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훌쩍 넘은 상임위원회 회의장. 상임위원장의 "더 이상 발언하실 분이 없으면 이것으로 질의를 종료하겠습니다"라는 발언이 끝나기도 무섭게 여기저기서 손을 든다. 한 번 더 질의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상임위원장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러면 딱 3분씩만 드리겠다"고 한다. 그러면 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시간이 너무 짧다", "아까는 저쪽이 몇 분을 더 썼는데 이쪽에도 더 시간을 달라" 등등 불만의 목소리들이다. 그러다 갑자기 분위기라도 험악해지면 잠시 정회를 했다가 또 다시 모인다. 그러면 그때부터 또 발언이 한 바퀴 시작된다.

국회의원의 '마이크 욕심'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필자는 속으로 이런 생각마저 한 적이 있다. '이것은 스스로에 대한 가학에 가깝다.' 정말 마이크를 놓지 않으려는 그 사투,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더 발언을 하려는 치열한 경쟁을 하는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난 도무지 어떤 국회의원이 게으르고 일 하기 싫어한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물론 예외도 있다. 국정감사 기간 중에도 자리를 비우기 일쑤고, 한두 차례 발언만 하고 홀연히 사라지는 그런 간 큰 국회의원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필자가 국회에서 직접 본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여야에 관계없이 '일중독'에 가깝다. 실은 그것이 맞는 분석일 것이다.

대한민국 같은 '업무 공화국'에서 일중독이 아니고서야 금배지의 자리에 오른다는 것이 과연 쉽겠는가. 특히 관료, 법조계, 기업 출신의 의원들은 오히려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불편하고 지루하게 느껴할 법한 그런 부류가 상당수다.

그래서 필자는 '일하지 않는 국회'라는 말까지는 나름 이해가 되더라도, '일 하기 싫어하는 국회'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사실 국회가 열리고 상임위와 본회의가 열리며 각종 특위 활동이 시작되면 그것이야말로 국회의원이 본인의 실력과 입지를 보여주고, 성과를 내서 지역구 유권자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열리는 것이다.

   
▲ 국회정상화가 늦어지는 이유를 단지 국회의원들이 '업무 기피'에서 찾는다면, 본질을 비켜나갈 수 있다. /사진=미디어펜

한마디로 말해서 국회야말로 나의 정치를 선전, 홍보할 수 있는 안성맞춤의 장(場)이다. 한바탕 신명나게 뛰어놀고 싶어 안달이 난 국회의원들, 그것도 주로 방어를 해야 하는 여당도 아닌 공격수만 해도 충분한 야당 의원들이 상임위 개의를 마다한다? 그것은 국회의원의 ‘본성’을 잘 모르고 내놓는 섣부른 진단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뿐만 아니라 국회가 열려야 본인들의 숙제가 해결되는 그런 경우도 종종 있다. 흔히들 국회가 멈추면 민생 현안들이 묶인다고들 비판한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민생 현안이라는 것들이 결국은 각 지역의 불편 사항, 입법 미비로 인한 혼란 등을 해결하는 것들이다. 그런 민원들을 접수하고 법안에 반영시키는 주체가 바로 누구인가? 국회의원이다.

즉, 국회의원 입장에서도 본인이 낸 법안, 또는 본인이 건의한 민원이 해결되기 위해서라도 상임위가 열리고 법안소위가 개최되기를 기다릴 것이라는 이야기다. 적지 않은 국회의원들에게 '굳게 문 닫은 국회'는 갑갑하게 느껴질 만한 충분한 유인이 있는 셈이다.

논의의 차원을 조금 바꿔서 과연 국회의원이 하는 '일'이라는 것도 무엇인지 우리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상임위원회에 출석하고 질의를 하고,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본회의 표결을 하는 것은 당연히 매우 중요한 국회의원의 책무다.

하지만 그 밖에도 국회의원이 하는 일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국회가 안 열리는 주말이면 의원들은 대부분 지역구에서 살다시피 한다. 차라리 국회가 열리는 주중이 더 몸과 마음이 편하다는 속내를 내비치는 의원들도 꽤 많다.

뿐만 아니다. 각종 토론회 개최, 당내 회의 참석, 현장 시찰, 법안 준비 등 상임위, 본회의를 비추는 카메라에 나오지 않는 국회의원의 업무는 상당히 많다. 직접 국회의원의 일상을 보면 혹자는 "도대체 왜 저렇게 살고 싶지?"라는 말을 할 정도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예외는 분명히 있다. 평균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국회의원을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하고, 또 하고 싶어 해도 그 성과가 미진하고 비효율적이라면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 국회의 가장 큰 문제는 '쓸데없는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여야 간 국회정상화가 늦어지는 이유를 단지 국회의원들이 '업무 기피'에서 찾는다면, 본질을 완전히 비켜나갈 수 있음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국회의원 대부분은 조금이라도 빨리 국회에 들어가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다만 그런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은 어떠한 이유가 있다는 점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과연 무엇이, 제1야당의 국회 복귀를 망설이게 만드는지, 그 근본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한 번 더 깊숙이 고민해보자는 제안이다. 국회 정상화. 그것은 국회를 정상으로 회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정상이 된 국회라면, 제일 먼저 뛰어 들어올 사람들이 바로 국회의원들이다. /윤주진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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