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노조, 항소심 재판부에 선처와 석방 요구 탄원서…9개월째 경영시계 스톱
롯데 노동조합이 신동빈 회장의 선처와 석방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례적이다. 통상 그룹 총수와 대립각을 세우는 노조원들이 총수 구하기에 나선 것 자체가 생경하다. 낯선 충격은 잠시다. 심각한 위기감에 대한 읍소기에. 한편으론 다행스럽고 한편으론 씁쓸하다. 

앙앙불락(怏怏不樂)하던 강성노조의 모습만 봐온 학습효과인지 얼핏 고개가 갸웃해진다. 깃발을 앞세운 시가행진과 한껏 목청 높여 외쳐대는 투쟁 구호, 그리고 파업. 이것이 지금껏 숱하게 지켜 본 익숙한 풍경이었다.

신동빈 롯데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9개월째 옥중 신세다. 검찰은 뇌물 공여와 경영 비리 혐의로 신 회장에게 징역 14년과 벌금 1000억 원, 추징금 70억 원을 구형했다. 신 회장은 지난 2월 뇌물 공여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됐다. 곧바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오는 5일 신동빈 회장의 항소심 선고 공판이 열린다. 롯데 노동조합은 지난달 10일 법정구속된 신 회장을 석방해 달라는 취지의 탄원서를 항소심 재판부에 냈다. 탄원서는 롯데쇼핑·롯데물산·롯데월드 등 롯데노동조합협의회, 한국노총 산하 전국관광·서비스노동조합연맹 집행부 총 19명 명의로 접수됐다. 

노조는 '국정농단' 사건과 2015년 롯데 경영 비리 사건이 병합된 이후 검찰이 신 회장에게 징역 14년을 구형하자 탄원서를 준비했다고 한다. 탄원서에는 "롯데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넨 대가로 부정한 이득을 취한 사실이 없을뿐더러 도리어 피해자"라고 적시했다. 

   
▲ 롯데 노동조합이 신동빈 회장의 선처와 석방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했다. 사진은 국정농단 사건 관련 뇌물공여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실형을 받고 법정 구속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8월 22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항소심 속행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롯데의 가장 아팠던 부분도 언급했다. "신 회장과 롯데는 박근혜 정부의 요구로 인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부지로 경북 성주 골프장을 제공했다가 마트 철수 등 중국의 각종 보복 조치까지 감수했다"고 적었다. 롯데는 사드 부지를 제공했다 중국의 보복 직격탄을 맞았다. 그 피해액만 2조 원이 넘는다. 

국가를 위한 결단이었지만 그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피해는 고스란히 롯데의 몫이 됐다. 그리고 신동빈 회장은 ‘묵시적 청탁’이라는 법전에도 없는 죄로 영어의 몸이 됐다. 신 회장 부재 9개월, 롯데의 투자와 고용이 중단되면서 그룹 자체의 위기론이 나오고 있다.

노조 탄원서는 이번 항소심 판결이 롯데그룹의 명운을 가를 만큼 절박하다는 것을 대변한다. 롯데는 자산 규모 100조 원이 넘고 한 해 매출 90조 원이 넘는 재계 5위 그룹이다. 롯데의 성장 이면에는 신 회장의 경영능력이 절대적 역할을 했다.

2004년 23조 원에 불과했던 롯데의 매출은 신 회장이 정책본부장으로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성장궤도에 올랐다. 신 회장은 롯데홈쇼핑·롯데하이마트·롯데렌탈을 잇따라 인수했고 2015년에는 삼성의 화학계열사를 3조 원에 인수하는 빅딜을 성공시켰다. 결과는 놀라웠다. 2016년 92조 원의 매출을 올리며 12년만에 4배나 몸집을 키웠다.

신 회장이 없는 8개월 남짓 롯데의 경영시계는 멈췄고 성장판은 닫혔다. 올 상반기 롯데의 투자액은 8791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20%가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30대 그룹의 전체 투자액은 45조6000억 원으로 24% 증가했다. 

채용도 얼어붙었다. 공채 2300명 선발은 지난해와 비슷하게 선발했다. 하지만 나머지 일반 채용이나 수시 채용은 줄거나 채용 일정 조차 못잡고 있는 실정이다.  쪼그라든 고용은 기업의 미래는 물론 국가적으로도 크나 큰 손실이다.

대규모 투자 결정은 무산되거나 표류하고 있다. 롯데가 올해 추진한 인수·합병은 10여건에 11조 원에 달한다. 롯데케미칼의 인도네시아 유화단지 조성 계획은 총수 부재 이후 무기한 연기됐다. 중국 랴오닝성 선양에 추진 중인 롯데월드 건설공사도 2년째 중단됐다.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3조원을 투자해 진행 중인 유화 콤플렉스 단지 조성작업도, 베트남에서 제과와 유통업체, 호텔 체인 등을 인수하는 작업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이번 항소심에서 신 회장이 또 다시 실형을 선고받으면 롯데월드타워 면세점의 특허도 취소될 가능성이 높다. 1400여명의 직원들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을 위기에 내몰린다. 엎친 고용 빙하기에 덮친 실업 대란을 부채질 하게 된다. 

우리나라 일자리의 14%는 30대 기업이 제공한다. 납품 업체, 협력 업체 등의 일자리까지 합하면 국민 3분의 1 정도가 생업을 전적, 또는 부분적으로 대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재벌에 대한 맹목적 적개심과 적대 행위는 결국 나라 경제를 흔들고 자기 살을 파먹는 것과 다름없다. 기업을 죄악시 하는 것은 자해 행위다. 

롯데그룹의 위기를 부른 신동빈 회장의 구속은 애초부터 의혹과 형평성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 주요 그룹 상당수가 검찰 조사를 받았으나 그룹 총수가 수감 중인 기업은 롯데가 유일하다. 묵시적 청탁 해석을 놓고 지나치게 자의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재판부의 오락가락한 판단은 형평성에 대한 시비를 자초했다.

신 회장과 롯데측은 묵시적 청탁과 대가성 여부에 일관되게 부인하며 검찰과 팽팽히 맞섰다. 반재벌‧반기업 정서를 업은 검찰이 법리보다 여론에 편승하고 있다는 비판도 거셌다. 경영권 다툼과 사드 부지 제공으로 괘씸죄에 걸렸다는 얘기마저 나돌았다. 어쨌든 1심 재판부는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항소심을 앞두고 '여론보다 법이 위에 있다는 것을 입증해 달라'는 말들이 다시금 나오고 있다. 강석윤 롯데노동조합협의회 의장은 "판사에게 신 회장이 죄가 없다고 설득하는 건 아니다"면서도 "롯데뿐 아니라 내수 경기마저 악화되는 상황에서 신 회장에 대한 선처가 국민 정서에 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민의 정서'란 말은 곱씹어 볼만한 대목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이번 판결에서는 어떤 정치적 고려도 없이 오로지 법률과 증거로만 판단해야 한다.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가장 독립적으로 엄정하게 판결을 내려야 할 때이다. 이 참에 기업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왜곡된 선입견도 바로잡아야 한다.
[미디어펜=편집국]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