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웃는 사람이 있으면 우는 사람이 있다. 선의의 정책도 항상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숱하게 듣는 이야기지만 진리에 가깝다. 정부가 자영업자들의 비명에 놀라 카드 수수료 인하를 대폭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정부가 밀어 붙이는 정책이 현장에서 엇박자를 내자 달래기 정책이다.
정책은 누구 편이 아니라 모든 국민 편에서, 국가적 차원에서 결정이 이뤄져야 한다. 운다고 빵 하나 더 주는 단순사회가 아니다. 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는 카드업계의 생존과 소비자들이 누리는 혜택과 직결돼 있다. 시장에서 이뤄진 카드 생태계가 위협 받고 있다.
카드업계는 그야말로 초비상상태다. 정부의 우는 아이 달래기식 돌려막기가 '을들의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 자영업자를 위한 대책의 대척점에는 카드 설계사(모집인)들이 있다. 콜센터도 있다. 카드업계의 가장 약자로 꼽히는 모집인과 콜센터 직원들은 안절부절이다.
카드 모집인들은 생활 전선에서 카드 몇 장씩 접수해 근근이 생활하는 생계형 사람들이 많다. 수수료 인하로 생기는 손실을 충당하기 위한 카드사들의 선택폭은 넓지 않다. 수입 감소로 생기는 구조조정의 1차 희생양은 생계형 카드 모집인과 콜센터 직원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카드사들은 전전긍긍이다. 고용 제일주의를 부르짖으며 친노동 정책을 밀어 붙이는 정부의 정책에 기업이 대놓고 반발하기는 애초 싸움이 되지 않는 전쟁이다. 서슬 퍼런 정부에 찍히면 끝이다. 기업도 개인이나 마찬가지다. 생존이 목적이다. 많은 고용인을 거느리면 그만큼 책임도 커진다. 그리고 그렇게 기업들은 이 나라 경제를 이끌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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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드 수수료 인하와 관련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와 전국금융산업노조 대표들이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안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세계가 찬탄하는 기적도 이뤘다. 그러나 기업의 생명은 순간의 찬사에 머물 수 없다. 그 순간 정글에서 도태되고 만다. 찬사보다는 때로는 지탄을 받더라도 지속성장 가능한 미래 먹거리를 찾아 헤매야 하는 외로운 사냥꾼이자 개척자가 되어야 한다. 기업가 정신이다. 황무지에서 각골의 정신으로 일궈온 기업들이 의욕을 잃어 가고 있다.
기업이 활력을 잃으면 그 영향은 고스란히 근로자들에게 전이된다. 그게 생존법칙이다. 카드 수수료 인하 혜택자들은 당장은 연명장치에 웃을 수 있겠다. 문제는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들어 내고 그 희생자들의 울음은 결국 뫼비우스의 띠처럼 순환된다.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무거운 돌과 끝없는 씨름을 하듯. 승자 없는 패자만의 세상이 된다.
근본 처방 없는 인기영합적인 표퓰리즘 정책의 당연한 결말이다. 카드수수료를 인하하자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카드사노동조합협의회 조합원들은 일자리를 잃을 위기감에 대책을 촉구했다. 구조조정의 칼날이 이들의 목을 겨누고 있다.
카드업계의 선택은 분명하다. 사업을 접거나 살기 위해선 구조조정에 내몰리게 된다. 구조조정의 1순위는 비정규직이거나 주부와 노년층, 외주 또는 콜센터 직원이 될 터이다. 이미 카드사들은 실적 악화로 취약계층을 감원해 왔다. 이제 그 대상이 넓어지고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카드사들의 자기자본이익률은 2014년 9.5%에서 지난해 5%로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2013년 계약직 사원은 4226명에서 2018년 말 현재 1692명으로 62%나 줄었다. 특수고용직인 카드 모집인은 2016년 2만2872명에서 올 상반기 1만3811명으로 급감했다. 정부의 수수료 인하 폭탄의 결과는 이들의 자리를 위협한다.
카드사의 후방업종인 밴 업체도 사면초가다. 국내 밴사의 대행수수료는 2016년 9.3%에 이어 지난해 8.7%, 올해 1분기 8.2%까지 추락했다. 정부의 수수료 인하로 카드사는 추가로 20% 안팎에서 인하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대행료는 내년 7%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줄도산이 우려된다.
정부의 섣부른 정책이 또 다른 을들을 위기로 내몰고 있다. 자칫하면 시장에서 자생한 카드 생태계 전체가 위협받을 수도 있다. 시장 생태계가 무너지면 복구에 얼마의 비용과 얼마의 대가를 치러야 할지 알 수조차 없다.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
현 정부의 대책은 하석상대에 불과하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격이다. 그러다 아랫돌이 흔들리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원인에 맞는 처방을 내놔야 한다. 우는 아이 달래기 위해 다른 아이의 사탕을 뺏어선 안 된다. 지금 정부는 을들의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 심판자가 아닌 조정자가 돼야 한다. 오만을 버려야 한다. 권력의 독선은 자신을 향한 독이다.
[미디어펜=문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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