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세 번째 남북정상회담을 평양에서 개최하고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한지 1년이 지났다. 문 대통령은 2018년 9월19일 평양의 ‘5.1 경기장’에 서서 남한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북한주민을 상대로 연설하는 기록도 남겼다.

또 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근본적인 적대관계 해소와 경제협력 및 교류,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까지 포함한 평양공동선언도 채택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북한과 미국 간 비핵화 협상이 진척되지 못하고, 특히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이 합의없이 결렬되면서 남북관계도 동력을 잃고 멈춰 선 상태이다.

남북은 평양정상회담 약 한달 뒤인 지난해 10월 고위급 회담을 열고 철도·도로 협력, 산림 협력, 보건의료 협력, 2020년 도쿄올림픽 공동 참가 등 체육 협력, 이산가족 문제 해결 등 평양선언 이행을 위한 분야별 일정을 마련했다.

평양공동선언으로 합의된 사항 중 남북이 그나마 실천한 것은 ‘연내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이다. 이마저도 대북제재 때문에 ‘착공 없는 착공식’으로 열었다. 또 남북 환경·산림 협력 추진 노력, 방역 및 보건·의료협력 강화, 2020년 하계올림픽 공동진출 등은 부분적으로 이행됐다. 

평양정상회담의 가장 구체적인 내용으로 합의됐던 9.19 군사합의에 따라 남북은 지상·해상·공중에서의 상호 적대행위 중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GP) 일부 철수 등 실질적인 조치가 취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가동, 조건부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정상화, 금강산 이산가족 상설 면회소 개소, 이산가족 화상상봉 및 영상편지 교환, 평양예술단 서울 공연, 동창리 엔진시험장 및 미사일 발사대 영구 폐기,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등은 기약 없는 상태이다.

특히 북한은 최근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남한 당국의 첨단무기 도입이 평양공동선언과 군사합의 위반이라고 주장하면서 지난 5월부터 KN-23(이스칸데르급 단거리미사일과 ‘신형 대구경조종방사포’ 등 발사체를 잇달아 시험 발사해왔다. 

이에 더해 북한은 관영매체 논평이나 당국자 성명을 통해 남한에 대한 비방 수위를 높여가더니 급기야 지난 8월16일 전날 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정말 보기 드물게 뻔뻔스러운 사람”이라며 “삶은 소대가리도 양천대소(하늘을 보고 크게 웃다)할 노릇”이라고 조롱했다.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오전 백화원 영빈관에서 두번째 평양정상회담을 갖고 평양공동선언 합의서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평양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이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남한과 대화를 단절하다시피 하고, 문 대통령에게까지 노골적인 비난을 퍼붓는 것에 대해 평양공동선언에 명시한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미국의 상응조치’가 합의되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북한으로서는 문 대통령의 중재 역할에 기대가 컸지만 하노이에서 미국으로부터 ‘대북제재 일부 해제’를 거절당하면서 회담 결렬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우리정부를 신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북한의 불만은 지난 4월13일 김 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돼야 한다”며 문 대통령을 향해 비꼬는 발언을 하면서 확인했다. 이후 북한은 담화문 등을 통해 수차례 남한에 대해 “북한 문제에 끼어들지 말라”며 “미국과 상대하겠다”고 경고해왔다.    

하지만 정부는 북미 실무협상이 재개될 조짐이 보이자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 복원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강조한 바 있어 이산가족상봉이 최우선 과제가 될 전망이다. 하지만 이달 말로 예정된 북미 실무협상이 어떻게 진전될지에 따라 남북관계 복원 여부도 달려 있다.

그동안 문재인정부는 남북관계를 북미관계에 종속되지 않는 선순환 구조로 가져가기 위해 노력해왔고, 이를 위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화두로 삼아왔다. 하지만 최근 남북관계의 소강 국면에서 북미관계라는 큰 틀 속에 갇힌 취약성만 확인한 셈이다. 정부는 9.19 평양공동선언 1주년 기념행사도 단독으로 치를 계획을 세우고 북측에 공동개최를 제안하지도 못했다.

결국 북한의 비핵화가 본궤도에 올라야 남북관계를 비롯한 동북아 정세가 예측 가능해질 수 있지만 이번 북미 간 비핵화 실무협상도 한반도 비핵화 정의를 내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상황이다. 북미는 1차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북미관계 진전에 대한 큰 틀에 합의한 뒤 2차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제재 완화’의 벽에 부딪쳐 비핵화에서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번 북미 실무협상에서 북한은 지난 하노이회담을 이어가는 차원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로 시작하고 싶겠지만 미국은 스티브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의 지난 발언으로 비추어볼 때 북한의 핵활동 중단으로 협상을 풀어가려고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럴 경우 핵시설 신고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여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과 미국의 상응조치가 관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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