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경제 사면초가 그래도 '반쪽휴가'…하루살이 국민 가슴 무너져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국내 주요그룹 총수들은 '휴가 없는 여름'을 보내고 있다. 수출 부진과 경기불황이 겹치면서 중소기업 사장은 일이 없는데 휴가 운운은 팔자 좋은 다른 나라 이야기라는 등 볼멘 목소리다.

문재인 대통령이 예정된 휴가를 반납하고 집무실에서 정상 근무한다고 청와대는 지난 28일 밝혔다. 일본의 경제 보복, 러시아의 영공 침해,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 등 현안이 겹쳐 취소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게 모든 언론의 중요 뉴스로 전해졌다. 청와대발 받아쓰기지만 영 마뜩찮다. 대통령의 휴가는 국민들에게 관심거리임에는 틀림없다. 예전에도 어느 대통령이 어디에서 휴가를 보내는지에 대한 관심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영 모양새가 아름답지 못하다. 대내외적으로 안보와 경제가 위협을 받고 있다. 정상적이라면 휴가와 같은 한가한 얘기가 나올 수 없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9일 수석·보좌관 회의를 열지 말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대통령 휴가에 맞춰 휴가를 계획했던 직원들이 예정대로 떠나도록 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대통령이 휴가를 반납했다고 청와대 스스로가 밝힌 상황에서 참모진들이 마음 놓고 휴가를 갈 수 있을까?

   
▲ 문재인 대통령이 예정된 휴가를 반납하고 집무실에서 정상 근무한다고 청와대는 지난 28일 밝혔다. /사진=청와대

30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은 휴가는커녕 가슴을 졸이고 있다. 다음달 2일 일본 정부가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할지를 결정할 각의의 결과가 나온다. 일본의 현지 여론이 심상치 않는 가운데 예의주시하며 현안 점검에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이미 삼성, SK그룹, 롯데그룹 등은 일본의 무역 보복에 사실상 '비상경영체제'를 가동 중이다. 총수들에게 휴가란 의미 자체가 지금은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한가하게 대통령 휴가 반납이 무슨 대단한 결단인양 자랑(?)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반도체 부품 직격탄을 맞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휴가 계획을 잡지 않은 채 경영 구상에 몰두하고 있다. 일본의 반도체 부품 보복조치 이후 이 부회장은 엿새간 일본 출장을 마치고 지난 12일 귀국한 직후 긴급 사장단 회의를 소집해 일본의 추가 수출 통제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컨틴전시 플랜(비상 계획)’ 마련을 지시했다.

이 부회장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소재 수급 현황, 사업 영향, 대응 방안을 엄중하게 살펴보면서 하반기 경영 전략을 집중 논의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비상 상황인 만큼 일본 수출 제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부서 임원진도 휴가보다 위기 대응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SK그룹도 다르지 않다. 최태원 회장은 SK하이닉스가 일본 수출 규제 조치의 직격탄을 맞은 만큼 휴가 계획을 정하지 않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역시다. 정의선 수석부회장도 휴가는 접어둔 채 현안을 챙기고 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이르면 8월 초에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주력 산업 점검과 미래산업에 대한 구상 등을 하는 ‘휴가 아닌 휴가’를 보낼 것으로 전해졌다. 신동빈 롯데 회장은 일본 경제보복 조치에 따른 불매운동이 롯데그룹 계열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대책 수립과 위기 돌파 방안을 고심 중이다.

중소기업과 유통업체, 자영업자 등 소상공인들의 시름은 더욱 깊다. 여름휴가나 휴가비는 ‘언감생심’이고 줄어드는 매출에 숨이 막히는 실정이다. 여름휴가 속앓이는 직장인도 마찬가지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알바콜이 직장인 660명을 대상으로 최근 설문 조사한 결과, 올여름 휴가 계획이 없다고 답한 응답자가 22%에 달했다. 회사에서 올여름 휴가비가 지급된다고 답한 응답자도 전체의 25.4%로, 지난해 조사(26.2%)와 비교해 0.8%포인트 감소했다. 지급되는 휴가비도 지난해 평균 49만5000원에서 올해는 39만6000원으로 20%가량 줄었다.

이게 현실이다. 한가하게 청와대가 나서 대통령 휴가 반납 운운은 국민이 웃을 일이다. 워라밸은 그들만의 세상에서나 자랑거리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7일부터 1박 2일로 제주도를 방문한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코미디다. 휴가를 독려해 내수를 진작시키겠다는 발상은 어디쯤에 머무르는 현실인식일까? 누구나 워라밸은 꿈꾼다. 휴가 가고 싶지 않은 사장이나 직원은 없다. 그리고 그건 강제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다. 조건이 충족되면 누구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칠 이유는 없다. 하지만 현실은 며칠의 휴가보다 냉혹하다. 

안보와 경제 모두가 위협 받는 상황에서 대통령 휴가 반납을 국민에게 홍보하는 정부가 참으로 후안무치다. 러시아와 중국·북한의 도발과 일본의 경제보복 으로 사면초가의 위기다. 와중에 대통령의 제주도행은 개인일정이란다. ‘반쪽휴가’도 못 쓰는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찔끔 휴가비 보태주면서 생색은 대단하다. 그것도 국민 대다수가 아닌데. 차라리 대통령 휴가 얘기는 안 하는 게 가슴 아픈 국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휴가를 가고 싶어 한다. 또 한 번 다른 나라 얘기를 듣고 있다.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국민이 대다수다.
[미디어펜=편집국]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