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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전 대우회장 |
대우는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60년대 스웨터 등 봉재가공 수출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제조업과 무역 투자기업을 일궜다. 김우중회장은 한국기계 옥포조선소 등을 잇따라 정상화시켰다. 새한자동차를 인수해 대우자동차로 키워 세계경영의 주력으로 일궜다.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등에서 세계최대 자동차메이커 GM을 제치고 현지 자동차업체를 인수하는 등 세계경영을 선도했다. 한국경제의 방향을 제시했다. 80~90년대 대우외에는 해외에 진출한 기업이 거의 없었다.
대우는 해외로 나갔다. 세계시장을 개척했다. 젊은이들에게 꿈을 심어줬다. 김우중회장은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가질 것을 당부하고 있다.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젊은이들의 혼을 일깨우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김회장은 현재 베트남에서 젊은 경영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로벌 영 비즈니스 매니저들'GYBM) 프로그램이다.
한국에선 아직도 추징금 족쇄(17조원)에 묶여 자유롭게 활동하기 힘들다. 베트남에서 미래의 주역들을 키우는데 여생을 바치고 있다. 베트남에서 양성중인 젊은이들이 세계경영을 다시금 화려하게 꽃피우길 기대하고 있다. 김우중회장은 아직도 현재형이다. 사라지지 않았다. 젊은 기업인 100만명 육성을 통해 세계경영의 화려한 부활을 꿈꾸고 있다. 다음은 김우중회장이 신장섭 국립 싱가포르대 교수와의 대담집(<김우중과의 대화>)에서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부분이다.
내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대우의 창업과 성장 과정에는 젊은이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 있다. 김 회장이 27살의 젊은 나이에 혈혈단신으로 싱가폴에 가서 당시 한국 전체 봉제업체들이 갖고 있는 모든 기계를 돌려도 1년에 생산해내지 못할 물량의 수출주문을 따냈다. 이 과정에서 사랑과 의리를 맞바꿀 수 밖에 없게 되는 운명도 겪었다.
한국기계, 옥포조선소 등을 정상화시켜 ‘부실기업 해결청부사’로 떠올랐다. 리비아에서 성공신화를 만들어내고 여기에서 물품대금으로 받은 원유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국제석유거래의 큰 손으로 떠오르는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야심있는 젊은이라면 대우의 성장사에 대해 눈을 떼지 못할 이야기들이다. 대우의 이 가슴 뛰는 스토리들은 당시 김 회장을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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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섭 싱가포르대 교수 |
김우중 회장은 젊은이들에게 직접 이야기 하기를 즐긴다. 150만부 가량이 팔려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됐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1989년)에 ‘내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라는 부제를 붙일 정도였다. 기업인들이 자신의 경영철학이나 노하우에 대해 얘기한 책들은 많이 있다. 김 회장은 젊은이들을 상대로 직접 대화하듯 훈계하듯이 이야기를 했다. 젊은이들을 아끼는 마음이 강하고, 그래서 해주고 싶은 얘기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대우 시절에도 신입사원 교육에는 없는 시간을 만들어서도 직접 가서 강의했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빨간 줄”이 그어져 취직하지 못하던 젊은이들을 대거 채용해서 세계경영 전선으로 내보내기도 했다. 지금 하노이에 머물면서는 김 회장의 주업과 부업이 바뀌어져 있다. 2012년부터 글로벌 YBM(GYBM, Global Young Business Managers) 과정을 만들면서 젊은이들을 ‘대우인’처럼 조련하는 일이 주업이 되었다.
동남아에 뿌리를 내려 국제 비즈니스를 제대로 할 젊은이들을 양성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강의도 하고 정신교육, 생활지도까지 한다. 졸업한 학생들도 정기적으로 만나 격려하고 취직한 회사에서 잘 정착하고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항상 큰 구상을 해왔던 것처럼 김 회장은 ‘GYBM 백만 양병론’까지 거론한다.
김 회장은 만년(晩年)에 사회봉사에 힘쓰면서도 젊은이들에 아낌없는 조언을 하고 있다. GYBM이 한국의 청년실업 해소에 조그맣게라도 기여하면서 한국경제의 국제적 기반을 다지는 일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여기 베트남 같은 개발도상국은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진다. 기대수준만 조금 낮추면 일할 수 있는 것들이 많고 앞으로 (잘될 수 있는) 가능성도 더 높다.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메시지이다.
젊은이들에게 그냥 세상에 나가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대우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1년 동안 제대로 된 실무교육을 시켜 ‘대우인’처럼 조련해주고 일자리도 찾아주겠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지금 당장 받는 연봉보다 일을 배워야 한다. 10년 동안은 일을 배운 뒤 그 회사에서 중역으로 올라갈 건지 독립할 건지를 결정해야 한다. 취직한지 5년 만에 창업했지만 평균 연령이 늘어나고 있으니 10년 뒤에 창업하더라도 급할 일이 없다고도 한다.
“사람 키우는 걸 왜 그렇게 좋아하십니까?”라는 질문에 김우중 회장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해야 되겠다 생각하니까 하는 거지요. 내가 테스트 케이스(test case)로 해서 되면 다른 데서 제대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고…. 일본 마쓰시타 정경숙(松下 政經塾)처럼 앞을 보고 하는 거지요. 그건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을 만들려고 한 거지만, 우리가 하는 건 세계를 돌아다닐 경제지도자를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이걸 내가 마지막 흔적을 남기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 10년이나 20년 후 학생들이 창업해서 성공한 CEO가 되어 있든지, 좋은 회사의 중역이 되었을 때까지 내가 다행히 살아 있어서 그 회사들을 다녀보게 되면 그게 얼마나 가슴 뿌듯하겠어요? 이 친구들이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으면 그것 축하해주러 집에도 가고, 같이 밥도 먹고 … 그게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지요. 이제 나는 나이가 들고 직접 할 수 없으니까 우리 젊은이들이 나 대신 세계에서 사업할 수 있도록 키우는 데에 내 여생을 바치려고 해요.” [미디어펜=이의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