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안보 위기 눈 감은 비겁한 이상주의자들
유례없는 혼란의 시기…냉혹한 현실 외면 '이성'조차 마비
편집국 기자
2019-07-31 10:39

   
성제준 객원 논설위원
현재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상황은 그야말로 유례없는 혼란의 시기에 놓여있다. 지난주, 중국과 러시아는 한국의 방공식별구역(KADIZ)을 제집 드나들듯 마음대로 활보했고 러시아 군용기는 독도 영공까지도 침범하기도 했다. 이에 한국의 공군 전투기와 일본 자위대 전투기가 출격하는 사실상의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 북한은 보란듯이 유엔 안보리 제재를 정면으로 위반하며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기까지 했다. 일본과의 관계는 나아지기는 커녕 점점 파국에 치닫고, 위기의 순간에 도움의 손길을 건낼 동맹국은 이미 한국에 마음을 접은지 오래다.


현실에 위기가 닥쳤을 때 이상을 꿈꾸는 이상주의자들의 출몰은 그리 이상한 게 아니다. 공포의 순간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현실을 바라볼 이성의 눈을 감아버린다. 어느 누구도 기꺼이 참혹한 현실을 두눈 부릅뜨고 마주할 용기가 없다. 하지만 그대가 눈을 감은들 무슨 소용인가?


현실은 당신 코앞에서 목이 터지라 고함을 치고 있는데 말이다. 어찌해야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가? 홀로 서있는 자는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버리고 말것인가? 그래 군중 속으로 도망치자. 군중 속으로 꼬랑지를 내리고 숨어버리자. 그럼 그 어떤 현실도 발견하지 못할 테다.


그래, 이 참담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자는 스스로를 군중 속으로 내던져도 좋다. 어느 누가 이들의 '자살'을 정죄할 수 있겠는가? 어느 누가 생명을 포기한 이에게 손가락질 하고, 어느 누가 존재감을 포기한 이에게 손가락질 하겠는가? 어느 누가 자신의 존재를 파괴하고 껍데기만 남아 썩어 문드러질 운명의 봉재인형에게 손가락질 하겠는가? 어느 누구도 공허히 몸을 허우적거리는 이들에게 손가락질 할 수 없다.


아, 애달프다. 참으로 애달프다. 속이 텅 비어 구더기만 남아있을 저 봉재인형은 스스로가 살아있다고 외치고 있다. 말아 붙어버린 성대로 고함을 친다고 살아있다 착각하는 저들을 누가 구원해줄 것인가? 죽은 자들이 무슨 한이 그렇게 맺혔는지 끊임없이 입을 뻥긋댄다. 그 모습이 참으로 공포스럽다. 현실을 피하려 죽음을 선택한 이들이 이제는 공포의 사자가 되었다. 


   
북한이 25일 미사일에 이어 31일에도 미상의 발사체 수 발을 발사했다. 사진은 북한이 지난 5월 9일 쏘아올린 단거리 발사체의 모습을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다음날인 10일 보도했다./사진=조선중앙통신


이들은 무엇을 그렇게 말하고 싶을까?  이들은 자신의 일상이 싫다고 한다. 이들은 자신의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한다. 이들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악마 때문에 자신의 일상이 이렇게 되었다 말한다. 이들은 악마를 저주한다. 백년도 넘은 악마가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악마의 정체는 뭔가? 이들도 모른다. 악마는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해야만 하는 무엇인가다. 
 

어떻게 해야 우리는 이들을 죽음에서 구원할 수 있을까? 간단하다. 존재하지 않는 악마를 존재하게 만들자. 현실에 없다면 있게하면 그만이다. 100년이란 시간은 의미없다. 100년전이나 지금이나 악마는 똑같은 악마다.


자 이제 악마를 사슬에 묶고 무릎 꿇리자. 땅에 머리를 박아 피로서 속죄시키게 하자. 악마는 그렇게 용서를 빌었다.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죄는 주홍 같이 붉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다. 자 이제 이 땅에 악마는 사라졌다. 이제 이 땅에 자기를 죽음으로 내던질 자도 없다. 하지만 이상하다. 왜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가?


악마는 속죄했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도대체 이 악마의 정체는 무엇인가? 가까이 가서 들여다 보자. 악마의 얼굴에 조금 더 가까이 가보자. 가까이 갈수록 점점 멀어진다. 이해하려 할 수록 점점 공허해진다. 악마의 정체는 무엇인가? 악마는 군중 속 뒤틀린 현실 그 자체다.


현실을 벗어나 자신의 존재를 버리고 군중에 뛰어든 자에게 현실은 저주다. 이들은 끊임없이 악마를 만들어내야만 한다. 악마가 없다면 군중은 있을 수 없고, 군중을 벗어나 홀로 서있는 건 죽음 만큼이나 공포스럽다. 하나의 악마가 이들에게 속죄했다. 두번째 악마가 이들에게 속죄했다. 세번째 악마가 이들에게 속죄했다. 그렇게 서른명이 넘는 악마가 속죄했다. 하지만 악마는 구원받지 못해야한다.


홀로 서있는 가혹한 자에겐 죽음의 공포와 평온이 있다. 군중 속으로 내던진 자에겐 죽음의 공포와 저주만 있을 뿐이다. 군중 속에서 머리를 쳐박고 있는 자에게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은 없다. 그저 이들에겐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고 하는 저주만 있을 뿐이다. 이들은 그렇게 끊임없이 악마를 만들어 낸다. 이들은 이렇게 악마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성제준 객원 논설위원


[성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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