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상속세 부담에 업종·지분·고용 엄격한 사후관리조건까지
여야 대치에 법안 심의 지연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한국에서 100년 이상 존속하는 장수기업의 길은 요원할까.

정부가 최근 내놓은 가업상속공제제도 규제 완화의 밑그림 조차 지나치게 까다롭고 비현실적인 면모를 벗지 못해 비판이 일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주요 20개국 재무장관회의 및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 춘계회의 참석차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상속공제 사후관리기간을 기존 10년에서 7년으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업 상속을 걱정해야하는 경영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홍 부총리가 상속공제에 있어서 '매출기준과 공제한도에 대한 조정계획이 없다'고 밝혀 규제 완화 실효성이 사실상 떨어진다는 게 문제점으로 남는다.

16일 국회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는 기업측 입장을 반영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이 잇따라 발의되어 있다.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은 20여건에 달한다.

더불어민주당 과세체계개선TF 단장인 이원욱 의원은 연 매출액 기준을 1조원으로, 민주당 윤후덕 의원은 5000억원, 자유한국당 박명재 의원은 1조2000억원, 심언석 의원은 1조원으로 올리자는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그러나, 연일 이어지는 정쟁·대치에 심의가 지연되고 있다. 

소관 상임위인 기획재정위원회 관계자는 "공제대상 및 한도확대는 사후관리기간 단축 못지않게 요구가 큰 사안이지만 정부가 확대에 반대하는 워낙 강경한 입장"이라며 "지난 3월 임시국회에서도 제대로 진전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4월 임시국회도 속단하기 이르다. 여야간 접점을 먼저 찾는 것이 중요하다"며 "법안은 상정되어있지만 소위에서 아직 논의되지 않고 있고 시급한 현안들이 많아 상속세제 개정안이 통과될지 미지수"라고 관측했다.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18년 12월26일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차 경제활력대책회의 겸 제23차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기획재정부

세액공제 등으로 중소기업 가업 승계를 돕는 제도인 가업상속공제는 10년 이상 경영한 중소기업을 상속하는 경우 가업상속재산가액의 100%(연 매출액 3000억원 미만 기업에 한해 최대 500억원까지)를 공제해준다.

공제 받는 상속인은 '상속개시일로부터 10년간 업종·지분·고용·자산을 유지해야 한다'는 관리요건을 지켜야 한다. 또한 연 매출액 3000억원 미만 기업이 전체 기업의 90%에 달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법인세를 내지 않아 500억원까지 세액공제해주는 조항은 무의미하다.

이에 따라 1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이러한 조건을 맞출 수 있는 상속인이 거의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엄격해 기업 실정과 동떨어졌다는 목소리가 컸다. 

실제로 지난 2017년 가업상속공제를 적용받은 기업은 75곳에 그쳤다. 앞서 2014년에는 68곳, 2015년 67곳, 2016년 76개 기업에 불과했다.

중견기업연합회가 시행한 2017년 중견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3000억~5000억원'·'5000억~1조원'·'1조원 이상' 기업 응답군 모두 상속·증여 등 조세 부담(69.5%)을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상속세 명목 최고세율(50%)에 최대주주 주식할증 30%까지 적용하면 우리나라의 상속세 부담은 65%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2번째인 일본은 55%).

상속·증여세 부담 때문에 락앤락·유니더스·에이블씨엔씨는 사모투자펀드에 지분을 매각하면서 가업승계를 포기하기도 했다.

중소·중견기업의 가업상속에 다수 관여했던 한 법조계 인사는 "요새 기업인들 만나면 다들 공장을 외국으로 이전하겠다는 얘기밖에 하지 않는다"며 "나름 탄탄한 기업들이지만 구체적으로 이전 계획을 짜고 있다. 제조업종은 타격이 크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