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김정은 만남과 문재인 대통령의 상상력
빈손 만남에 위험한 해석·북한 인권 현실 외면한 '희망고문' 그만
편집국 기자
2019-07-16 10:15

   
성제준 객원 논설위원
7월초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판문점에서 만났다. 두 정상의 만남에 대해 수많은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만남을 어떻게 바라봐야할까? 당연히 두 정상이 만났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만났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것 저것 긍정적 의미를 갖다 붙일 이유도 없다. 왜냐하면 원래 외교란 그 자체로 상징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총,칼만 없을 뿐이지 모든 하나하나의 행동을 통해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고 대립한다. 의자 높낮이를 다르게 한다든지, 펜의 종류를 다르게 한다든지 일상생활에서는 아무 의미없이 지나갈 모든 것들이 외교에서는 의미있다. 문제는 외교가 이렇게 상징성 그 자체이다 보니, 자의적으로 멋대로 해석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이번 판문점 만남에 대해서 그렇게 들뜰 필요가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실질적인 성과가 없이 상징적 의미에 만족하며 취해있다면 광신도와 다를 게 없다. 광신도가 나라를 휘젓고 다니는 것은 원시시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지 현대 문명국가에서는 볼 수 없을 일이다. 하지만 비극적이게도 우리나라 언론은 어떤 샤머니즘에 취했는지 이번 만남에 대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언론사가 두 정상의 만남에 대해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등, 지나치게 의미를 크게 부여하고 있다. 한번 생각해보자. 도대체 이번 판문점 만남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저 미북 정상이 만나서 악수하고 포옹하고 분사분계선을 이리저리 왔다가다 한게 전부이지 않는가? 언제부터 악수나 포옹에서 평화가 만들어졌던가? 이러다가 두 정상이 입맞춤이라도 했다가는 영구평화라도 올 기세다.


내가 평화적인 상징성 자체를 싸그리 무시해버리고 싶은 게 아니다. 분명히 이러한 평화적 행동을 통해 우리가 희망을 기대해볼 수는 있다. 하지만 문제는 현실을 잊은 기대는 설령 그 의도가 너무 선하다고 할지라도 의도와는 전혀 다른 비극을 현실에서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이렇게 평화가 왔다며 떠들고 기쁨에 취해있을 때 북한 주민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가난속에서 폭력속에서 죽어가고있지 않은가? 우리가 정녕 이들 앞에서 평화가 왔다고 외칠 수 있겠는가? 상징적인 허상뿐인 평화 앞에서 오히려 이들의 고통은 정당화되고 있는 것 아닐까? 적어도 인간적 양심이 있는 자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이들의 고통 앞에서 감히 가짜 평화가 왔다고 외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0일 판문점 자유의집 앞에서 역사적인 남북미 만남을 갖고 있다. /사진=청와대


언론은 양심을 팔아버린지 오래다. 기자가 자신의 소신을 가지고 진실을 추구하는 것은 온데간데 사라진지 오래다. 언론은 현실이 아닌 상징만을 쫓고 있다. 상징적 의미는 시인이나 소설가에게 맡겨도 충분하다. 언론은 국민들이 아무리 허울뿐인 가짜 평화에 취해있다고 할지라도 치열하게 현실주의자로 남기위해 몸부림 쳐야한다.


현실의 안목을 들이민다고 국민들이 아무리 돌팔매질을 하더라도 묵묵히 돌을 맞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이렇다'고 말할 양심이 언론인에게 있어야 한다. 슬프게도 우리 사회에서 돌팔매질을 당하는 언론인은 찾기 어렵다. 돌팔매질을 당하기는 커녕 돌을 들고 있는 사람들만 보더라도 해도 이미 자신의 펜을 내려놓고 대중 속으로 숨어버린다.


아, 작금의 상황은 양심있는 언론인이 너무나도 절실하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오직 북한만을 바라보며 구애를 하고 있다. 북한에 대해서 우호적인 발언들을 쏟아내지만, 단 한번도 북한 주민들의 인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과연 대통령은 무엇을 위해서 북한과 통일을 해야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아무런 성과가 없던 판문점 만남에 대해 어떻게 해서라도 긍정적 의미를 찾아내려고 하는 대통령의 노력을 보고있잖니 참으로 애달프다. 빈수레는 요란하기라도 하지, 미북 사이에 중재자 노릇을 하겠다 자처하지만, 막상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주제넘게 생색낸다'며 꾸지람이나 듣기 일쑤다.


참으로 딱하다. 참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딱하다. 마치 구한말 조선의 민비가 현실을 잊고 샤머니즘에 빠졌던 것처럼,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가혹한 현실을 잊고 꿈같은 상상속에 빠져있다. 민비가 국제 정세를 전혀 읽지 못하고 영국과 미국이 아닌 러시아에 매달렸던 것 처럼,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국제 정서는 커녕 왜곡된 과거사에 매달려 일본과의 관계를 최악으로 빠트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특히 중대한 국면의 해결을 위해서는 상식을 뛰어넘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라고 한다. 도대체 왜 대통령에게 상식을 뛰어넘는 상상력이 필요한가? 상식을 뛰어넘는 상상력은 문학가에게서나 찾아야 되는 것 아닌가? 정녕 그는 민비의 샤머니즘의 길을 걷고자 하는 것인가?


"문서상의 서명은 아니지만 사실상의 행동으로 적대관계의 종식과 새로운 평화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선언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얼마나 상상력에 빠졌길래 악수하고, 포옹하고, 군사분계선을 넘었다는 것을 사실상의 적대관계의 종식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그에게 평화는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현실의 눈을 떠야한다. 현실의 눈을 뜨고 가혹하게 죽어가는 북한의 주민들을 바라봐야한다. 이 현실을 보지 않고서는 그 어떤 기분좋은 상상도 아편과 다름없을 뿐이다.


참혹한 현실 속에서 꿈꾸는 이상주의자들의 출몰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현실의 지친 사람들에게 그 정도의 따뜻한 목소리조차 빼앗을 수 없다. 하지만 위로는 순간이고 현실은 영원하다. 현실을 잊고 위로만을 외치는 자를 나는 진보주의자라 할 수 없다.


가난한자와 약한자를 위한다고 말하는 그들의 의도까지 나는 의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의도가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다. 의도가 어찌됐든 현실의 눈이 떠있지 않다면 그들의 선한 칼날에 악인은 커녕 선한 인간만 베일 뿐이다. 현실없는 이념은 극단적이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한다. 역사상 가장 끔찍한 일들은 이렇게 '선한' 인간들에 의해서 이루어져 왔음을 말이다. /성제준 객원 논설위원


[성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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