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찾아 고민과 고충 해결 노력 절실…예술가와 국민 눈높이 맞춰져야
   
▲ 김진각 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 곳곳이 동토(凍土)의 공간으로 스멀스멀 바뀌었다. 경제가 죽을 쑤다보니 해빙(解氷)에 대한 기대마저 난망한 게 현실. 삶이 팍팍해지면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닌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란 보통 사람들에겐 사치나 마찬가지다. 공연 등 문화예술 분야가 경제난의 '단골 직격탄'을 맞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금의 문화예술계야 말로 사회의 어떤 영역 보다 꽁꽁 얼어붙어 있다. 공연계의 대목이라는 연말연초에 어느 정도 회복해야 연명이 가능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은 곳이 수두룩하다. 관객들이 지갑을 열지 않는 데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당국의 당찬 의지가 뒷받침된다면 너끈히 극복할 수 있다.

사실 문화예술계는 2017년 6월 취임한 도종환 문화체육부 장관에 대한 기대감이 컸었다. 그가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던 유명 시 '접시꽃 당신'을 쓴 시인 출신으로 문화에 대한 이해가 일천하지 않은데다, 재선의 국회의원으로 국회 문화관련 상임위에서 오랜 기간 활약한 경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재임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 문화예술계와 학계가 그에게 쥐어 준 성적표는 썩 만족스럽지 않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문화 수장이기도 한 그는 문화예술정책이라는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임에도 연주자들과 하나 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관객들의 박수를 이끌어내는데에도 한계를 겪었다. 문화예술 뿐 아니라 체육과 관광 업무도 소홀하기 힘들다보니 '선택과 집중'이 어려운 탓이 컸겠으나, 그럴수록 문화예술에 행정의 무게 중심을 실었다면 문화의 일취월장을 가까이에서 맛볼 수 있었을 것이다.  

영국과 함께 우리나라 문화예술 정책 수립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20세기 프랑스 문화정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소위 좌파 정부로 불렸던 미테랑 대통령 시절 문화부 장관을 했던 자크 랑이다.

우파 드골 정부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와 상반되는 문화정책을 펼쳤던 랑은 문화의 일방적 보급보다는 예술의 창의성과 창작에 주안점을 뒀다. 정부 주도가 아닌, 정부 입김이 철저히 배제된 문화예술인들의 자율적 창작에 방점을 찍었던 것이다.

   
▲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진흥위원회를 방문해 직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질문에 답하며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있다. /사진=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정부가 예술에 직접 간여하는 순간 문화예술의 가치는 희석된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랑의 '문화 드라이브'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문화의 지방분권화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으며, 문화예산을 대폭 늘려 프랑스의 문화적 자부심을 높이기 위한 대규모 문화사업을 밀어붙였던 장본인이다. 학자들 사이에 자크 랑에 대한 평가가 일부 엇갈리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프랑스가 문화대국으로 우뚝 선 배경에 랑의 탁월한 역량이 자리하고 있음은 부인키 어렵다.

누가 뭐래도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다. 상상력과 창의성을 무기로 인간의 정서와 끊임없이 교감하는 문화예술의 중요성이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커졌다는 의미다.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이, 범위를 조금 좁히자만 문체부 장관의 역량이 그래서 늘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도 장관은 자신의 실력을 100%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는 바람에 정작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골든타임을 허비하고 있다는 지적을 새겨들어야 한다.

불황과 문화예술은 비례한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유탄을 맞는 곳이 문화예술계다. 우리 국민의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이 OECD 국가답지 않은 탓에 가계 사정이 좋지 않으면 여지없이 관심을 닫는다. 연극 클래식 무용 등 순수예술의 매출은 일부 인기 공연을 제외하곤 지난해에 비해 뚝 떨어져 있다. 영화 등 대중문화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비단 산업적인 매출 감소 뿐 아니라, 국민의 문화향유 기회도 덩달아 사라지고 있다.

2월 개각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도 장관이 진면목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남지 않은 것 같다. 문화예술계 지원과 창작의 자율성 보장 등을 정책 성과로 생각해선 곤란하다. 끊임없이 현장을 찾아 문화예술인들의 고민과 고충을 듣고 해결에 나서야 하고, 경제적 이유 때문에 문화 향유가 힘들어진 국민을 위한 정책을 쏟아내는 노력을 멈춰선 안 된다.

문화예술 정책과 정치는 때론 실과 바늘의 관계가 될 수도 있지만, 문화 정책 수장인 도 장관의 시선은 끝까지 예술가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어야 한다. 그것이 도 장관이 퇴임 후 문화 수장으로서의 성공 여부를 평가받는 기준이 될 게 분명하다. /김진각 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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