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 '옥자' 이후 2년 만 신작 '기생충'으로 귀환
"그래픽 디자이너 아버지 영향…5살 때부터 만화 그렸죠"
"칸은 이미 과거가 됐어요…새 시나리오 집필하는 중"
[미디어펜=이동건 기자]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 '옥자', '기생충'까지. 7편의 장편이 나오는 20년 동안 그의 필모그래피와 함께 역사가 쓰였다. 봉준호 감독의 이름은 한국영화의 상징이자 세계적인 브랜드가 됐고, 재기로 충만한 영화광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사회의 거울이자 모든 예술가들의 영감이 됐다. 그렇게 봉준호 감독은 하나의 장르가 됐다. 2017년 6월 개봉한 '옥자' 이후 2년 만에 '기생충'으로 관객들을 만난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기생충'은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이선균)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제72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에 이어 국내 관객들 사이 영화 해석 열풍을 일으킬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 영화 '기생충'을 연출한 봉준호 감독이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 2017년과 비교해 이번에는 기분 좋게 칸에 다녀왔다. (제70회 칸 영화제는 '옥자'를 경쟁 부문에 초청했지만 프랑스 영화계는 극장 상영을 하지 않은 '옥자'를 영화로 인정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옥자' 때는 이상하게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많았죠. 상영 사고도 있었고, 영화제와 넷플릭스 측이 '되네 안 되네' 하면서 논쟁을 하고 있었잖아요. 정리한 다음 초청해야지, 초청해놓고 싸우면 우리는 뭐야. 사람 불러놓고 싸우는 건 이상한 경우인데. (웃음) 칸 영화제 초반 이슈몰이에 공헌을 한 것으로 만족을 하지만 영화 자체에 대해 차근차근 이야기할 기회가 많이 없었죠.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게 없어서 좋았어요."

▲ '기생충'으로 8분간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냈다.

"기립박수는 모든 섹션, 모든 영화에서 다 해요. 우리가 몇 분 몇 초에 집착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다 크게 치고 오래 해요. 그렇지만 감동적이긴 해요. 영화가 좋건 나쁘건 고생해서 찍은 거니까. 그동안의 노고를 알아주고 완성을 축하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좋은 매너죠."

▲ '기생충' 상영 후 기립박수 화면에 '배고파'라는 입모양이 포착돼 웃음을 안기기도 했다.

"박수를 칠 동안 생중계 카메라가 계속 앞에서 다녀요. 처음에는 박수를 치고 제스처를 하는데, 그 다음 할 동작이 없어요. 1분이 지나도. 서구인은 제스처와 표현이 강하잖아요. 이리 껴안았다가 저리 껴안았다가, 들었다가 놨다가. 근데 우리 동양인들은 별 게 없어요. 2, 3분 지나니까 송강호 선배가 '이거 왜 안 끝나요?', '언제까지 해야 돼?' 하더라고요. 그 때가 12시 30분쯤 됐어요. 자정을 넘어서 너무 배가 고픈 거예요. 그런데 이걸 다 하고 레드카펫을 내려가야 되잖아. 파티 장소에 가서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계속 박수를 치길래 해산시켰어요. '마더' 때는 제가 손으로 'X' 표시를 했는데 그게 너무 부정적으로 보이니까. 이번에는 '밤이 늦었으니 다들 집에 가자'고 말씀드렸어요."

▲ '기생충'으로 프랑스독립상영관협회 선정 아트하우스시네마상도 수상했다.

"황금종려상 때문에 가려져서 거의 노출이 안 됐지만 상을 받았어요. 본상은 아니지만. 그런데 프랑스독립상영관협회에서 줬으니까 상징적이죠. '일부러 그러는 건가?', '나를 격려하는 건가?', '다시는 넷플릭스 스트리밍하지 말라고 단도리하는 건가?' 별의 별 생각을 다 했는데, 그런가 보다 했어요. 돌아온 걸 환영한다는 뜻인가. 하하, 모르겠어요."

▲ 칸에서 본 '기생충'과 언론시사회에서 본 '기생충', 어떻게 달랐나.

"칸에서는 영화에 불어 자막이 나오잖아요. 제가 자막 작업에 엄청 열심히 참여했어요. '플란다스의 개' 때부터 호흡을 맞춰온 번역가분이 있는데 감독으로서 짚어줘야 할 부분이 많거든요. 모든 샷에 직접 관여해서, 공들여 만든 자막이라서 영화를 보면 자꾸 자막으로 시선이 가요. '어? 저 단어였나', '바꿨던 것 같은데' 하고. 근데 한국에서는 배우의 얼굴을 보는 거야. 자막이 없으니까. 그제야 좀 제대로 보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귀에 팍팍 꽂히는 대사를 들으면서 보니까 후련함이 있더라고요. 관객들의 순수한 반응은 이번 주 중 잠행을 해서 느껴보고 싶어요. 오늘 저녁에도 한 번 쓱 가보려고요. 예매를 해놓았죠."

▲ '기생충' 공개 이후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평가가 있다면.

"북미 영화계는 장르의 관점이 강한데, 인디와이어에서 '더 이상 봉준호의 작품을 기존에 있던 분류 체계에 껴 맞추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 봉준호는 마침내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는 문구를 썼어요. 영화제 기간 통틀어 가장 기뻤던 말이에요. 다음엔 이걸로 대답해야지. 제게 가장 편리한 인용구가 생겼달까요."

▲ '기생충'은 표준근로계약 준수로 귀감이 되기도 했다.

"표준근로계약 그거 좋은 건데… 우리 영화가 표준근로계약의 아이콘처럼 돼서 사실 너무 민망해요. 저희가 공헌한 건 하나도 없어요. 몇 년간 그걸 논의하신 분들이 있는데, 제가 아무리 반복적으로 이 이야기를 해도 기사에 안 나오더라고요. 영화산업노조분들이 삐질 것 같아. 그 고생을 해서 합의를 이끌어내고, 투자배급사들도 거기에 응해주고. 힘겹게 조율해서 만들어놓은 건데. 마치 우리가 선구자적 역할을 하거나 깃발을 든 것처럼…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기생충'은 그 흐름에 동참한 것뿐이에요. '쟤들이 왜 생색을 내지?' 하고 오해를 살 여지가 있어서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 영화 '기생충'을 연출한 봉준호 감독이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 이번 수상으로 외할아버지인 소설가 박태원(1909~1986)을 비롯해 예술가 집안에 대한 이야기도 조명되고 있다.

"외할아버지는 동화 속의 인물 같은 분이에요. 북한에서 돌아가셨으니까. 저희 이산가족이에요. 6.25 전쟁통에 외할아버지와 큰이모가 북한으로, 저희 어머니와 4남매는 남쪽으로 찢어졌어요.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문학을 배우는데 외할아버지 이름이 나오니까 신기하긴 하더라고요. 제가 외탁했다고 하는데, 사진을 보면 저와 비슷한 구석이 있어요. 만나본 적은 전혀 없고 아무런 기억도 없지만요."

▲ 봉준호 감독의 예술 세계에 아버지가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부친은 2017년 작고한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 봉상균 씨다.)

"전 아버지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항상 집에서 그림을 그리셨고, 아버지 방에 들어가면 신기한 책들이 워낙 많았어요. 70년대에 해외 출장을 가는 게 흔한 일은 아니었는데 많이 오가신 편이라 외국에서 가져온 그래픽 서적, 사진집이 많았죠. 어릴 때 그걸 되게 많이 봤어요. 저도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5살 때부터 만화를 계속 그렸고 만화가를 꿈꿨던 적도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샷을 그리고 배열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콘티, 스토리보드 그리는 거랑 비슷한데. 이번에 '기생충'도 다 제가 그렸어요. 그것도 어떤 출판사가 출간하고 싶다고 해서 조만간 책으로 나올 것 같아요."

▲ 봉준호 감독이 사랑하는 김기영 감독의 '하녀' 타이틀도 부친이 작업했다고.

"오프닝에서 꼬마 안성기와 누나가 실뜨기를 해요. 그 위로 '하녀'라고 타이틀이 나오는데, 그걸 아버지가 작업하셨어요. 애니메이션 작업 비슷한 걸 하신 거지. 그 때 영화인들을 많이 접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 보고 처음에 영화하지 말라고. '애들이 좀 거칠더라' 하고. (웃음) 60년대 한국영화 전성기 때 영화인 분들이 미술인 분들보다 기가 세셨겠지. 넓게 보면 아버지도 영화인 생활을 2~3년 하셨어요."

▲ '기생충'은 아버지께도 꼭 보여드리고 싶은 작품일 것 같다.

"아버지가 '설국열차'까지 보셨네요. 2016년 '옥자'를 촬영한 후 귀국해서… 그 직후 병원에 들어가셨는데. 그 해 가을부터 의식이 없으셨다가 5~6개월 후 돌아가셨으니까. '기생충'과 '옥자'를 못 보셨네요. 보여드리고 싶은데. 이번에 프랑스 배급사의 친구가 '기생충'을 보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연결해서 이야기하더라고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헌사 같은 게 있지 않냐고. 시나리오 쓸 땐 전혀 의식을 하지 못했는데, 영화 속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다른 세계에 있는 느낌이잖아요. 전등으로 '깜빡' 하고, 저쪽 세계에 있는 듯한…"

▲ 한국 영화계에 경사를 안겼는데, 현재 행복지수는 어떻게 되나.

"오늘은 되게 심난합니다. 시차의 역습으로 잠을 못 자서… 제가 기본적으로 늘 불안해요. 신경정신과 의사님이 약을 먹어야 한다고 하는데, 약을 먹으면 멍해져요. 불안한 상태여야 시나리오가 써지고. 지금도 시나리오 쓰고 있어요. 칸은 이미 과거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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