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 부상 일본, '울며 겨자먹기' 수용...제조업 '공동화'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환율전쟁'이란 수출경쟁력 유지를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 자국 통화의 '약세'를 유도하려는 싸움이다.

국가 간 최초의 환율전쟁은 지난 1985년 9월에 있었던 '플라자 합의'다. 미국, 일본, 영국, 독일(당시는 서독), 프랑스의 5개국 중앙은행 총재와 재무장관들은 달러의 '대폭 평가절하'에 합의했다.

미국은 1970년대 '석유파동'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선택했다. 게다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감세 정책'으로 경제 회복을 촉진했으나, 미국의 고금리와 달러 강세는 더 심화됐다.

달러화 지수는 1985년 3월 163.18포인트를 기록했다.

미국은 달러화 강세로 인플레를 억제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수출 경쟁력을 상실하는 '엄청난 댓가'를 치러야 했다.

철강, 섬유, 자동차 등 제조업 성장이 둔화됐고, 미국 기업들이 공장을 해외로 앞다퉈 이전, '제조업 공동화'가 나타났다. 미국 정가와 여론은 '보호무역'을 요구했다.

마침내 레이건 행정부는 '강 달러'를 포기하고 노선을 '대 선회'하게 된다.

미국은 난국을 해결하기 위해 결국 칼을  빼 들었다. 대미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중인 두 나라가 '타깃'이었다. 바로 서독과 일본, 특히 미국의 '라이벌'로 부상 중인 일본이었다.

플라자 합의에 참가한 각국 중앙은행은 외환시장에 '동시 개입'해 달러를 대거 팔아치웠다. 일본 엔화와 서독 마르크화 가치는 1년만에 각각 36.0%, 28.7% 급등했다. 같은 기간 달러화 지수는 23.7% 하락했다.

각국이 달러화 강세를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시그널'을 보내자, 달러화는 약세로 방향을 바꾸자마자 '오버 슈팅'을 나타냈다.

달러화 가치의 절하 폭은 예상보다 더 컸다. 결국 선진 6개국은 1987년 2월 달러 가치 안정을 위해 '루브르 협정'을 또 체결해야 했다. 그럼에도 엔화와 마르크화는 강세를 지속했다.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달러 약세는 일본과 유럽에 큰 부담이었다.

일본은행은 정책금리를 1985년 10월 연 5.0%에서 1987년 1월 2.5%로 '대폭 인하'했다. '수출형'에서 '내수형' 경제 모델로의 전환을 위한 노력이었다.

그러나 엔화 '초강세'로 몰려든 외국 자본과 완화적 통화정책은 부동산 및 증시 '거품'을 키웠다.  

엔화 강세의 효과는 서서히 본격화됐다,

일본 기업들은 환 손실을 피하기 위해 공장을 앞다퉈 아시아 각지로 '이전'했고, 일본은 제조업 공동화의 '늪'에 빠졌다.

일본 제조업체의 해외 생산비율은 1985년 2.9%에서 1990년 6.0%로, 다시 2015년에는 25.3%로 치솟았다. 무역수지는 1987년부터 4년간 계속 감소했다.

이런 제조업 공동화는 자산 '버블 붕괴' 이후 '장기 불황'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에 일본은 경기 침체 조짐에도 불구, 자산 버블 때문에 금리를 올릴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은행은 정책금리를 1989년 1월 연 2.5%에서 1990년 7월에는 6.0%까지 4차례 인상했다.

거품 붕괴에 금리인상까지 겹치면서,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1993년 -0.6%를 기록했다.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의 실질 GDP 증가율은 평균 1%로 하락, '저성상' 국면을 맞았다.

일본은 달러 평가절하의 '악영향'을 알면서도 '울며 겨자먹기'로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미국 내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엔화의 '기축통화' 격상이라는 '패권주의적 동기'도 있다.

또 일본이 미국과의 '군사동맹' 없이는, 다시 말하면 미국이 지켜주지 않으면 국가의 안위가 위태로운 '현실'도 한 몫 했다. '스스로의 힘'으로 주권을 지킬 수 없는 나라는 나라라고 할 수 없다. 일본으로서는 아무리 '부당'하다고 여겨져도, 미국의 '안하무인' 격의 압박을 버텨낼 수 없는 것이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아베 신조 정권을 포함한 일본 우익세력들이 '군사대국화'와 '전쟁 할 수 있는 나라'로의 개헌에 그렇게 집착하는 것도 이 때의 '아픈 기억'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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