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중세 베네치아, ‘경제에 최적화된’ 정부와 정치
상인들이 지배하는 공화국...사유재산권.사적 계약 철저히 보호
윤광원 취재본부장
2019-04-20 09:00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뉴욕타임스'는 '인류 역사상 가장 번영했던 나라'로 중세 베네치아를 꼽았었다. '로마인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르네상스의 꽃'은 단테,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가 활약했던 '피렌체가 아니라 베네치아'라고 했다.


베네치아는 '시장경제체제의 출발점'이라고 평가된다.


시작은 극히 이례적이었다.


서로마제국이 붕괴된 후 유럽대륙을 침략한 동방의 유목민 훈족의 침략을 피해 도망친 사람들이 바닷가 석호 지역에 세운 도시다. 훈족이 추격해올 수 없는 '바다 위 섬들로 이뤄진 나라'다.


그래서 베네치아는 지금도 바다 위에 떠 있는 '물 위의 도시'다. 다른 유럽 도시들과 판이하게 성도 성벽도 없다. 전성기 때 인구도 19만명 미만이었다.


이런 '일개 도시국가가 500년 동안 지중해 세계를 지배하는 패자'였다.


나라의 이름이 바뀌지 않고 1000년 이상 지속된 나라는 동로마제국 외에에는 베네치아밖에 없고, 그 동로마가 오스만터키에 망한 후에는 오스만과 많은 전쟁을 치르면서도 500년 동안 지중해 제해권을 놏치지 않았고, '기독교 세계의 수호자'였다. 


베네치아는 강대국이었지만 영토에 욕심을 내지 않았다. 오직 '해상무역의 거점들만 확보하는 데 만족'했다. 이렇게 '세계 최초의 가상경제'(virtual econoly)를 만들어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했을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근세 이전의 세계는 자급자족적인 농업경제체제였다. 그러나 베네치아는 해산물 이외엔 나는 게 없다. 하는 수 없이 처음부터 상업에 몰두했다.


상인과 기업가들은 베네치아의 주인이자, 역사의 창조자들이었다.


베네치아는 왕이나 황제가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라 공화국, '상인들이 기업처럼 경영하는 나라'였다. 정치인과 상인의 구분이 전혀 없었고, '지배층은 영주와 기사들이 아니라 상인과 사업가'였다.


로저 크롤리는 저서 '부의 도시-베네치아'에서 이 작은 도시의 성공요인으로 '경제에 맞춰진 정부'를 보유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베네치아에서는 3대 권력기구가 모두 상업적 규칙을 잘 이해하는 집단에 의해 운영됐다. 이들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 소비자 선택의 필요성, 안정적 통화와 상품의 적기 공급 및 합리적인 법과 세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고, '일관되고 장기적 안목의 정책'을 시행했다.


'정부도 상인들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시장의 활력을 억누르지 않으면서도 질서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개입은 했다.


상인들은 통화가치 유지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베네치아의 금화 '두카트'는 금 함량이 일정해서 당시 가장 신용 있는 '글로벌 기축통화'였다. 저질 화폐를 대량 발행, '노력 없이 부를 쌓으려는 유혹'에 취약한 '절대 권력자'가 없는 덕분이다.


한 마디로, '경제에 최적화된 정부와 정치'였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비결은 세익스피어의 불후의 명작 '베니스의 상인'에서 찾을 수 있다.


중세 유럽에서 유대인들은 '천민 집단'이었다. 그들은 낡은 공장이나 '게토'라는 집단 주거지에서 기독교도들의 감시 하에 살아야 했고, 기독교도들과 한 눈에 구별할 수 있는 붉은 모자를 써야 했으며, 부동산을 소유할 수 없어 오직 '고리대금업'으로 살아야만 했다.


기독교와 이슬람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을 금기시했다. 오직 유대인들만 그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잡초 같이' 고리대금으로 돈을 벌었고, 이것이 오늘날의 '금융과 은행의 원형'이다. 


이런 유대인들을 기독교도들은 천시하고 증오했다. 베네치아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베네치아는 다른 나라와 다른 점이 있었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주인공 안토니오는 베네치아의 가장 존경 받는 기독교인이자 상인이었다. 말하자면 이 나라의 지배층이었다. 그는 평소에는 유대인들을 혐오하고, 얼굴에 침을 뱉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돈을 빌렸다. 만약 제 날짜에 갚지 못하면 가슴 근처 부위의 살 한근을 내주기로 했다.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나라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천대 받는 자들에게 빚 상환 하루 밀렸다고 지배층이 죽어야 한다? 하지만 베네치아에선 그랬다.


그 정도로 이 나라에선 '사유재산권과 사적 계약을 철저히 보호'했다는 뜻이다.


이 두 가지는 '시장경제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천민이라고 그의 재산과 권리를 권력으로 짓밟을 수 있다면, 어떻게 시장경제가 싹틀 수 있겠는가?


그리고 샤일록이 안토니오를 벼랑 끝으로 몰 수 있도록 해 준 것은 '평등한 법치주의'의 힘이다. 덕분에 다른 나라 사람들도 베네치아에서 재판을 받고 싶어할 정도였다.


공산주의의 창시자 칼 마르크스는 '사악한 수전노' 샤일록에게서 '근대 자본가의 모습'을 찾았다.


샤일록은 부채 만기 다음 날 2배의 돈을 들고 찾아 온 안토니오에게 '계약서 대로' 한 근의 가슴살을 요구했다. 그는 '돈보다, 사람 목숨보다, 신용과 시장경제가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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