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간 내부거래→일감몰아주기→총수일가 사익편취
"정책 용어는 중립적이어야…가치 판단 개입돼선 안 돼"
[미디어펜=조우현 기자]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7월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을 내놓으며 "상장·비상장사 구분 없이 총수일가의 보유 지분율이 20% 이상인 계열회사를 '사익편취 규제 대상 회사'로 설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두고 기업 계열사 간 내부거래 모두가 총수들의 '사익 편취'인 것처럼 비춰질 수 있어 중립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책 용어에 가치 판단이 개입돼선 안 된다는 비판이다.

공정위가 '사익 편취 규제'라고 규정한 규제의 본 이름은 지난 2014년 2월 신설된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등 금지(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2조 2항)'다. 

당초 공정위는 2013년 10월 해당 조항이 포함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며 "특수 관계인에게 부당한 이익 제공 금지행위 세부기준 등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당시에는 '일감몰아주기'나 '사익편취'라는 용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단지 해당 조항의 기대 효과에 대해 "상장 대기업 등으로부터 총수일가 보유지분이 많은 회사로 부당하게 부의 이전을 추구하던 총수일가의 사익편취행위를 실효성 있게 차단한다"고 설명했을 뿐이었다.

개정안이 신설되던 당시에는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등 금지'라는 용어보다 '일감 몰아주기'라는 말이 빈번하게 사용됐다. 

네이버 오픈사전에 따르면 '일감 몰아주기'는 "'재벌'이라 불리는 대기업 집단에서 계열사끼리 내부거래를 하고, 그 거래의 이익이 총수 일가에게 흘러가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이르는 신조어"를 의미한다.

   
▲ 공정거래위원회 로고./사진=공정거래위원회 제공


이는 대기업 계열사들 간의 내부 거래를 '비리'로 규정한 것이어서, 해당 용어에 '가치 판단'이 개입됐다는 지적이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제기 됐었다. 

우리나라 기업 대부분이 계열사 구조로 돼 있기 때문에, 긴밀하게 연결된 계열사들 간의 거래는 기업 경영 전략의 하나일 뿐 ‘비리’로 봐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일감몰아주기’를 중립적으로 표현하면 '계열사 간 내부거래'"라며 "내부 거래든, 외부 거래든 해당 거래가 '정상적인 시장가격'에 근거하고 있는 한 범죄로 규정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일감 몰아주기' 같은 언어의 마술 앞에 재벌은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버는 '악의 화신'으로 구조화된다"며 "'일감몰아주기'라는 언어의 분노를 온전히 풀지 못해 과잉규제로 치닫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공정위 등 정부는 가치 판단이 개입된 '일감 몰아주기'라는 용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했다. 그러다가 최근에 와서 '사익 편취 규제'라는 말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기업 계열사 간 내부거래 모두가 '사익편취'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사익 편취 규제'라는 말을 전면에 내세운 것에 대해 "의식을 하고 따로 낸 건지 모르겠지만, '사익 편취'라는 용어를 이전에도 써왔기 때문에 이번에만 썼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수관계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을 알기 쉽게 설명한 게 '총수일가에 대한 사익 편취 규제 금지'"라며 "국민들이 이해하기 쉬운 용어를 사용하다 보니 '일감몰아주기'나 '사익편취'라는 말을 혼용해서 쓴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현진권 전 자유경제원 원장은 "모든 정책 용어는 중립적이어야 한다"며 "쉬운 용어를 사용하면서 한쪽에 불리한 어감을 준다면 이것은 정부의 또 다른 규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의도적인 '가치 판단'이 개입될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정부 정책의 신뢰도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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