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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우석 언론인 |
3.1절을 앞두고 개봉된 애국과 항일을 소재로 한 영화 두 편의 흥행 성적을 잠시 음미해보자. 당초 뭐가 있는 듯 요란했던 게 '항거:유관순 이야기'와 '자전차왕 엄복동'이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본 지금 1중(中)1약(弱)의 빈약한 성적표가 전부라는 게 확인됐다.
'항거:유관순 이야기'의 경우 누적 관객수가 114만 명이라서 볼륨이 크지 않은 게 아쉽지만 원래 저예산 영화로 출발했고, 50만 명만 들어도 호성적이라고 예견했던데 비해 나쁜 성적은 아니다. 흡인력 있는 흑백영화를 선택한 점, 고아라의 좋은 연기가 뒷받침된 결과이지만, 1000만 관객을 호령하는 시대에 내놓을만한 성적이 못되는 게 사실이다.
'자전차왕 엄복동'의 경우 기대작이란 예상을 깨고 혹독한 성적에 울었다. 누적 관객 18만 명이 전부였는데, 졸렬한 연출에 주연배우의 발연기가 빚은 참사다. 두 편의 흥행을 놓고 보면 관객은 항상 영리한 선택을 하는 법인데 3.1절 100주년이라고 해도 상황은 변함없다.(두 영화보다 보름 늦게 개봉한 '1919 유관순'은 이 글 논의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누적 관객수 10만 명을 채우기도 힘들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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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극한직업'과 신과 함께-죄와 벌' 포스터. |
'코드 영화 피로증후군'을 아세요?
이게 무얼 말해줄까? 애국·항일의 코드론 관객의 마음을 열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럼 1000만 전후의 관객을 모았던 2015년 '암살'(1271만 명) 과 2016년 '밀정'(751만 명)의 흥행은 한 물 갔다는 얘길까? 일반화는 이르다. 단 최근 개봉했던 '극한직업'(1626만 명)과, 1년 반 전의 '신과 함께-죄와 벌'(1441만 명)의 대박과 잘 비교해봐야 한다.
두 편의 흥행 호조에 담긴 의미는 간단치 않다. 우선 각각 코미디-판타지 장르의 선전이 이례적인데 두 영화에는 애국·항일의 코드는 물론 '변호인', '1987', '택시운전사' 같은 운동권 코드 같은 게 약간이라도 들어있지 않다. 그런데도 관객들은 그걸 선택했다. 왜? 나는 그걸 '코드 영화 피로증후군'에 따른 역선택이라고 파악한다. 그런 코드 영화에 지친 것이다.
사실 90년대 이후 한국영화는 코드 영화의 범람이 특징이다. 어깨에 힘이 들어간 애국·항일의 코드에서 각종 운동권 코드는 물론 '공동경비구역 JSA', '의형제' 같은 우리민족끼리 코드에서 '괴물', '웰컴 투 동막골' 같은 반미 코드까지 거의 예외 없다. 그건 영화인협회장을 지냈던 여배우 김지미의 표현대로라면 기존 영화판에 없던 점령군의 시대였다.
어떤 형태로든 영화에 정치색이 입혀진 시대이기도 했다. '극한직업'과 '신과 함께-죄와 벌'의 성공은 그런 코드와의 결별 속에서 이뤄졌다. 웃음과 재미, 삶에 대한 성찰만이 각각 있을 뿐이다. 때문에 이 두 편의 영화를 나는 무균질 영화, 즉 정치색과 굿바이한 작품의 승리로 본다.
결과적으로 역대 영화 관람객 수 베스트 10의 앞자리를 이들이 성큼 점령하는 변화까지 이끌어냈다. 1위 '명량'(1761만 명)의 뒤를 2, 3위 '극한직업'(1626만 명)과 '신과 함께-죄와 벌'(1441만 명)이 버티고 있는 그림은 1년 전엔 꿈꿀 수 없었던 일이다. 이통에 4, 5, 6위로 밀린 게 '국제시장'(1426만 명), '베테랑'(1341만 명), '아바타'(1333만 명)등이다.
나머지 '도둑들'(1298만 명), '7번방의 선물'(1291만 명), '암살'(1270만 명), '광해-왕이 된 남자'(1228만 명)까지가 베스트10을 장식한다. 그렇다면 '극한직업'과 '신과 함께-죄와 벌'의 성공은 한국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예고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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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와 '자전차왕 엄복동' 포스터. |
영화 캐릭터의 폭이 너무 좁다
코드 영화를 만들어내는 영화판의 구조가 철옹성처럼 여전한 상황에서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할 것인가? 제비 한 마리 왔다고 봄이 오는 건 아니다. 때문에 좀 더 지켜볼 일이지만, 관객들의 취향에 변화가 온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걸 어떻게 해독하느냐에 따라 한국영화의 앞날이 결정될 수 있다고 나는 지적하려 한다.
그리고 차제에 밝혀두지만 '항거:유관순 이야기'와 '자전차왕 엄복동'의 흥행 부진은 영화 캐릭터 선택의 패착을 보여준다. 쉽게 말해 유관순과 엄복동이라는 영화 캐릭터를 21세기 한국인이 열광하기엔 거리가 있다. 지금 같은 시대에 항일 투사를 말하고, '쳐다보니 안창남, 굽어보니 엄복동'을 반복하려는 건 다분히 시대착오가 아닐까?
그건 고려대 명예교수 최장집이 언급했던 최근 관제(官製) 민족주의에 대한 영합일 수도 있다. 영화는 무엇보다 동시대를 호흡하는 장르인데, 왜 동시대의 살아있는 인물을 신선하게 등장시키는 노력을 하지 않는가? 상식이지만 영화-소설 등 이야기 산업은 '캐릭터 반 이야기 반'의 구조다.
캐릭터만 잘 설정해놓으면 절반의 성공을 먹고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한국영화는 매력적이고 멋진 캐릭터의 발굴을 소홀히 해왔다. 이에 대한 나의 불만은 오래 전부터인데, 21세기를 명멸했던 숱한 인물, 논란 속의 문제적 인물을 영화라는 용광로에 넣어야 영화 장르가 살아난다는 명제를 오늘 재확인한다.
우리의 경우 영화 캐릭터 선정의 폭이 너무 좁고, 영화 외적 요인에 좌우되어왔고, 그게 너무 오래되면서 영화의 빈곤을 자초했다. 그게 영화 대중이 유관순과 엄복동을 외면한 배경이다. 다음 회 칼럼에는 내가 영화감독이라면 작품화하고 싶은 20세기 인물 셋을 각각 다룰까 한다.
일제시대 재계의 인물, 오늘의 서울을 만든 시장에 이어 영화감독 한 명도 들어있다. 그들의 무궁무진한 스토리와 반전(反轉) 매력을 확인해보며, 그동안 왜 우리가 그들을 놓쳐왔나를 점검해보자는 자리다. 당신의 반응이 궁금한데 물론 엄숙주의엔 관심 없다. 그들이 우리시대 관객들과 얼마나 멋지게 호흡할 수 있을까를 확인해볼까 한다. /조우석 언론인
[조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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