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 올해 초만 해도 총 공모액 10조원 이상의 호황이 기대됐던 기업공개(IPO) 시장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침체기를 맞이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상장의 문턱을 낮춰줌으로써 공모기업 숫자는 늘었지만, 대어급 회사들이 상장을 철회하는 등 내실을 살펴보면 성과가 크게 부진했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 한 해 동안 상장된 공모 기업 수는 총 79개(예정 포함)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코스피 시장 9개, 코스닥 시장에서만 무려 70개 기업이 올해 신규 상장됐거나 앞으로 될 예정이다. 특히 지난달부터 두 달 새 31개 기업이 몰리면서 북새통을 이뤘다. 작년 대비 17개 이상 상장기업이 늘어나는 셈이라 적어도 양적으로는 풍성한 것처럼 보인다. 

   
▲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정작 내실을 들여다 보면 분위기가 바뀐다. 오히려 업계 관계자들은 “올해 같은 IPO 침체는 오랜만에 본다”고 입을 모으는 실정이다. 일단 상장 예정이던 대어급 회사들이 잇따라 기대에 못 미치는 흐름을 나타냈다.

올해 상장된 아시아나IDT, 전진바이오팜, 베스파 등 기대를 모았던 기업들의 공모가는 희망공모가 밴드 하단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에서 정해졌다. 심지어 뉴트리, 윙입푸드, 에코캡 등은 청약 미달이 발생하기도 했다. 

기대주들의 부진한 성적은 시장 전체에 영향을 줬다. 상장을 앞뒀던 기업들이 잇따라 상장 ‘자진 철회’를 선언한 것이다. 

한국거래소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장예비심사 과정에서 심사를 철회하거나 승인을 받은 후 상장을 취소한 기업은 지난 4월 SK루브리컨츠를 시작으로 무려 17개에 이른다. 이는 작년 11개사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이다. 

기업들이 IPO를 꺼리게 된 배경은 주식시장의 침체에서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코스피 지수와 코스닥 지수는 연초 대비 각각 17.2%, 18.6% 급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장 불확실성이 워낙 커졌기 때문에 기관투자가들의 수요예측 참여도 급감했고 자연히 공모가가 크게 떨어졌다. 

여기에 삼성증권 파문,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과 바이오 업종에 대한 회계감리 이슈 등 유독 사건사고가 많았던 한 해였다. 결국 올해 코스닥 최대의 기대주로 꼽힌 카카오게임즈와 현대오일뱅크 등이 상장을 자진 철회하거나 내년으로 미뤘다.

정부 정책의 실패도 한몫을 담당했다는 지적이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 4월 코스닥벤처펀드를 내놓으면서 공모주 30%를 ‘의무배정’하도록 했다. 이는 단기적으로 공모 청약시장을 과열시키는 효과를 냈지만 이후 거품이 빠지면서 오히려 시장 침체를 가속화 시켰다는 지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정책 실패가 오히려 공모시장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결과를 만들었다”고 지적하면서 “공모시장의 침체는 자연히 유통시장의 침체로 연결되고, 결국 주식시장의 기업과 투자자 모두가 피해를 보는 악순환의 한 해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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