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회장 회고록 주장, 관료들이 대우 자금줄 봉쇄후 부실기업 몰아가

   
김우중 전 대우회장
대우그룹 해체는 유동성이 악화해서 비롯된 것인가? 경제관료들의 잘못된 판단에  의한 기획해체인가?

김우중회장은 <김우중과의 대화>에서 김대중정부 관료들의 기획해체를 주장했다. 기업어음발행 한도 제하한조치, 회사채 발행 제한조치 등을 통해 대우의 정상적인 자금조달을 차단했다는 것이다.

이 조치직후에 노무라증권에서 '대우에 비상벨이 울린다'는 보고서를 발표해 채권금융기관의 자금회수가 본격화했다는 게 김회장의 주장이다. 다음은 김회장이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와의 대담에서 밝힌 내용이다.

대우의 유동성 악화와 워크아웃 - 대우의 ‘경영실패’인가 정부의 ‘기획해체’인가

김대중대통령(DJ)은 김우중 회장과 경제관료들을 경합시켰다. 그리고 양 쪽의 얘기를 다 들으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대우를 겨냥한 것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는 두 차례의 유동성 규제조치가 금융감독위원회로부터 나온다. (1998년 7월, ‘CP 발행 한도 제한조치’와 10월 ‘회사채 발행 한도 제한조치’. 회사채 발행 제한 조치 이틀 후 노무라 증권에서 ‘대우에 비상벨이 울린다’는 보고서를 발표했고 금융권의 자금회수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었다.)

강봉균 경제수석은 11월 28일 김 회장이 DJ를 만나기 직전에 ‘김우중 회장 접견 자료’를 DJ에게 제출한다. 이 보고서는 대우그룹의 총차입금이 1997년 말 28.7조 원에서 1998년 9월 말 47.7조 원으로 9개월 사이에 19조 원이나 늘어난 사실을 강조했다.

그리고 “단기부채가 계속 늘고 있는 현상을 보면 이익 산출의 투명성에 의문이 크다”며 “밀어내기식 수출과 이로부터 창출된 매출채권을 기반으로 운전자금을 조달하는 행태를 지속했다”고 밝혔다.

이 진단은 대우가 해체된 뒤 정부의 공식 워크아웃 보고서에서도 반복됐다.  요컨대 대우가 ‘부실’로 인해 금융시장의 신뢰를 잃고 있는 상황에서 가공수출을 늘려 자금난을 넘기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DJ는 결국 경제관료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우에 대한 금융권의 자금회수가 이어졌고, 대우는 1999년 8월 ‘워크아웃’으로 처리된다.

대우의 유동성 위기에 대해 김 회장은 본말(本末)이 전도(轉倒)됐다고 말한다. 수출금융이 막혀서 16조 원이 갑자기 필요해졌고, 금융권이 BIS비율 맞추기 등 자신들의 구조조정을 하면서 3조 원의 대출을 회수해 갔다는 것이다. 대우의 잘잘못 여부와 관계없이 외부 여건 때문에 할 수 없이 19조 원을 조달해야 했는데 이것이 왜 ‘기업부실’의 증거냐고 반문한다.

   
▲ 신장섭 교수가 김우중회장과의 대담을 통해서 펴낸 <김우중과의 대화>.

“그 당시 우리가 수출금융을 풀어달라고 요청하던 것에 대해 정부나 언론에서는 대우가 무슨 큰 특혜를 요구하는 듯이 얘기했는데, 그게 절대 아닙니다. 통상적인 금융을 정상화해 달라는 것이었을 뿐이지요. 기업은 정부나 금융기관에서 만들어놓은 시스템에 따라서 활동을 합니다. 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 왜 기업 잘못인가요? 시스템 고장난 걸 고쳐달라는 것이 왜 특혜를 요구하는 겁니까?”라고 말한다.

김 회장은 따라서 경제관료들이 자금줄을 묶어놓고 대우에 부정적인 시장 분위기를 만들면서 대우를 ‘부실기업’으로 몰고 갔다는 소위 ‘기획 해체론’을 주장한다. “정부에서 갑자기 수출이 나쁜 것처럼 얘기하고, 수출금융이 막혀 벌어진 일들을 우리가 잘못한 걸로 몰아붙이는 건 도대체 말이 되지 않지요. ‘의도’가 있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어요.”라고 말한다.

장병주 당시 (주)대우 사장도 “정부 측에서는 우리가 자금난을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수출을 늘려서 금융을 일으켰다고 몰아가는 분위기였다”며 그렇지만 실상은 “수출금융이 막혔기 때문에 수출할수록 돈이 많이 필요한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김 회장은 정부의 ‘밀어내기식 수출’ 주장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박한다. “그러면 거기(현지법인)에 과잉재고가 있어야 할 것 아니에요? 워크아웃 하고 삼일회계법인이 실사 나왔을 때 그런 것 잡아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까지도 그런 재고에 대해서 아무 얘기 없잖아요?”.
 

김 회장은 삼성과의 자동차 빅딜 무산, 사재출연과 워크아웃 과정에서도 경제팀의 ‘의도’가 작용했다고 말한다. 돌이켜 볼 때에 “경제관료들이 나를 제거하려는 ‘프로그램’을 갖고 있었다고 믿고 있어요”라고까지 얘기한다. DJ는 정치적 이유 때문에 대우와 삼성 간의 자동차 빅딜을 적극 밀었지만 경제관료들은 빅딜이 깨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한다.

김 회장이 사재 1조 3천억원을 포함해 총13조 원의 자산을 채권단에 내놓고 마지막 회생 작업을 할 때에도 (‘7/19 대우 유동성 개선을 위한 자구방안’) 정부 측이 10조 원의 자금지원을 약속한 뒤에 4조 원 밖에 주지 않고 경제정책 최고 책임자들이 즉각적으로 대우와 김 회장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쏟아내 ‘워크아웃’으로 내몰릴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대우그룹을 청산가치로 실사해 30조원이나 자산가치를 낮춰서 ‘부실기업’으로 낙인찍고 경영권 박탈과 워크아웃을 합리화했다고 말한다.

대우 해체와 한국경제 구조조정에 대한 장기적 평가 – 지난 15년 동안 벌어진 일들에 비추어볼 때에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경제관료들이 보는 관점에서 만들어진 대우해체의 ‘정사(正史)’가 한국사회에 고착된 지 15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다. 2008년~2009년 세계금융위기라는 큰 사건도 겪었다. 

지난 15년을 돌이켜 보면 김 회장의 얘기가 오히려 옳았다는 증거가 곳곳에 드러난다. 아시아 금융위기 때에 관료그룹, 학계, 국내외 언론들은 비관론에 휩싸였다. 한국에 ‘구조적 문제’가 너무 많다는 자성론(自省論)이 판을 쳤다. 그러나 김 회장은 당시 한국경제에 대해 낙관적 전망을 갖고 있던 극소수 중 한 명이었다. IMF프로그램을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한국경제가 크게 나빠질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얘기한 극소수 중 한 명이었다. 김 회장이 세계를 무대로 기업활동을 하면서 세계경제 흐름을 누구보다 잘 읽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김 회장은 “… (1990년대 초반부터) 한 20년 가까이 세계경제가 호황이었어요. 그때 아시아만 잠깐 금융위기였을 뿐이지, (세계)실물경제는 문제가 없었어요. 관리들이 (경제를) 길게 보지 못해요. 20년 이상은 예상하고, 10년은 내다보면서 정책을 세워야 하는데…. 그때는 외국 금융기관, 컨설팅 회사들이 내놓는 보고서들만 쳐다보고 얘기했어요. 우리가 세계경영 투자를 멈추지 않았으면 2000년대에 크게 열매를 거둘 수 있었을 겁니다. 나중에 대우계열사들이 다 좋아졌잖아요? 그 열매를 그 회사들을 인수한 외국투자자들이나 출자전환 해서 들어온 금융기관들이 다 갖고 간 거지요.”라고 말한다 .

김 회장의 혜안(慧眼)대로 2000년대에는 신흥시장의 시대가 열렸다. 대우의 세계경영은 신흥시장의 성장가능성을 보고 선투자한 것이었다. 대우가 만약 해체되지 않았다면 신흥국 출신 최대 다국적기업이라는 위치를 계속 유지했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한국은 금융위기 때에 비관론에만 휩싸여서 그 기회를 많이 놓쳤다. 대신 대우자동차처럼 기투자했던 것들을 정리하면서 그 비용만 부담하고 남들 좋은 일만 시켜 줬다. 김 회장은 “그때 구조조정 한다면서 우리가 외국에 자산 팔아서 손해 본 것이 얼마나 많아요? … 다른 대기업들이 판 것들도 많잖아요? 제일은행, 한미은행, 외환은행 등 금융기관들도 다 헐값에 팔았어요.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니까 너무 싸게 팔았다는 것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까지 국부(國富) 해외유출 문제가 나오는 거예요. 우리가 그렇게 싸게 판 것이 산 사람들 입장에서는 큰 이익이지요. 그 사람들은 ‘한국이 문제 많다, 구조조정 해야 한다’라고 자꾸 얘기해서 좋은 매물이 싸게 나오면 자기들에게 좋은 거예요.”라고 말한다. 김 회장은 또 IMF프로그램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이 2000년대에 제조업투자를 등한시하게 된 것을 크게 아쉬워한다. 그래서 “선진국으로 올라갈 수 있는 찬스”를 놓쳤다면서 제조업 투자를 계속했으면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이미 3-4만 달러에 도달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김 회장이 금융위기 중에 “관리들이 자기 할 일을 안 하고 핑계만 댄다”고 강하게 비판했던 것도 그 후 벌어진 국부유출이나 저성장 등의 문제를 보면 김 회장이 결과적으로 옳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김 회장은 “ … 외국에서 그런 압력을 넣더라도 정부에서 그걸 막아줘야지, 오히려 정부가 앞장서서 수출 못 하게 하고 외국 압력을 핑계 대서 국내 자산을 헐값에 넘기게 만들었다”고 다시 강조한다. [미디어펜=이의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