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소지향 일본론, 디지로그 이어 '막 문화론'
논리비약에 알맹이 없고 때론 사회에 위태로와
   
▲ 조우석 언론인
누구는 그를 가리켜 언어의 마술사라 부르고, 단군 이래의 재사(才士)라고 호평도 한다. 교수 출신으로 문화부 장관을 지낸 터라 요즘엔 석학이라고 높여 부르는 이도 많다. 1934년생 현역인 문학평론가 이어령 얘기인데, 그가 들고 나온 또 다른 이색 문화론을 얼마 전 접했다.

무슨 얘길까? 토박이 문화론, 구체적으론 '막 문화' 예찬이다. "한류(韓流)가 세계를 휩쓰는 것은 100년 전 해양문화를 받아들인 덕이다. 다음 100년 문화의 힘을 지금껏 버려뒀던 우리 고유의 막 문화에서 찾자." 막 문화란 막걸리·막사발·막춤에서 보듯 정형화되지 않은 그 무엇인데, 이것이야말로 다음 세기 창조적 새 문명의 에너지원이란 거창한 주장이다.

가수 싸이의 말춤, BTS의 몸짓도 모두 막춤이 뿌리란 설명이지만, 왜 이렇게 뒷맛이 쓸까? 논리비약은 물론이고 갖다 붙여 만들어진 말장난이 공허하기 짝이 없는데, 결정적으로 밑에 깔린 철학의 부재는 심각한 수준이다. 영험함을 잃은 지 오래인 '문화 무당' 이어령의 실체가 그렇다.

때문에 이 글은 이어령 비판의 제1탄인데, 막 문화론은 타이밍부터 안 좋다. 그의 제언은 얼핏 문재인 정부의 반미 친중 드라이브에 대한 맞장구로 들린다. 상식이지만 20세기 한국의 성공은 중국 중심 대륙문화에서 벗어나 미국 중심 해양문화로 옮긴 문명사적 대전환 덕분이다. 동시에 농경문명에서 상업문명으로 옮겼다. 이어령 발언은 이걸 접자는 소린가?

그럴 리 없겠지만, 해양문화를 한 100년 실험했으니 이제 그걸 걷어치우자는 제언인양 들린다. 한마디로 황당한 헛소리다. 설사 그게 아니라 해도 대안으로 고유문화로 돌아가자는 '국뽕 선언'이 분명한데, 이 글로벌한 시대에 조선왕조 시절로 복귀하자는 시대착오적 제언인가?

뜬금없는 이어령의 '국뽕 선언'

이어령 식 '아무 말 대잔치'는 매번 그러한데 대부분 공허한 재담(才談)에 그친다. 그런 까닭에 그의 담론이 한국 사회에 무언가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바가 없고, 듣는 순간 그럴싸하지만 돌아서면 남는 게 없다. 결정적으로 사회에 무책임하다. 그의 명성을 높였던 1960년대 에세이가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였는데, 실은 그것부터 그러했다.

거기에 담긴 건 한국풍토에 대한 진부한 자학과 자기비판일 뿐이다. 그걸 "오욕의 역사 4천년을 짊어진 늙은 은사(隱士)" 혹은 "운명애와 순응의 슬픈 풍속"이라고 조롱한 게 전부다. 본래 그건 1962년 경향신문 연재 글이었는데, 당초 신문사가 잡았던 제목은 '한국문화의 풍토'였다.

   
▲ 1934년생 현역인 문학평론가 이어령. 최근 그는 토박이 문화론, 구체적으론 '막 문화' 예찬을 선보였지만, 공허할 뿐더러 위험하다. 논리비약에 알맹이 없고 시대착오적이기 때문이다. /사진=연합뉴스

그 제목이 진부하다고 본 이어령은 우리 토박이말 '바람'과 '흙'을 동원해 살짝 바꿔줌으로써 꽤 세련된 울림의 언어로 바꿔놓았다. 그것도 재주는 재주이겠지만, 이어령에게 그 이상의 통찰력은 없다는 게 내 판단이다. 그리고 그 글은 대통령 박정희에게 상당 부분 빚지고 있다. 왜? 그 직전 박정희 역시 한국사를 "퇴영과 조잡과 침체의 역사"로 규정했다.

단 단순한 개탄이나 관찰에 그치지 않고, 다시는 가난하지 아니한 나라를 만들자고 작심했고, 끝내 역사를 온통 바꿔놓는데 대성공을 거뒀다. 그럼 이어령의 역할은 뭘까? 이런 변화의 곁에서 한국인의 염장 지르는 글을 만져 자신의 이름을 좀 높였을 따름이다.

이어령 역할 이젠 끝났는지도…

훗날 그는 '축소 지향형의 일본'으로 냅다 방향을 틀었는데, 그것 역시 근거 없는 일본론에 불과하다. 그 결과 오늘 날 우리의 뒤틀린 반일정서와 함께 한국문화에 대한 헛된 자부심을 심어준 게 전부가 아닌가? 동시에 그건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에 등장하는 한국에 대한 비하와 180도 달라진 '얼치기 민족주의' 시각에 편승한 것이 아니던가?

좋다. 그의 일본론이 진정 책임있는 것이라면, 한일 파국의 이 국면에서 무언가 원로다운 발언했어야 했다. 한일문제가 아니라도 지난 수십 년 사회 갈등과 현안을 놓고 그가 중심 잡는 역할을 해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나? 이어령은 평생 양지를 따라다녔고, 손에 흙을 묻혀본 일이 없다.

그래도 다행은 '디지로그' 담론이다. IT 정보화시대에 때맞춘 타이밍이 나쁘지 않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어쨌든 그의 문화담론이란 실체적 근거가 거의 없다. 감각적 말놀이나 패션으로서의 문화에 그치고, 매번 공허하다. 이런 한계는 이어령 식 문화란 정치-경제-사회부문을 제외한 나머지 영역을 말하며, 즉 칸막이 식 문화론을 전제로 하는 탓이다.

그건 시효 만기가 된 지 오래다. 우리시대의 문화란 정치 경제 사회를 끌어안은 '전체로서의 세계'이고, 통찰로서의 문화다. 이에 비춰 이어령은 심하게 말해 문화 만담꾼 혹은 지식 사기꾼에 속하지만, 그런 지적은 문화계 원로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 절제하는 게 옳다고 본다.

더구나 그는 요즘 암을 통보받은 뒤 건강이 썩 안 좋다는 말도 들었다. 단 젊은 재사(才士)가 그런 문화론을 개진한다면 잠시 눈감아줄 법도 한데, 원로가 아직도 그러하니 적지아니 질린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런 나의 발언에 그는 노여워할 수 없다. 본래 갓 스물 재사(才士)이던 그는 1950년대 기성 문단에 대한 강렬한 저항으로 출발하고, 그걸로 자리를 잡지 않았던가?

시인 서정주. 소설가 김동리 등 당대의 거물들을 상대로 그가 벌였던 논쟁도 그 맥락이다. 당시 입에서는 독설이 튀어나왔다. "문학판을 갈아엎자!"는 화전민 문학 선언도 그때였다. "우리는 화전민이다. 저 불순물을 땅의 자양으로 바꾸는 마술이, 성실한 반역이 우리의 운명이다."

그게 오늘날의 이어령을 만들었다면, 젊은 세대로부터 쓴 소리를 듣는 것도 당연지사가 아닐까. 단 오늘 미진한 이어령론, 그리고 막 문화론에 대한 본격 비판은 제2탄으로 이어진다. 그의 철학 부재 그리고 왜곡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그 글에서 마저 보여드릴 참이다.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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