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세 총수 영향력 확대…빠른 환경 변화에 경영능력 중요성 부각
[미디어펜=조한진 기자] 재계에 ‘신(新)경영’ 바람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3·4세 총수 경영인들의 전면에 포진하면서 새판을 짜거나 준비하는 그룹이 늘어나고 있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총수들의 경영 능력이 어느 때 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5일 재계에 따르면 재계순위 상위권 그룹에서 총수 3·4세의 역할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삼성·현대자동차·SK·LG ‘톱4’는 사실상 3·4세 체제가 구축됐고, 한화와 현대중공업 등에서도 3세들이 주요 현안을 주도하는 등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지난 8일 조양호 회장이 갑작스럽게 별세한 재계 14위 한진도 3세 시대를 앞두고 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 최태원 SK회장, 구광모 LG 회장,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사진=각사

40~50대인 총수 3·4세들은 아버지 세대와 비교해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과거 그룹 회장들이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기업을 이끌었다면 이들은 주변의 의견 등을 다양하게 수렴해 의사 결정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3·4세 경영인들은 아직까지 경영 능력에 대한 검증이 더 필요하다는 시각이 있다. 현재 재계 상위권 그룹사들은 대부분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는 3·4세 경영인 아버지 세대의 결단력이 밑바탕이 됐다. 주변의 만류에도 가능성을 보고 과감하게 사업을 밀어붙인 결과다. 3·4세 경영인들은 기존 사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신사업의 시너지를 창출해야 한다는 공통 과제를 안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3·4세 경영인들은 과거 세대보다 권위의식이 적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성향이 강한 것 같다”며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추구하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총수만의 결단력도 필요하다. 이 같은 능력을 어떻게 보여줄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새 리더십 등장…조기 안정화가 핵심

최근 가장 주목받는 3세 경영인은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다. 조원태 사장은 고 조양호 회장의 뒤를 이어 한진의 방향타를 잡을 예정이다. 하지만 조원태 사장을 둘러싼 주변 환경은 녹록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선 경영권 유지가 당면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조원태 사장은 형제 중 유일하게 그룹 지주사인 한진칼과 대한항공의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다. 그룹 안팎에서도 조원태 사장의 전면 등장 가능성에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조원태 사장이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취약한 지배구조를 극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조양호 회장의 한진칼 지분(17.84%)을 상속해야 하지만 약 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속세가 부담으로 지적된다.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국민연금 등 외부의 견제도 넘어야할 과제다.

한화와 현대중공업도 3세들의 보폭이 점차 넒어지는 모습이다. 한화에서는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와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가 점차 힘을 받는 모습이다. 김동관 전무는 그룹의 미래로 꼽히는 방산부문과 태양광·석유화학 등 에너지부문을 주도하고 있다. 김동원 상무는 금융사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 역시 눈코 뜰 새 없이 움직이고 있다. 정기선 부사장은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 현대중공업 선박해양영업부문장, 현대중공업지주 경영지원실장으로 산업용 로봇, 선박 애프터서비스, 의료 빅데이터 등 그룹의 신사업을 이끌고 있다.

3·4세 체제 안착 ‘재계 빅4’ 

재계 ‘빅4’인 삼성·현대차·SK·LG는 ‘혁신과 변화’를 키워드로 3·4세 체제가 순항하는 모습이다.

5년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와병중인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을 중심으로 미래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그룹의 맏형격인 삼성전자는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인공지능(AI)과 5G, 전장, 바이오 등 ‘4대 미래성장 사업’도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9월 수석부회장 타이틀을 단 정의선 부회장 지난달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에 선임되며 본격적인 3세 시대로 접어들었다. 지난달 주총에서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의 공세를 막아낸 정 수석부회장은 미래차 경쟁력 확대에 매진하고 있다.

1998년 일찌감치 총수에 오름 최태원 SK회장은 그룹의 체질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인수 등을 통해 그룹의 역량을 확대한 최 회장은 최근 ‘사회적 가치’ 창출에 집중하고 있다. 최 회장은 다보스포럼과 보아오포럼 등에서도 사회적 가치의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젊은 총수’로 LG그룹의 방향타를 잡은 구광모 회장도 연착륙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취임 후 처음 진행된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기존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신임을 확인하면서 일부 외부수혈을 통해 시너지를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객 우선’을 강조하는 구 회장은 그룹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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