다.
여당 측 인사들에 따르면 이번 증인 명단 신청 때 의원들 간 몇몇 은행장에 대한 소환이 쇄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최종 증인 채택 명단서 은행장을 1~2명쯤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여당 한 관계자는 "이번 채택 명단선 빠졌지만 대부분의 은행장들이 국감 증인으로 신청됐었다"면서 "지난해 국감장에 섰던 CEO의 경우 중복된다는 이유로 일부 빠지기도 했지만 정무위원회는 마지막까지 협의를 진행하기 때문에 채택 여부는 끝까지 가봐야 알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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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의도 국회의사당 전경./사진=미디어펜 |
안도하는 시중은행과 달리 인터넷전문은행들은 곤욕을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까지 은산분리 규제 완화로 국회가 고심했던 만큼 일부 여당 측 인사들은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 은행장을 불러들인 상태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번 국감 때 윤호영 카카오뱅크 행장과 심성훈 케이뱅크 행장에 대한 증인 신청을 진행했고 3당이 합의해 채택된 상태다. 각각 인가 과정의 특혜 의혹과 고신용자, 가계대출 위주의 영업 행태를 지적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기업인 증인 출석' 문제는 국감 시즌마다 되풀이되는 지적이다.
매년 이맘때면 "기업인에 대한 무분별한 증인신문이 기업인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고, 증인 채택여부와 관련해 불법적 로비 등 각종 비리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각 기업들은 대관 업무 팀을 중심으로 총수와 전문경영인들의 국회 출석을 막기 위해 연휴, 주말을 막론하고 분주하게 움직인 것으로 알려졌다.
권혁철 전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은 "우리나라 국감은 대체로 정치적 비리 문제에 초점을 맞춘 감사, 정쟁을 위한 감사, 인기영합적 감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며 "이른바 '거물급 증인'을 불러내 여론의 관심을 얻는 것이 국감의 주목적이 됐다"고 비판했다.
김행범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감의 본질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겉으로는 증인, 감정인, 참고인이지만 민간인이나 기업가를 그런 명목으로 불러내 이를 다그치고 공격하는 것은 국감의 법 목적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디어펜=박유진·조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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