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유진 경제부 기자
[미디어펜=박유진 기자] 연말연시가 되니 금융사들도 사회공헌활동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A금융사는 100억, B금융사는 회장이 직접 김치를 담가 소외계층에 전달하고, 직원들이 안쓰는 중고 사무용품을 복지시설에 기부하는 등 하루에도 다양한 활동이 홍보자료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러한 소식을 전달하다 보니 문득 사보 에디터로 지내던 시절이 떠올랐다. 기자가 되기 전 짧은 기간 보험사와 증권사, 방산업체 사보 에디터로 활동한 적 있다.

그때 목격한 사회공헌활동은 외부에 보여주는 것만큼 의미 있는 행사로는 기억되지 않는다.

김치를 담글 땐 어디선가 절여온 배추에 양념만 버무렸고, 칼국수를 만들 땐 공장에서 배송되어 온 반죽의 포장지를 뜯어 기계에 넣고 자르기만 했다. 115인분의 국수를 포장해 청소를 끝낸 뒤 기념사진을 촬영하기까지 30분이면 충분한 이유다.

한번은 저소득층 아이들을 데리고 분당에 있는 테마파크형 직업체험장에 간 적 있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 하던 때와 달리 아이들의 표정이 무척 어두워 기자도 직원도 쩔쩔 맸다.

그 중 한 여자 아이는 유독 말수가 적었는데, 처음엔 '내성적이겠거니' 하고 체험장을 둘러보다 처음으로 밝고 씩씩한 목소리를 듣게 됐다.

연예인 체험이 하고 싶었는지 직원에게 큰 목소리로 "아저씨, 저거 할래요"하고 외치던 아이는 긴 줄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불평 한마디 없었다.

   

결국 오랜 기다림 끝에 아이는 체험장 안으로 들어갔다. 직원은 잠시 쉬기 위해 근처에 있는 의자로 이동했다. 미혼 남성인 그는 아이들을 데리고 테마파크에 온 게 처음이라 긴장한 게 눈에 보였다.

사건은 직원 대신 체험하는 아이를 혼자 지켜볼 때 일어났다. 아이가 잠시 뒤를 돌아보던 그 순간의 표정은 3년이 흐른 지금에도 생생하다.

유리 벽에서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 모습을 보며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거나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 아이에게는 그러한 존재가 한 명도 없었다.

체험 부스를 나온 뒤 아이의 표정은 더욱 더 어두워졌다. 뒤늦게 쫓아온 직원은 그 모습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렇게 물었다. "오래 놀아서 피곤한가 보구나. 밥 먹으러 갈래?" 첫 체험이었는데 말이다.

개인적으로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을 불편해하는 이유다. 진정성이 없는 봉사는 받는 이들에게도 피로감과 상처를 준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봉사는 우리 사회에서 진정 필요한 사회적 가치이자 큰 책무다. 기업들은 이러한 역할을 멈춰선 안된다. 이 역할을 했을 때야 비로소 사회적 기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방법과 실천 자세에는 성숙함이 부족한 것 같다. 단순히 돈을 기부하고 물건을 나눌 줄 아는 것은 동정이다. 진심을 담아야지만 기업들이 강조하는 '사랑의 나눔'이라 할 수 있다.

그때 그 칼국수, 기계에서 뽑은 임원에겐 이런 진심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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