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세기의 담판’이라 불리는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이 12일이면 1주년을 맞는다. 북미 양국은 싱가포르 북미회담에서 새로운 관계 수립, 안정적인 평화,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 하지만 이후 실무협상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다가 올해 2월 말 하노이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했지만 ‘노딜’로 끝내는 결과를 낳았다.

하노이회담의 결렬은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방식인 ‘스몰딜’과 미국의 일괄타결 식 비핵화 방식인 ‘빅딜’이 절충점을 찾지 못한 결과로 표현되고 있다. 하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싱가포르회담에서 완성하지 못한 북한 비핵화의 ‘최종 상태’를 명확히 규정하는 비핵화 개념 합의에 실패한 것을 의미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북한의 핵시설은 물론 미사일 프로그램, 생화학무기를 포함한 전체 대량살상무기(WMD)의 폐기를 요구하는 비핵화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 앞으로 북한이 실행해야 할 비핵화 정의를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괌 기지에 있는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철수’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해왔고,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이 주장이 무시된 합의에 따를 수 없었다. 오히려 김 위원장은 안보리 대북제재의 일부를 해제해줄 것을 요구해 결국 협상이 결렬됐다.

북미가 비핵화의 최종 상태에 합의하는 것은 그 자체로 로드맵의 큰 틀을 완성하는 것이고, 이것이 비핵화 협상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만큼 싱가포르회담 이후 북미 간 비핵화 실부협상은 단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대해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반드시 짚어야할 북한 비핵화 의지와 비핵화 개념조차 확인하지 못한 결과 6.12 공동성명은 원론적 수준에 그쳤고 자체적으로 의미있는 결과를 내오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4월12일 처음으로 북미협상을 한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고 밝히며, 대화 시한을 올해 말로 못 박았다. 미국에 셈법을 바꿀 것을 촉구하면서 지난 5월 4일과 9일에는 잇따라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며 압박도 했다.

미국은 석탄을 불법 운송한 혐의로 북한 화물선 ‘와이즈 어니스트 호’를 압류하는 등 기존 대북제재를 옥죄었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북한이 두차례 발사한 단거리 미사일에 대해 “유엔 안보리 제재를 위반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런 가운데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 4일 6.12 북미공동성명 1주년과 관련한 담화를 발표하고 “미국이 지금의 셈법을 바꾸고 하루빨리 우리의 요구에 화답해 나오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미국의 태도에 따라 6.12 공동성명이 살아남을지 빈 종잇장으로 남을지 결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 국무부는 11일 6월 말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계획을 밝히며, 다시 한번 FFVD를 강조했다. 오테이거스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FFVD 달성을 위해 긴밀히 조율할 것"이라고 했으며, 또 6.12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우리는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비핵화를 약속하게 했다”라고 평가했다.

   
▲ 2차 북미정상회담 이튿날인 2월2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회담 도중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VTV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1년동안 제자리 걸음인 이유는 양 정상이 만나지 않으면 대화조차 안되는 ‘톱다운 협상’ 방식의 한계에 더해 처음부터 비핵화의 첫 단추인 ‘비핵화 정의’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미가 비핵화 정의에 대해 합의를 보지 못한 채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이행 순서를 놓고 대립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형국이다. 북한은 새로운 관계 수립과 평화체제 구축 이후 비핵화로 이어지는 합의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비핵화와 신뢰 구축, 평화체제가 동시에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미 간 비핵화 정의를 놓고 갈등을 겪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주최로 지난달 27일 서울에서 열린 ‘2019 글로벌인텔리전스 서밋’에 참가한 세계의 정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명확한 개념부터 정의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과 함께 “북미 간 간극이 너무 크므로 현 단계에서 비핵화 정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견해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북한이 진행해온 6차례 핵실험에 따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가 이뤄져왔고,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이행이 강화되면서 북한이 핵협상에 나섰다. 그런 만큼 북한은 먼저 안보리에서 요구하는 비핵화 정의에 합의하는 것으로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 당위성을 얻고 있다.

브루스 클링너 미국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지난 4월 23일 서울에서 열린 ‘아산 플래넘’에서 “미국이 북한에 요구하는 것은 유엔이 정의하는 비핵화에 북한이 합의하는 것”이라며 “미국은 유엔이 정의하는 비핵화에 북한이 합의하고 나면 상호 주고받을 것에 대해 본격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말한 바 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는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방식으로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모든 관련 활동을 즉각 중단’하고 ‘현존하는 모든 여타 대량파괴무기(WMD)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방식으로 포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