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이승우(헬라스 베로나)가 또 화제의 인물이 됐다. 이번에는 부정적인 의미에서다.

한국은 16일 밤 열린 중국과의 아시안컵 C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2-0으로 이겨 3전 전승, 조 1위로 16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2차전까지 부진했기에 중국전도 고전하지 않을까 걱정됐지만 이틀 전에야 팀 합류해 제대로 쉬지도 못한 손흥민을 투입하는 강수까지 두며 승리와 조 1위를 따낼 수 있었다. 

전반 황의조의 페널티킥 골, 후반 김민재의 멋진 헤딩골이 터져나왔다. 손흥민은 황의조의 골로 연결된 페널티킥을 얻어냈고, 김민재의 골에 코너킥으로 도움을 기록하며 역시 월드클래스다운 실력을 뽐냈다. 

한국 선수단, 축구팬들이 기쁨을 누릴 만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날 한국은 후반 3차례 선수 교체를 했다. 2-0으로 리드하고 있던 후반 25분 황의조 대신 지동원, 36분 이청용 대신 주세종이 투입됐다. 승부가 거의 결정난 후반 43분, 마지막 교체는 제몫을 다하고 체력도 떨어진 손흥민이었다. 출전 대기 지시를 받고 몸을 풀고 있던 선수들 중 구자철이 호명됐고, 함께 몸을 풀던 이승우는 벤치로 돌아가야 했다. 

이 때 이승우는 잔뜩 화가 난 모습으로 근처에 있던 물병을 걷어찼다. 화가 풀리지 않는지 수건에도 발길질을 했고 차고 있던 정강이 보호대도 빼서 내던졌다.

누가 봐도 출전을 하지 못하게 된 데 대해 화를 낸 것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화일 수도 있고, 확대 해석하자면 자신을 기용하지 않는 벤투 감독에 대한 불만 표출이었다. 경기 후 이승우는 현지 취재 중이던 국내 기자들의 인터뷰를 거절하고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남겼다고 한다.

   
▲ 사진=대한축구협회


이승우는 많은 팬을 보유한 선수다. 어려서부터 탁월한 축구 재능을 보였고, 일찍 스페인으로 건너가 선진 축구를 익혔다. 베로나로 이적해 이탈리아에서 활동 중인데, 기복을 보이긴 했으나 최근에는 주전 자리를 굳히며 많은 경기에 출전해왔다.

이승우는 지난해 러시아 월드컵과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잇따라 대표로 출전해 한국대표팀의 차세대 간판도 예약하는 듯했다.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이승우가 연장전 일본을 무너뜨리는 골을 넣고 펼친 골 세리머니는 너무나 인상적이었고 통쾌했으며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이승우가 아시안게임 후 기량 정체를 보이자 벤투 감독은 조금씩 그를 외면했다. 이번 아시안컵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도 이승우는 빠졌다가, 나상호의 부상 낙마로 대회 직전 대체 멤버로 긴급 호출됐다.

어렵게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아시안컵에 첫 출전하게 됐으니 이승우는 의욕이 넘칠 것이다. 하지만 예선리그 3경기를 치르는 동안 이승우는 한 번도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사실 중국전 세번째 교체 카드는 손흥민 대신 이승우를 내보내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승부는 이미 결정났고, 이승우에게 그라운드를 밟을 기회를 주는 것이 벤투 감독이 해야 할 배려처럼 보였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이승우를 또 외면했고, 이승우는 이런 상황에 겉으로 화를 표출시켰다.

벤치에만 앉아있는 심정을 잘 아는 선수들은 이승우를 이해할 것이다. 팬들도 그럴 만도 하다고, 이번 이승우의 돌출 행동을 이해해줄 수 있다.

그러나, 이승우의 물병킥이 앞으로 16강 토너먼트를 치러야 하는 대표팀 분위기에 어떤 영향을 끼칠 지 생각해야 한다. 이날 중국전은 한국에 매우 중요했다. 앞선 두 경기에서 실망스런 모습을 보였던 대표팀은 중국을 반드시 이겨야 조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벤투 감독이 체력적으로 힘들 것이 뻔한 손흥민을 무리해서 투입할 정도로 이 경기 승부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리고 원하던 좋은 결과를 얻었는데, 이승우가 모처럼 훈훈해진 대표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이승우는 개인적인 불만을 잠시 접어두고 동료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부터 했어야 한다.

이승우는 대표팀 막내다. 선배들은 이승우를 다독여줄 것이다. 그 다음은? 만약 함께 경기를 뛰게 됐는데 이승우와 호흡이 안 맞았을 때, 서로 격려해주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가 싸늘해질 수 있다. 팀 정신이 유난히 강조되는 축구이기 때문이다. 

이승우는 손흥민의 이날 경기를 지켜봤다. 이틀 전 새벽까지 풀타임 경기를 소화하고 긴 시간 비행기로 날아와 대표팀에 합류한 손흥민이 중국전에 선발 출전해 거의 풀타임을 뛰었다. 손흥민이 무리가 되는 일정에도 경기 출장을 강행하고, 이승우가 벤치를 지키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이승우가 모른다면, 앞으로도 출전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승우가 본격적인 16강 전쟁에 나서는 대표팀에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승우가 힘껏 차야 할 것은 물병이 아니라 그라운드에서 상대 골문을 겨누는 볼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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