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이정은(23·대방건설)이 US 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뒤 눈물을 펑펑 흘렸다.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아버지와 가족들을 위해 골프채를 잡았던 이정은, LPGA(미국여자프로골프) 첫 우승을 메이저대회에서 일궈낸 감격과 가족 생각은 뜨거운 눈물로 흘러내렸다.  

이정은은 3일(한국시간) 끝난 2019년 LPGA투어 두번째 메이저대회인 US 여자오픈(총상금 550만 달러)에서 최종합계 6언더파 278타를 기록하며 우승했다. 우승상금은 100만달러(약 11억9000만원)나 된다.

지난해 퀄러파잉 스쿨을 1위로 통과해 올해 본격적으로 LPGA 무대에 뛰어든 신인 이정은이 첫 우승을 메이저대회를 통해 신고한 것도 화제가 될 만했지만, 그의 남다른 개인 스토리는 더욱 골프팬들을 가슴 뭉클하게 한다.

우선, 이정은의 이름 뒤에 붙는 '6'은 그에게 확실히 행운의 숫자가 됐다. 이정은은 KLPGA 투어에 입회할 당시 6번째 '이정은'이어서 이름 뒤에 숫자 '6'을 붙이게 됐다. 이정은6으로 KLPGA 투어에서 활동하며 빼어난 기량을 뽐낸 그는 LPGA로 진출하면서도 'JEONGEUN LEE6'로 공식 이름에 '6'을 붙였다. LPGA 투어에 이정은5가 있어 구분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이정은6이 첫 우승을 '6'언더파로 이뤄냈다. 숫자 '6'에 대해 이정은은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이날 우승 후 공식 인터뷰에서 "KLPGA 투어에서 첫 경기 했을 때 6언더파를 쳤다. 오늘도 6언더파로 우승했다. 6은 내게 정말 행운의 숫자인 것 같다"고 얘기했다. 이정은이 '핫식스'로 불린 것이 운명처럼 느껴진다.

이정은은 지난해 퀄리파잉 스쿨을 1등으로 통과하고도 미국 진출을 망설였다.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아버지 때문이었다. 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아버지와 가족들을 생각하면 선뜻 외국 생활을 결정하기 힘들어 오랜 고민 끝에 새로운 인생 목표를 정하고 LPGA행을 결심했다.

   
▲ 사진=LPGA 공식 트위터


이날 우승 인터뷰에서 이정은은 가족 얘기를 꺼냈다. 그는 "4살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을 부양하고 싶어 골프를 시작했다"며 생계형 프로 골퍼가 됐음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이어 이정은은 "3년 동안 KLPGA 투어에서 뛰면서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 좀 더 즐겁게 경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LPGA 투어에 오게 됐다"고 미국으로 오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했다.

이정은의 아버지(이정호 씨)는 트럭 운전사로 일했는데, 이정은이 4살 때 교통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외동딸인 이정은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골프에 집중했고,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훈련하며 땀을 흘렸다. 

2016년 KLPGA 투어에 데뷔한 그는 곧바로 두각을 나타내 신인상을 받았고 2017년에는 4승을 수확하며 대상, 상금왕, 최저타수상, 다승왕을 휩쓸었다. 지난해에는 KLPGA 메이저대회 2승을 거두며 상금왕과 최저타수상 2연패를 하면서 국내 무대가 좁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해 11월 LPGA투어 퀄리파잉 시리즈를 1등으로 통과한 이정은은 데뷔 후 9개 대회 출전 만에 '메이저 퀸'이 됐다.

첫 우승이 US 여자오픈인 것도 상징성이 커 보인다. 이정은은 한국인 선수로는 통산 10번째 US 여자오픈 우승을 해냈다. 이 대회 한국인 첫 우승자가 바로 1998년 박세리였다. 박세리가 '맨발의 투혼'을 보이며 IMF로 고통받던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었다면, 이정은은 개인적인 어려움을 이겨낸 '인간승리'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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