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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의 전성기 때의 왕 필리페2세 [사진=네이버 지식백과] |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해가 지지 않는 제국'.
흔히 빅토리아여왕 시절 전성기를 구가했던 대영제국을 일컫는 수사다. 하지만 이 표현의 '원조는 근세 초 세계를 지배했던 스페인'이다.
당시 스페인 왕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겸하고 있었다. 따라서 스페인 본토는 물론, 지금의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포함한 독일 영토의 일정 부분, 밀라노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북부와 교황령 남쪽의 이탈리아 및 시칠리아, 그리고 프랑스의 일부도 영토로 보유하고 있었다.
더욱이 스페인의 전성기를 이끈 필리페 2세는 당시 '전 세계를 양분하고 있던 초강대국' 포르투갈을 합병, 그 세력을 고스란히 손에 넣었다.
이에 따라 유럽 외 스페인의 영토는 중남미 전역과 아시아.아프리카의 옛 포르투갈 식민지 및 세력권,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필리핀에까지 확장됐다. 말 그대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
아메리카에서 채굴한 막대한 양의 금은과 포르투갈 배들이 아시아에서 싣고 온 후추, 비단 등 진귀한 물품들이 곳간에 넘쳐났다.
그런데 이 스페인도 오래지 않아 '해가 지는 나라'가 됐다. 왜 그랬을까.
해외 식민지에서 들어오던 '거대한 부'는 머지 않아 밑천이 떨어졌다. 남미의 광산들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바다는 '신흥 강자' 네덜란드에 잠식당했다.
과거에 확보했던 부는 '재생산'되지 못했다. 재정이 생산적인 곳에 투자되지 않고 '끊없는 전쟁과 사치 등에 탕진'됐으며, 스페인 국내는 세수가 보잘것 없었다.
스페인의 전성기였던 필리페 2세 시절, 이미 4번이나 '국가파산을 선언'할 정도였다.
이런 스페인이 신흥세력 영국과 네덜란드를 당해낼 리 없다.
특히 네덜란드는 당시 세계 제1의 해상강국으로, 스페인은 물론 나머지 유럽국가 모두를 합친 것보다도 선박이 많았다고 한다. 그 다음은 바로 영국이었다.
스페인은 결국 '무적함대'를 앞세우고도 영국과 네덜란드에 잇따라 전쟁에서 패했다. 세계의 '패권을 상실'한 것이다.
이런 '표면적 이유보다 더 결정적인 원인'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었다.
바로 '시대착오적 이념으로 시장을 억압'한 때문이다.
당시 유럽은 '종교개혁의 열풍'이 휩쓸고 있었다. 독일과 스위스에서 시작된 신교는 북유럽과 네덜란드, '필리페2세의 사돈 땅'인 스코틀랜드도 휩쓸고 있었고, 영국은 '종교개혁도 없이 얼렁뚱땅 신교국가'가 됐다. 프랑스도 신교의 세력이 만만치않았다.
그런가하면, 동방 오스만터키 제국과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세력은 호시탐탐 유럽을 넘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스페인은 '카톨릭의 수호자'임을 자처했다. 유럽 전역에서 벌어진 '종교전쟁'에 거의 모두 군대를 보내야 했다. 아무리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한 들 감당하기 어려웠다.
특히 국내에서도 '종교탄압을 극도로 강화'했다. 필리페2세는 왕궁을 수도원 및 무덤과 공유하도록 만들고, '카톨릭 유일신앙을 강제'했다.
그 표적이 된 게 유대인과 이슬람교도들이다.
이들은 왕실의 강요에 따라 살아남기 위해 모두 카톨릭으로 개종했다. 그러나 추방당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학살됐다. 종교도 문제지만, '이들의 존재 자체'가 스페인 왕에겐 기분이 나빴다.
유대인과 이슬람이 없어지자, '스페인 경제도 붕괴'됐다. 이들이 담당했던 금융업과 직물업 등이 모두 사라졌다.
'귀족과 관리들은 세금 한 푼 안내는데', 이들이 없어지면 어디에서 세금을 걷을 것인가.
이렇게 스페인은 '해가 지고 몰락'의 길을 걸었다.
'시대착오적인 이념에 매몰돼 시장과 자유 경제의 손 발을 묶은' 스페인의 사례를 21세기 대한민국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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