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한반도 평화 무드에 취한 탓일까. 주무 부처 대신 총대를 맨 것일까. 

10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질문을 받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5.24 대북제재 조치 해제를 검토중”이라고 말했다가 번복하고 사과하는 일이 발생했다.

야당의 질타가 쏟아지자 강 장관은 “범정부 차원에서 검토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었다. 말이 너무 앞섰다면 죄송하다”고 사과했지만 당정 간 사전 논의가 있었던 것이 아닌지 의혹이 제시됐다.

남북관계에 훈풍이 지속되면서 선제적으로 대북제재를 해제하고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의 제재 완화 움직임까지 견인해보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이다. 그동안 여권에서 남북관계가 좋아질수록 ‘통일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며 뒷말을 해댄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강 장관은 이 대표의 유도성 질문에 작정한 듯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외교부 수장이라면 입버릇처럼 따라 붙어야 할 ‘북한의 비핵화 진전이 있을 때’라든지 ‘북한의 사과를 전제로 해서’라는 수식어도 들을 수 없었다.

거두절미하고 “검토 중이다”라고 답한 강 장관의 발언에 대해 한 청와대 관계자는 “한국말을 잘 못해서”라고 했고, 여당의 한 의원은 “해프닝 정도였다. 가치논쟁으로 번질 일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이해찬 의원과 강경화 장관의 이번 발언은 대북 문제에만 골몰한 현 정부의 조바심을 고스란히 반영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틀째 이어가는 여론비판이 반영하듯 국민들은 정부의 브레이크가 고장날까봐 불안하기만 하다.
  
마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강 장관의 발언이 나온 다음날인 11일 기자들로부터 강 장관의 5.24제재 해제 검토 발언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을 받고 “그들은 우리의 승인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승인(approval)’이라는 표현으로 우리에게 다소 모욕감을 줄 수 있는 발언을 한 것을 볼 때 일종의 경고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5.24 조치는 2010년 북한의 천안함 공격으로 우리 병사 46명이 죽음을 당한 뒤 정부가 북한을 맞공격하는 방법을 취하는 것 대신 조치한 경제제재였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제외 방북 불허, 남북 교역 중단, 대북 신규 투자 금지 등을 골자로 한다.

올해 들어 방북 인원이 5000명 가까이 되는 상황에서 5.24조치는 유명무실화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중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대북제재 완화 흐름이 형성되고 있는 와중에 우리까지 제재 완화부터 시도한다면 북한의 핵포기 의지는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 전 자신의 치적을 드러내고 싶은 강력한 유혹을 뿌리치고 대북제재의 끈만큼은 놓지 못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2018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북핵 폐기와 제재 해제와 관련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