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바른사회시민회의 경제실장 "한국 내 우버 사업, 변칙적이고 기형적"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정부, 스타트업 육성 장려하되 간섭하면 안 돼"
   
▲ 2018년 4월 3일 서울 마포구 서울창업허브 내 서울핀테크 랩 개관식에서 인사말 하는 박원순 서울시장/사진=연합뉴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서울과 런던이 핀테크 분야에서 협력하면 굉장한 성과를 낼 것입니다."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은 영국을 방문해 이 같은 취지로 말하며 핀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12일 서울시에 따르면 박원순 시장은 피터 에스틀린 시티오브런던 로드메이어(런던금융특구 명예시장)와 만난 자리에서 "영국의 핀테크 등 관련 스타트업이 서울에 진출할 경우, 스타트업 보조금을 지급하고, 사무실도 제공하겠다"며 "런던의 선진금융기술과 서울의 인프라가 힘을 합하면 세계적인 협력 및 성공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 시장은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핀테크 산업의 애로사항을 해소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따라서 속도감 있게 규제에서 자유롭게 핀테크 활동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나아가 서울시가 성장을 지원하는 핀테크 스타트업계가 글로벌 금융도시인 런던의 마켓에 진출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도입하며 나타난 부작용을 상쇄하고자 도입한 제로페이/로고=소상공인간편결제추진사업단


이 같은 발언은 문재인 정부의 '제로페이' 정책과 궤를 같이 한다. 제로페이는 현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경제정책으로 채택하면서 생겨난 자영업자들의 부담 등 부작용을 상쇄하고자 도입한 관(官) 주도의 핀테크 분야 스타트업이다.

정부는 소상공인들이 부담하는 카드 수수료의 '제로화'를 주창했고, 2018년 7월 25일 일부 협약 대상 금융사·결제사들과 제로페이 결제서비스 MOU를 체결했다. 이에 따라 정부와 관련업계는 공동 구축한 QR 허브 서비스를 이용한 계좌 간 직접결제를 활성화 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공급자와 소비자의 계좌간 직접결제를 통해 수수료를 낮추는 것이 정부 목표다. 카드 수수료는 정책명 제로페이에 걸맞게 0%로 알려졌지만, 이는 연 매출 8억원 이하의 소상공인에게만 적용되며, 그 이상은 명칭과는 다르게 매출액 규모에 따라 0.3~0.5%의 결제 수수료를 지불하게 돼있다.

   
▲ 10일 서울 중구 세븐일레븐 무교점에서 에서 제로페이 결제 시범을 보이는 박원순 서울시장/사진=연합뉴스

현재 정부는 언론 매체에, 서울시는 서울시설공단이 관리하는 지하상가에 제로페이 홍보를 줄기차게 하고 있다. 올해 초 윤준병 서울시 행정1부시장은 "지하철과 시내버스, 택시에서도 제로페이 결제가 가능토록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발표했고, 정부는 이용률 제고를 위해 이달 2일부터 편의점에서도 제로페이를 이용할 수 있게 결제 절차도 개선했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추가경정예산까지 투입해가며 제로페이에 쓴 세금은 무려 236억원이다. 하지만 정부와 서울시가 대대적으로 홍보한 제로페이의 이용률은 사실상 이름 그대로 'ZERO' 상태다. 

POS기에 플라스틱 신용카드를 긁거나 스마트폰을 갖다대면 결제되는 기존 방식에 비해 복잡하고 결제 시간도 더 걸린다는 게 이용자들의 후문이다. 이 같은 불편함에 이용률이 극히 낮아져 '아무도 이 방식으로 결제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제로페이라고 이름을 지은 게 아니냐는 세간의 비아냥도 나온다.

1월 기준 국내 개인카드(신용·체크·선불) 결제 비율이 각각 0.0006%와 0.0003%로 기록됐고, 2월 중소벤처기업부 발표에 따르면 결제액이 5억3000만원에 불과하다. 처참한 이용 실적이다.

정부와 서울시 합동 관제(官製)서비스의 필연적 한계라는 분석도 있다.

한 경제 전문가는 "민간 기업이었다면 이런 저열한 수준의 서비스는 시장에서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출시할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소비자들의 반응이 냉랭했다면 처음부터 다 뜯어고치는 환골탈태의 노력을 보였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또한 "한편 공공기관은 예산을 허공에 날려 수익을 내지 못해도 그 누구도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지않는다"고 관치 사업의 태생적 한계를 지적했다.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신기술·서비스 심의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한 공유차량 모빌리티 서비스 3사.(왼쪽부터 벅시, 타고솔루션즈, 코나투스)/로고=벅시·타고솔루션즈·코나투스


반면 정부와 서울시는 정작 혁신을 들고 나온 모빌리티 스타트업들을 사장(死葬)시켰다.

1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제3차 신기술·서비스 심의위원회에서 '앱 기반 자발적 택시동승 중개 서비스'와 ‘대형택시와 6~10인승 렌터카를 이용한 공항·광역 합승서비스’를 제공하는 △벅시 △코나투스 △타고솔루션즈에 대해 실증특례 적용 여부를 검토한 뒤 끝내 결론을 내리지 못해 판단을 유보했다.

벅시와 타고솔루션즈의 경우 사업용 6~10인승 차량이 디젤차이기 때문에 미세먼지 저감 정책 기조에 어긋나고, 현행법상 11인승 이상 승합차에만 허용된 운전자 알선이 이하 인승으로 확대되면 택시업계의 반발 기류가 예상된다는 게 심의를 보류한 배경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코나투스는 택시산업발전법상 금지된 '합승' 모델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 또한 합승 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수 있어 이용자 편익과 부작용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고 밝혔다.

   
▲ 정부와 서울시 규제로 기존 국내 사업을 접고 사업 모델을 바꾼 우버와 콜버스/로고=우버·콜버스


서울시는 지난 2015년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라 세계적인 운송 네크워크 스타트업인 '우버'를 불법으로 규정해 시동을 끄도록 했다. 2017년 4월 법원에서 불법 운송이 인정돼 형사처벌 전력이 있는 우버코리아는 결국 한국에서 철수했고, 올해 초 택시 콜사업으로 사업 모델을 바꿔 재진출했다.

김영훈 바른사회시민회의 경제실장은 "한국에서의 우버 사업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변칙적이고 기형적"이라며 "카풀서비스는 정부가 1970~1980년대에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적극 권장하던 사업인데, 이제 와서 변죽을 울린다. 이익단체들 반대에 따라 카풀서비스 업체들이 공유서비스로 가기 위한 단계에 머물러 버리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서울시는 2018년엔 심야 시간에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과 13인승 밴에 합승하는 서비스인 '콜버스'에 대해서도 철퇴령을 내린 바 있다. 11인승 이상의 승합차와 강남 3개구 등 차종과 운행 지역까지 제한했던 서울시는 사업 허가 한달만에 서울 택시 조합의 단속 요청으로 국토교통부에 적법성 판단 여부를 의뢰했으나, 조율에 나선 국토부는 결국 기존 버스와 택시 업체에 한해 여객운송을 할 수 있도록 규제했다. 이로써 콜버스는 소리 소문없이 사실상 사업을 접고 우버와 비슷하게 버스 대절 가격 비교 예약 서비스로 사업 모델을 바꿨다. 

이 때문에 정부와 서울시가 제로페이와 같은 허울 좋은 사업에만 치중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은 "영국엔 런던이 있고, 금융특구인 '시티오브런던'이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찾은 시티오브런던은 규제가 없는 곳(regulation free zone)임과 동시에 혁신(innovation)을 추진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국내에선 정부와 지자체가 규제를 들고 간섭하며 민간 사업을 주도하려 들어 기업을 위협하고 있다"며 "민간 사업자를 밀어내면서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을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청년 사업가들이 무언가 만들어내도 시장에 접근할 수 없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에 정부와 지자체가 런던과 같이 큰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돕는 건 옳은 방침"이라면서도 "(정부와 지자체는) 판로를 개척해주되, 개입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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