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미국과 북한이 8일로 예정했던 뉴욕 고위급회담이 전격 연기됐다. 미 국무부는 7일 “이번주 뉴욕에서 예정된 폼페이오 장관과 북한 관료와의 만남은 더 늦은 시간에 열릴 것이다. 우리는 우리 각자의 스케줄이 허락할 때 다시 만날 것이다. 미국은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에 의해 합의된 약속을 충실히 수행할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북미 고위급회담에 대해 “가장 안정적인 형태”라는 표현을 써가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던 청와대는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이다. 

미 국무부가 “다시 만날 것”이라고 했고, 우리 정부도 “뉴욕 고위급회담은 아직 열려 있다”고 했지만 사실 이번 회담이 연기되면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은 물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이나 ‘종전선언’도 시계제로에 빠졌다.

청와대와 정부는 이번 회담 연기는 과거에도 반복돼 온 회담의 과정이라며 일희일비할 필요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청와대는 “연기가 됐다고 해서 북미회담이 무산되거나, 또 북미회담의 동력을 상실했다거나 하는 방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고, 외교부는 미 국무부 성명서 내용이 불쾌감을 표현하지 않았고, 따라서 북한이 무례한 방식으로 회담을 취소했거나 판을 깨려고 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북한이 만일 그랬다면 “국무부 성명이 조금 더 셌을 것”이라고 말했다. 

   
▲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연합뉴스, 미 중앙정보국 홈페이지


하지만 북미 고위급회담이 결렬되면서 비핵화 협상이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북핵 사찰·검증, 제재완화 등 미북 양측의 상호 관심사를 둘러싼 사전 조율이 여의치 않았던 것이라는 분석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미국이 이번 고위급회담을 준비하면서 1차 미북정상회담에서 나온 싱가포르 공동선언의 4개 사항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며 “그렇다면 이미 유해송환은 이뤄졌고, 미북연락사무소 설치와 종전선언을 미국이 수용하겠다는 것이라면 나머지 비핵화 문제가 남는다. 비핵화 부분에서 북한의 준비가 덜 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열린 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과 미국은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노력 ▲한국전쟁 당시 전쟁포로 유해발굴 및 송환 등 모두 4가지 사항에 합의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도 비슷하게 관측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전날 미 국무부의 싱가포르 공동선언을 언급하며 “이 점에 주목을 좀 해줬으면 한다. 북미고위급회담의 가장 중요한 내용 중 하나가 2차 북미 정상회담 시기와 장소를 좁혀나가는 것일테지만 비핵화와 관련된 합의 또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 유해발굴이 이뤄졌고 비핵화 문제가 중점적으로 논의돼 왔다면 이제부터 본격적인 비핵화와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에 대한 협상이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미국의 중간선거 이후 새롭게 조성된 환경과 조건 속에서 북미협상도 새로운 접근법을 취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도 “최근 북한이 발표한 성명을 볼 때 비핵화 조건이 제재완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이 점이 북미 간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을 기회를 미룬 요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 위원장이 최근 원산갈마지구에 가서 제재완화를 강력하게 이야기했는데 현재 상황에서 미국과 대화를 해도 그에 대한 성과가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을 북한이 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고위급회담을 북한과 미국 중 어느 쪽이 먼저 연기시켰는지에 대해서는 미 국무부도 밝힌 바 없고, 우리 정부도 질문에 답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북미대화의 공백기가 길어질 경우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평양 답방 등이 속도를 내면서 북한은 ‘배후 다지기’로 방향을 선회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이제 북미 간 고위급 회담이든 스티븐 비건 미 대북특별대표와 최선희 외무성 부상 간 실무협상이든 북미대화가 얼마나 이른 시일 내에 열릴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북미대화 진전 없이는 북한 풍계리와 동창리 사찰, 종전선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 남북 철도연결 공동조사 및 착공식 등 연내 계획했던 다른 일정들이 줄줄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