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진의 여의견문] '팩트체크'라는 이름의 '성향체크'
최근 본연의 목적 넘어 오남용 빈번…상대를 공격하는 수단 악용
편집국 기자
2019-07-08 11:00

   
윤주진 객원논설위원
명백한 팩트를 제시해 상대방의 거짓 주장을 제압하는 소위 '팩트 폭력'은 어느 때나 명쾌하고 시원하다. 사실을 부정하고 교묘한 거짓으로 진실을 왜곡하는 정치만큼이나 나쁜 정치가 또 있을까. 팩트폭력은 그런 의미에서 '폭력'이 아니다. 거짓말이라는 사회적 폭력에 대한 지성적 대응이다.


같은 관점에서 수많은 언론사들이 '유행'처럼 기사 제목 앞부분에 [팩트체크]를 달고 보도를 이어가는 것은 나름 환영할 만한 일이다. 언론이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것은 물론, 사실을 부정하는 정치인과 사회 지도층에 대한 끊임없는 감시를 해야 할 책무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적잖은 언론들이 본연의 목적과 필요성의 범위를 넘어, 팩트체크를 오남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크게 두 가지 경우로 압축할 수 있다. 팩트를 바로잡아주는 체크가 아닌 오히려 팩트를 왜곡하는 체크가 되는 경우, 또는 팩트체크의 대상이 아닌 주장이나 발언을 팩트체크 분석 대상으로 세워 올려서 공격하는 경우다. 전자의 경우는 다른 언론이나 오피니언 리더에 의해 곧바로 교정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그 빈도수가 현저히 적다. 문제는 후자의 경우다.


최근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연설을 통해 문재인 정권이 '신독재'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며 경계해야 된다는 주장을 내놨다. 그러면서 정권 출범의 배경과 직후 이뤄진 여러 정치 보복, 나아가 사법부와 언론을 향한 장악 시도 등을 그 근거로 들었다. 연동형 비례제 도입을 위한 패스트 트랙 처리를 그 마지막 단계를 위한 시도라는 주장도 곁들였다.


그러자 수많은 언론들이 일제히 '팩트체크'라는 말머리를 붙인 제목으로 해당 주장에 대한 분석에 들어갔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시작된 '검증'이다. 이 글에서 정확한 계량 결과를 제시하긴 어려우나, 대부분 나 대표가 무리한 주장을 했다는 식의 보도다. 그 중에는 최초 신독재라는 개념을 쓴 이코노미스트紙의 칼럼에 한국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논거도 포함됐다.


   
최근 적잖은 언론들이 팩트체크를 오남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팩트를 바로잡아주는 체크가 아닌 오히려 팩트를 왜곡하는 체크가 되는 경우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특정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jtbc 팩트체크 화면 캡쳐.


과연 이것이 올바른 팩트체크일까? 일단 이 정권의 신독재 경향을 주장한 연설이 과연 '팩트체크', 그러니까 사실인지 아닌지 여부를 따지는 것이 애당초 적절한 것인지 의문이다.


사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기간 동안에도 야당의 일부 의원이나 수많은 좌파 시민단체들이 '독재'라며 저항했다. 그렇다면 그들의 주장도 팩트체크의 대상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예컨대 박근혜 정부에서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는 것에 대해 당시 야권은 '역사 독재'라며 반발했다. 그


런데 실제로 국정화 과정 자체는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이뤄진 행정적 조치였다. 그렇다면 야권의 당시 독재 주장은 가짜뉴스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하는 좌파 정치인, 언론은 아마 없을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신독재로 흐른다는 '주장'은 그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해석이자 이해의 결과일 뿐이다. 가치판단은 개인의 주관적 양심과 사상의 영역이다. 그것을 제3자가 사실 여부 판단의 대상으로 가져간다는 것 자체가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로 비춰질 수 있다.


독재란 상대적 개념이다. 단지 법을 무시하고, 폭력과 강압을 동원해야만 독재라는 비판을 받는 것이 아니다. 실제 이 정권의 일방주의적 통치에 대한 불만은 적잖은 국민들이 느끼고 있다. 그러한 국민들도 가짜뉴스 세력이란 말인가?


게다가 해당 칼럼이 한국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독재로 볼 수 없다는 반박은 다소 유치하게까지 느껴진다. 칼럼의 내용과 논리를 바탕으로 한국의 상황을 적용해 주장하는 것마저 '가짜뉴스'가 된다면 수많은 석학들과 사상가들의 책과 글을 기반으로 특정 국가, 지도자, 정치세력의 성향과 특성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것들이 모두 ‘가짜뉴스’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어불성설'인 셈이다.


이미 지난 대선 당시에도 팩트체크의 오남용은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야권 보수 후보의 주관적 주장과 정치적 해석을 팩트체크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을 해서 사실상 '거짓말 하는 후보'로 만드는 언론의 행태를 우리는 목격했다. 물론 야당이라고 해서 팩트체크에 있어 관대해서도 안 되고, 또 정권을 잡은 집권세력이기 때문에 더 가혹한 팩트 체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팩트체크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우리는 생각해봐야 한다. 그것은 국민을 속이기 위해 교묘하면서도 즉흥적인 거짓말을 일삼는 행태를 막기 위한 것이다. 예컨대 가짜 통계를 제시하거나, 역사적 사실을 비트는 경우가 대표적 사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팩트체크가 '나와 다른 성향의 주장'을 공격하기 위한 반박 주장의 화려한 포장지로 전락해버렸다. 팩트체크가 사실상의 '성향 체크'로 변질되어가는 세태를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윤주진 객원논설위원


[윤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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