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만 권 판매…이문열 압도하는 문학시장 황제
그러나 완성도 떨어지고 반 대한민국 성향만 난무
   
▲ 조우석 언론인
조정래 문학은 건강한가? 그걸 묻는 3회 연속 칼럼은 그의 신작 장편 <천년의 질문>과 그의 대하소설 <아리랑>을 중심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역시 조정래 하면 대하소설 <태백산맥>이 아니던가? 그 작품과 정면승부를 해야 비로소 조정래 문학의 잘잘못을 최종 확인할 수 있다.

근현대사 전체를 포괄한 조정래의 대하소설 시리즈는 <태백산맥>을 필두로 <아리랑>(근대 이후 일제시대사)과 <한강>(현대사)로 이어지는 3부작으로 구성됐는데, 이 전체가 낱권으론 따져 1550만 부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당연히 3부작 중 <태백산맥>이 가장 많이 팔렸고, 영향력도 컸다. <태백산맥>만 700만 부 판매됐는데 가히 천문학적 수치다.

어쨌거나 그의 1550만 부 기록은 동료 작가 이문열과 비교된다. 그의 경우 데뷔 첫해 명성을 얻기 시작해 <그해 겨울>(1980), <황제를 위하여>(1982) 등 수많은 히트작을 내며 한국 문단과 소설 시장을 좌우했지만, 그동안 소설책 팔린 것은 낱권으로 따져 1100만 권 정도로 추산된다.
 
   
▲ 전남 벌교의 태백산맥 문학권에 붙어있는 조정래 문학의 좌우명 명판. 그러나 조정래 문학이 과연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에게 기여한 것은 무엇인가 하는 의구심은 여전히 남이 있다.

30년 넘는 문화권력
 
나머지가 <평역 삼국지>인데, 그게 1900만부 가까이 판매됐다. 단 <평역 삼국지>는 본격문학으로 쳐주지 않기 때문에 결국 이문열의 1100만 권은 조정래에 비해 뒤지는 기록이다. 더욱이 조정래가 대하소설 중간에 짬짬이 펴냈던 장편소설 <정글만리>(전3권)와 <풀꽃도 꽃이다>(전2권) 등의 판매수치까지 포함하면, 그는 판매부수만으론 문학 시장의 황제가 맞다.

때문에 엄격한 검증도 필수인데, <태백산맥>은 1986년 제1부 3권이 단행본으로 첫선보인 뒤 1989년 완간됐다. 이후 30년이 넘도록 변치 않는 문화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다. 평론가들은 이 대하소설을 "1980년대 문학의 최고봉"식으로 포장해왔는데, 나는 결단코 동의 못한다.

문장 수준은 말할 것도 문학적 완성도 역시 언급할 가치가 없으며, 내용이 문학의 옷을 걸친 반역소설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백 말이 필요 없다. <태백산맥>에 나오는 빨치산들은 공비(共匪, 공산비적)가 아니라 순결하고 낭만적인 전사로 그려지는 대목만 살펴보자. 즉 소설에 공산주의자로 나오는 염상진, 하대치, 김범우 등은 완전무결한 혁명가다.

"마지막으로 대문을 나서며 하대치라는 사내는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혁명전사의 순결, 김범우의 머리를 얼핏 스쳐간 그들의 용어였다. 염상진과는 달리 정치의식의 무장이 다소 덜되었을 그 모습, 처녀의 정조에 다만 쓰는 것으로 통념화된 '순결'이라는 말을 혁명전사 뒤에 왜 붙였는지 김범우는 비로소 알 것 같았다."(제4권)

즉 좌익은 순결하고 무죄인 반면 우익은 더럽고 유죄다. 그게 조정래의 영원한 공식이다. 건국에 앞장섰건, 빨치산에 반대했건 대한민국 우익은 하나도 예외 없이 천덕꾸러기에 인간말종으로 그려진다. 하긴 현대소설 <천년의 질문>이나 <허수아비춤> 수준이 어디에서 나왔겠는가?

일테면 <태백산맥> 5권에 등장하는 우익 인물인 벌교지역 계엄사령관 백남식 중위의 경우가 그러한데, 그는 부임 첫날 읍내 유지들과 술판을 벌였다. 당연히 친일파라서 일본 관동군 출신이며 독립군 사냥에 앞장서던 위인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멀쩡한 유부남인데도 벌교 하숙집 주인 윤 부자네의 아내와 딸을 잇달아 범한다.

모녀 농락에 그치지 않고, 그걸 빌미로 윤 부자네 재산의 절반을 요구하는 저질 인간이 백남식이다. 이 정도면 정말 악의 화신이다. 놀랍게도 그게 280명 주요 등장인물에 예외 없이 적용되는 이분법이다. 당연히 리얼리티가 떨어지는데도 무슨 "1980년대 문학의 최고봉"이란 말인가?

소설의 절반은 캐릭터 즉 등장인물에 달려있는데, 그게 이 정도라면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이래도 <태백산맥>은 멀쩡한 소설인가?", 그걸 묻지 않을 수 없다. 인물 묘사만 그런 게 아니다. 인민군이 저지른 대민 피해나 학살 등에 대해서는 언급도 않고 국군과 미군의 범죄만 강조한다. 인민재판도 몇 장면 나오는데 그걸 숫제 정의의 심판으로 묘사한다.
 
   
▲ 2016년에 열린 <태백산맥> 출간 3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촬영하는 작가 조정래(오른쪽에서 두 번째).

좌익은 순결하지만, 우익은 더럽다
 
당연히 빨치산은 일단 그 지역에 입성하면 동네가 모두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모범적인 집단으로 그려진다. 그들은 진압군에 의해 축출된 후에도 지속적으로 게릴라전을 벌이다가 나중에 지주의 집을 털어 주민들에게 설 선물을 주는 의적(義賊)의 행동까지 보인다.

이런 일방적 내용의 소설을 읽고서 좌익의 편을 들고, 대한민국을 욕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하지 않을까? 실은 '빨치산 혁명놀이'에 대한 조정래 자신의 저 해괴한 신념부터 잘못이다. 대하소설이 완간된 직후 문예지 '문학정신' 좌담회에서 그가 했던 실로 대담한 발언인데, <문학과 역사와 인간>이란 단행본(1991년 한길사)에서도 재수록됐다.

"그래서 혁명적 낭만성이라는 말도 있는 것 아닙니까? 붉게 타는 노을을 바라보며 혁명의지를 재충전하는 그들(공산주의자) 모습을 (<태백산맥>에서) 그려냄으로써 그들이 인간을 위한 혁명에 나섰다는 것을 그대로 표현해내려고 애썼던 것입니다."

이 거리낌 없는 발언을 나는 전부터 중시해왔다. 그건 아무리 봐도 통진당 이석기를 뺨치는 수준이다. "미국놈 몰아내고 조선민족의 꿈을 위해 최종결전하자"고 선동했던 그 이석기의 원조다. 이석기만이 아니라 그 전 1980~90년대 자라난 주사파 자체가 <태백산맥>과는 한 뿌리다. 놀랍게도 지난 30년 누가 이런 질문을 던진 바 없었다는 점이다.

핫바지 평론가들도 문제이지만, 이 나라 공권력은 무얼 했던 것일까? 어쨌거나 이 소설이 이 나라 젊은이와 지식인에게 실로 파괴적인 영향력을 행세했다. 이후 대한민국 현대사는 정의가 실패하고 기회주의가 판을 치던 역사로 굳어졌다. 조정래는 그렇게 대한민국을 짓밟아왔다.

그건 문학의 이름으로 된 폭력행위에 다름 아니었다. 아니 국가 반역행위다. 그러고도 모자라 <천년의 질문>에서 국가에 저항하라고 가르친다. "단결해서 저항하는 국민이 되는 것, 국가권력을 직접 통제하는 국민이 되는 것, 이것이 뚜렷한 해결책이고, 우리 사회에 주어진 미래의 숙제이겠지요."(제1권 398쪽, 민변 변호사 최민혜의 말)

그런 그를 문화권력이고 대문호로 떠받드는 한국 사회의 지적 수준이 참담할 뿐이다. 사실 이 정도의 내 비판에도 와르르 무너지는 게 조정래 문학이라면, 그건 문학이 아니다. 반복하지만 '문학 이전'이 당신 문학의 실체다. 남은 건 둘 중 하나다. 그가 내 글에 반론을 하던지, 아니면 이참에 붓을 꺾고 문단을 은퇴하던지.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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