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선택적 규제 샌드박스 '자뻑' 논란
김용민 국민대 교수 "정부 입맛에 맞는 규제 해제론 4차산업혁명 못해"
박규빈 기자
2019-05-20 13:08

   
지난달 24일 이련주 국무조정실 규제조정실장이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규제 샌드박스 시행 100일간의 성과와 향후 과제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정부의 '규제 샌드박스'가 도입 취지와 달리 혁신성장과 동떨어진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수소차 충전소 등 정부의 관치사업과 갈등 소지가 적은 분야만 샌드박스를 통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일 국무총리실 등에 따르면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한 건수는 시행 100일이 된 지난달 말까지 26건이고, 올해 안에 100여건의 적용사례를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규제 샌드박스는 문재인 정부 들어 신산업 육성을 위해 도입된 제도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테스트하는 동안 규제 대상에서 제외시켜주는 '실증특례'를 뜻한다.


지난달 25일 이낙연 국무총리는 "그동안 규제 샌드박스에 뜨거운 관심이 모아졌다. 참여해주신 기업인들께 감사한다. 수소충전소 설치를 위해 국회는 앞마당을 내줬다. 이런 변화가 모두 규제 샌드박스의 성과"라고 자축했다.


같은 날 남형기 국무조정실 규제혁신기획관은 "신기술·신 서비스의 원활한 시장출시 지원을 위해 규제 샌드박스와 병행해 신산업 핵심 테마별로 집중적·지속적으로 현장 애로 규제혁신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지난 1월 17일, 규제 샌드박스 도입 이후 통과한 사례는 서울 시내 4개소에 수소전기차 충전소 설치·공항 내 AI 안면 인식 시스템·이동형 VR트럭 등 정부가 정책적으로 밀거나 공공기관에서 필요로 하는 분야, 혹은 기존 사업자와의 갈등 무풍지대에 한정돼있다.


정작 혁신을 들고 나온 스타트업들은 규모가 커졌다는 이유로 심한 규제를 받고 있거나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하지 못해 사업이 사실상 사장됐다.


국민 대부분이 쓰는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카카오톡의 개발사 다음카카오는 15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인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34개사 중 하나로 꼽혔다. 지난 2006년 '아이위랩'으로 시작한 IT벤처업계 스타트업이 대기업으로 지정된 첫 사례다. 다시 말해 삼성이나 현대 등 기존 대기업 집단과 동일한 규제를 받게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IT업계는 기술 혁신을 바탕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대기업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판국에서 공정위가 부정적 인식이 담긴 '재벌' 딱지를 붙인 것과 다름 없어 업계에선 이 같은 조치가 신수종 사업 진출에 걸림돌이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실제 택시업계는 카카오모빌리티에 대해 '재벌 카카오의 문어발식 확장'이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한편 모빌리티 스타트업계는 나란히 고배를 마셨다. 1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제3차 신기술·서비스 심의위원회에서 '앱 기반 자발적 택시동승 중개 서비스'와 ‘대형택시와 6~10인승 렌터카를 이용한 공항·광역 합승서비스’를 제공하는 △벅시 △코나투스 △타고솔루션즈에 대해 실증특례 적용 여부를 검토한 뒤 끝내 결론을 내리지 못해 판단을 유보했다.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단계에서 해당 사업체들에게 사업 허가를 내주면 택시업계의 반발이 우려된다는 게 과기정통부의 공식 입장이다.


정부 뿐만이 아니다. 지난 2015년, 서울시는 세계적인 운송 네크워크 스타트업인 '우버'에 대해선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라 불법 사업으로 낙인을 찍었다. 심지어 지난해엔 '콜버스'에 대해선 11인승 이상의 승합차와 강남 3개구 등 차종과 운행 지역 지정과 같은 제한적인 사업 허가를 내주고도 택시업계 반발에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에 적법성 판단 여부를 의뢰했다. 이에 국토부는 기존 버스와 택시 업체만 여객운송사업을 할 수 있도록 기득권을 보호하고 나선 바 있다.


이 같은 사례들 때문에 정부와 서울시가 입맛에 맞는 사업만 통과시키는 규제 샌드박스의 어두운 이면이 존재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용민 국민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규제 샌드박스 통과 사례는 이해 관계자들의 눈치만 보고, 정책상 필요하고 갈등 소지가 적은 부분만 선택적으로 규제를 풀어주겠다는 것인데, 어떻게 4차산업혁명 대열에 끼겠단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 교수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한) 사례를 보아하니 혁신적인 무언가를 들고 나오는 기업에 대해선 객관적이고 정당한 사유로 규제를 풀 생각은 없고, 공무원들의 이해관계에 맞는 생색 내기와 자화자찬에 지나지 않는다"며 "경제 활성화, 노동시장 활력 불어넣기, 4차산업혁명 촉진을 위해선 노동시장 개혁과 과감한 규제 혁신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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