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반미 드라이브가 문제…워싱턴도 큰 우려
대한민국 운명 흔들리고, 우리 삶도 변화 불가피
   
▲ 조우석 언론인
상식이지만 한미상호방위조약이야말로 대한민국 수호천사인데, 동맹관계가 70년 가깝게 유지되고 있는 것 자체가 국제정치사에 유례가 많지 않다. '어울리지 않는 동맹'으로 출발했던 과거를 염두에 두면 더욱 그렇다. 지구촌 최강국과 최약체 사이의 결합이란 누가 봐도 어색하지 않던가?

그런데도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이 이 조약 가조인 뒤 "후손들이 누대에 걸쳐 혜택을 누릴 것"이라고 예언했던 것은 너무도 유명하다. 백말이 필요 없다. 그 이전 우리역사를 보라. 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6.25전쟁…. 하지만 눈여겨볼 건 미국에 대한 우리의 호의적 인식은 이승만이 1950년대에 심은 것만은 아니란 점이다.

논문 '개화기 한국인의 대미인식'을 쓴 원로 역사학자 유영익 교수에 따르면, 우리의 미국 사랑은 무려 18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 계기는 아편전쟁(1839~42년)에서 중국이 패배한 직후 중국 중심의 천하질서가 깨져나가면서 조선에 서구 열강 중 유독 미국이 모델로 떠올랐다.

워싱턴까지 동맹 균열 걱정

개항(1876년)을 거쳐 내우외환을 겪으며 독립과 부국을 꿈꿀 때 당시 미국 선호란 거의 빅뱅에 가까웠다고 한다. 미국에 대한 전략적 선택을 강조한 중국 외교관 황준헌의 <조선책략> 영향도 있었지만, <한성순보>, <독립신문> 등 두 매체가 미국이야말로 "믿고 의지할 나라", "영토 욕심 없는 나라"란 인식을 대중에게 심어줬다.

그런 미국 인식의 하이라이트가 보빙사(외교사절단) 멤버였던 민영익의 발언이다. 그는 "나는 광명(미국) 속으로 들어갔다가 암흑(조선)으로 되돌아왔다"고 훗날 유명해진 방문 소감을 밝혔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우리의 미국 사랑이 그토록 열렬했던 배경에는 그런 전사(前史)가 있었다.

어쨌거나 한미동맹이란 보배가 눈에 띄게 위태로워진 게 요즘이다. 이 정부 들어 가장 요란한 반미 드라이브가 걱정이고, 워싱턴까지 '균열'과 '붕괴'를 말하기 시작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김현종이 지난주 "안보에 있어 우리의 주도적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발언했는데, 그건 대놓고 '자주 노선'의 깃발을 든 것으로 사람들은 이해하고 있다.

"동맹보다 국익을 앞세우겠다"는 말과 함께 용산 등 미군기지 26곳의 조기 반환을 공개적으로 서두는 것도 심상치 않다. 2년 뒤 한미연합사를 평택으로 옮기고 이 정부 임기 내 전작권 전환도 착착 진행 중이다. 정말 걱정은 한미동맹은 오래 전부터 껍데기만 남은 상황이란 점이다.

   
▲ 한미동맹은 이전부터 휘청댔다. 동맹의 3요소인 공동가치, 상호신뢰, 공동이익 모두가 흔들려왔지만, 여기에 원인제공을 한 건 우리다. 사진은 요즘 반미 자주 드라이브를 주도하는 국가안보실 2차장 김현종. /사진=청와대

연합훈련과 전략자산 배치 중단으로 약해질대로 약해진 게 한미동맹의 현주소인데, 지금은 지소미아, 전작권, 주한미군이라는 세 가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있다. 이 상황에서 지소미아라는 한 기둥이 없어지기 일보 직전이고, 전작권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이 상황에서 덜렁 남은 하나는 주한미군 병력뿐인데, 이 역시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다.

실로 아찔한데, 한미동맹은 이전부터 휘청댔다. 동맹의 3요소인 공동가치, 상호신뢰, 공동이익 모두가 흔들려왔다. 오늘 진실을 밝히지만, 여기에 원인제공을 한 건 우리라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지난 30년 좌파의 반미운동 못지않게 역대 대통령들의 잘못된 가치관이란 요인이 컸다.

우린 다시 역사의 문 앞에 섰다

김영삼 시절 "동맹이 민족에 우선할 수 없다"는 취임사부터 미국의 냉소를 샀지만, 최악은 "일본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발언이었다. 한미동맹은 미일동맹의 하위동맹인데, 섣부른 반일감정을 촉발시킨 것이다. 이후 김대중은 주한미군 위상을 바꾸려는 시도도 서슴지 않았다. 미군을 동북아 평화유지군으로 바꿔놓자는 발상부터 한미관계에 내상(內傷)을 입혔다.

이후 노무현 재임시 한미간 골이 더욱 깊어진 까닭도 우리 모두가 안다. 이라크 파병 문제, 전작권 문제 등에서 미국과 불편한 관계를 잇달아 연출하자 미국은 "말만 하면 언제든 주한미군을 빼겠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그런 한미관계가 잠시 안정됐던 건 이명박 정부 시절이다.

잠시의 평화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중국의 전승절 참석으로 미국을 당혹스럽게 했던 것도 부인 못한다. 이 과정을 크게 보면 이렇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반미가 구조화됐지만, 그 이전 80년 광주사태가 반미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그게 서서히 정치권을 물들이더니 끝내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켰다.

놀라운 건 문재인 정부가 예상보다 교조적이란 점이다. 드디어 저들은 지소미아 파기에 이어 한미동맹까지 손보고 있다는 관측이다. 이게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이번 사태를 전후해 일본과의 국교 단절 카드를 청와대가 흔들 수도 있다고 나는 본다. 당신은 "설마"하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대일 국교 단절 카드를 뽑으면 민족 감정이 더욱  고조될 것이고, 동시에  미국과의 갈등도 커지면서 껍데기만 남은 한미상호방위조약까지 흔들릴 수도 있다. 정말 최악의 시나리오인데, 이게 단순한 외교안보 환경변화가 아니란 점이다. 대한민국의 운명이 흔들릴 것이고, 우리 삶 전체가 바뀌는 대변화가 불가피하다. 정말 최악의 상황을 각오해야 할 판이다.

그러나 예측할 수 있는 건 이게 결코 간단하게 마무리되진 않는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의 '우리민족끼리' 승부수가 과연 통할까는 별도의 문제로 남아있다. 한미동맹이 깨지면 한반도는 다시 화약고가 될 것이라는 걸 인지한 국민들이 피플 파워를 행세할 수 있고, 미국이 현사태를 내버려둘까도 큰 변수다. 이래저래 우린 다시 한 번 역사의 문 앞에 서있다.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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