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힘 있을 때 지켜진다는 진리 결코 잊어선 안돼
건군 70주년을 맞은 뜻 깊은 국군의 날 행사가 '밤의 행사'로 전락했다. 이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과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 일대에서는 지뢰 제거 작업이 개시됐다. 10년 단위 시가행진은 건군 이후 처음으로 볼 수 없게 됐다.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생경한 모습이다. 국군의 날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뜻 깊은 날이다. 1950년 북한의 6·25 기습 남침 때 우리 군은 탱크 한 대 없이 나라를 지켜냈다. 국군의 역사는 곧 대한민국의 역사다.

10월 1일이 국군의 날로 제정, 기념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 정규군의 설립은 미군정 당시인 1946년 1월 15일 조선경찰예비대(남조선국방경비대) 창설로부터 비롯됐다. 임시정부의 정규군인 대한광복군은 그 전인 1940년 9월 17일 창설됐다. 그런데도 10월 1일을 기념해 온 것은 1950년 6·25전쟁 당시 국군이 38선을 넘어선 바로 그날이기 때문이다. 
 
6·25전쟁에서 사망·부상·행방불명된 국군은 알려진 바에 따르면 98만7000명에 이른다. 마지막 생명선이었던 낙동강 전선을 육탄으로 사수한 국군이 없었다면 오늘날 이 나라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런 만큼 건군 70주년은 민족사적 기념일임에 이의가 있을 수 없다.

1949년 공군 창립으로 우리 군이 육·해·공 3군 체계를 갖춘 날이자 1950년 북한군에 밀리기만 하던 한국군이 38선을 넘어 반격의 전환점을 마련한 날. 그날의 감격과 군인으로서의 자부심을 한껏 드높인 그날이 바로 국군의 날이다.

   
▲ 국군의 날인 1일 오전 서울공항에 1996년부터 2005년까지 북한의 함경남도 장진, 평안남도 개천지역 등에서 북·미가 공동발굴한 6.25 참전 국군 유해 64위가 도착해 국방부 의장대에 의해 운구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건군 70주년. 인간으로 치면 여느 때보다 화려한 잔칫상이 차려지는 고희다. 그런데 올해는 시가행진마저 생략된 초라한 잔칫날이 됐다. 93년 이후 5년, 10년 단위로 꺾어지는 해에 대규모로, 아닌 때엔 계룡대 등에서 약식으로 진행되던 그마저 없다. 씁쓸함을 넘어 군의 사기가 걱정된다.

"국군의 날 행사 때마다 장병들이 시가행진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는데, 올해는 장병들이 주인공으로 축하받는 행사로 추진했다"고 하는 국방부 관계자의 말이 왠지 궁색한 느낌이다. 혹여 남북 화해 국면에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펼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까? 지난 2월 북한은 70번째 건군절을 맞아 이동식 ICBM까지 과시하는 대규모 열병식을 개최했다.

군은 명예와 사기를 먹고 산다. 보무당당한 그들의 모습에 박수갈채를 보내는 국민 앞에 명예는 드높아지고 사기는 오른다. 그리고 국민은 신뢰로 답한다. 모병제도 아닌 대한민국에서 국방의 의무에 임한 모든 자식들에게 이 땅의 부모들은 응원을 보낸다. 

지난날 청춘을 나라에 바친 숱한 영령과 이름 없는 병사들을 추도하고 기억할 수 있는 자리. 그곳엔 미래를 이끌어 갈 어린이도 있다. 우리의 역사는 책 속에서만이 아니라 때로는 그렇게 눈으로 보여줘야 한다. 박제된 역사에서 살아 있는 가슴 뛰는 역사를 느끼게 해야 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과거의 역사는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거울이다. 교육현장에서는 '자유민주주의'와 '남침'이 빠진 역사 부교재가 나돈다. 전쟁의 비극을 일으켰던 '적'은 '민족'이란 감성 앞에 면죄부를 받고 있다. 아픔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선 역사의 공과는 반드시 짚어야 한다.

국가안보의 최후 보루는 군이다. 그냥 '존재하는 군대'가 아니라 '싸워 이기는 군대'여야 한다. 국민은 대한민국의 강건한 군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하고 군은 그런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건군 70주년 국군의 날 우린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어 안타깝고 씁쓸하다.

"더운 여름, 준비하는 장병들이 힘들다. 주인공들이 즐기도록 기획했다"는 국방부의 해명은 이해하기 어렵다. 더운 여름에도 전쟁은 일어난다. 주인공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명예와 사기일 것이다. 힘든 훈련을 이겨내고 나라를 지킨다는 자부심, 그것을 가족 앞에 국민 앞에 떳떳이 보여주는 게 진짜 보람이고 즐거움이 아닐까.

남북 정상의 다정한 모습도 좋지만 평화란 언제나 힘이 있을 때 지켜진다. 힘없는 평화는 다른 나라(우방)의 배려에 의한 평화일 뿐이다. 그 배려가 끝나는 순간 허무하게 사라질 가짜 평화다. 청춘을 나라에 바쳐 복무하는 병사들과 평생을 국가에 헌신한 직업군인의 사기와 명예를 북돋아 줘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더 더욱 강군 건설과 사기 진작이 필요하다.

결국 70주년 국군의 날은 군사 퍼레이드는 없는 위문쇼가 됐다. 용산전쟁기념관에서 가수 싸이와 걸그룹 등 인기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행사가 열린다. 한·미 연합훈련도 중단됐고 최근 평양 군사 분야 합의에서도 많은 것을 양보했다. 이럴수록 군은 최악 상황에 대비 태세를 철저히 해야 한다. 그것이 군의 진짜 존재 이유다.
[미디어펜=편집국]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