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한진 기자] 지난 주말 KT 서울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는 초연결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남겼다. 네트워크와 단절된 현실은 불편함의 연속이었다. 스마트폰이 먹통 되고, 신용카드 결제가 불가능해진 일부 지역은 정보화 시대에 외딴 섬이나 다름없었다.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시설에는 충분한 백업 체계가 마련되지 않아 피해를 줄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관부처와 해당 기업 모두 공통적으로 아쉬움을 토로하는 부문이기도 하다.

   
▲ 24일 오전 지하 통신구에서 화재가 발생한 서대문구 충정로의 KT 아현빌딩 앞에서 소방대원들이 화재진압 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돌발 변수에 대비한 백업 체계는 어느 분야에나 적용될 수 있다. 지갑속의 비상금과 보험가입 등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 정부의 기업정책을 보면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고려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최근 경제성장률 하락과 고용 악화, 핵심 수출산업의 경쟁력 저하가 지표로 나타나고 있다. 상법개정에 따른 경영권 방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소득주도 성장’은 변함없이 유지돼야 하고, 정해놓은 틀에 모든 걸 끼워 맞추려는 모습이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우선 신사업추진을 위한 규제개혁이 지지부진하다. 장벽을 허물겠다는 말은 정부와 정치권 곳곳에서 끊임없이 나오는데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효과는 크지 않다.

상법까지 개정되면 기업들은 경영권 방어에 무게를 둘 가능성이 크다.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 필과 같은 수단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우리 기업들이 해외 투기 자본의 먹잇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지금은 정부가 도와줘야 할 때인데…”라는 작은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자칫 밉보일까 큰 소리를 내지 못하지만. 기업들의 위기감은 어느 때 보다 크다. 미래기술 경쟁력은 선진국에 뒤지고, 기존 먹거리를 빼앗기 위해 쫓아오는 중국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 알리바바, 샤오미 등 주요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차등의결권을 바탕으로 혁신성장에 매진하는 상황이다.

기업을 떼어 놓고 우리의 경제 성장, 양질의 일자리 창출 등을 얘기하기는 어렵다. 자원 빈국인 우리에게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기업들은 점점 몸을 움츠리고 있다.

최근 화재가 발생한 아현 기지국은 D등급 시설로 분류돼 백업 체계 구축이 의무가 아니었다. 불가항력이라는 변명이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방통행 정책’으로 우리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하나 둘 씩 뒤쳐질 경우 어떤 명문을 내놓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 기업과 경제에 대한 경고음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울리고 있다.

통신시설은 길지 않은 시간에 복구가 가능하다. 그러나 한번 고꾸라지기 시작한 경제와 기업경쟁력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과거 우리보다 잘 살았던 일부 국가는 잘못된 선택으로 수십년 째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갈림길에 서 있다. 어쩌면 데드라인에 다가서고 있는지도 모른다. 백업 체계도 없는 상황에서 기업만을 몰아 붙여서는 곤란하다. 상생의 전략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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