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산업안전보건법, 지난해 12월 국회서 17일만에 졸속 통과
고용노동부 장관, 사고 발생 시 자의적 작업 중지 명령 가능해
사업주, 현장 내외 위험 22개소 책임…재계 "기업하는 게 죄냐"
지방고용노동청별로 대처 방식 달라 '엿장수 행정' 논란 일기도
   
▲ 지난해 12월 27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투표 결과가 전광판에 표시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다는 취지로 통과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일명 '김용균법')이 중소·중견기업의 경영난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15일 화학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통과된 개정된 산안법에는 중소·중견기업들이 마주할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산업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도 아님에도 기업활동 자체를 못하게 막을 법규가 있기 때문이다.

현행 산안법은 위험 업무를 하청기업에 위탁하려거든 반드시 고용노동당국의 사전 승인을 얻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고용노동부 장관은 감독관을 통해 사업 현장에서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자의적으로 작업 중지 명령도 내릴 수 있다. 하청기업 직원이 근무하는 사업장 내외의 위험장소 22개소에 대한 책임도 명시하고 있다.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이라 불리는 개정 산안법의 실체다.

실제 적용사례도 있다. 지난 4월 3일, 충청남도 서천군 소재 한솔제지 장항공장에서는 △제지공장·물류설비 건설 △폐기물 수집·운반 및 발전 △수처리 설비를 담당하는 계열사 한솔EME 소속 근로자 1명이 전기 설비 점검을 하던 중 기계에 끼어 숨지는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발생 직후 대전지방고용노동청 보령지청은 산안법상 중대재해라며 전면 작업중지 결정을 내렸고, 길어지는 사고 조사 탓에 한솔제지의 21일간 모든 생산 라인 가동이 중지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한솔제지는 400억~500억원 수준의 손실이 난 것으로 추산됐다.

산안법이 현재와 같이 바뀐 것은 2016년 5월 28일에 있었던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업체 직원 사망사고와 지난해 12월 충남 태안군 소재 한국서부발전의 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한국발전기술 계약직원 김용균씨의 사망사건에 기인한다. 당시 가장 큰 고용노동 이슈는 탄력근무제였으나, 이 같은 사고들이 발생하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여론에 떠밀려 산안법 전부 개정안 발의를 한 후 17일만에 본회의를 통과시켰다. 소위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한다'는 취지의 '김용균법'에 대해 재계에서 졸속 개정이라는 불만이 나오는 배경이다. 

법 시행 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재계 중 특히 중소·중견기업계는 산안법 하위 법령에 작업중지에 관해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반영되길 바라고 있다. 또한 위험 작업에 대한 하청을 금지한다고 해서 안전이 담보되는 건 아니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 한다. 정규직 역시 비정규직 근로자와 마찬가지로 중대 사고가 발생 시 사망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부는 산업 재해 처벌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노동계 요구에 산안법 전부 개정 당시 사망 사고가 발생할 경우 최소 징역 1년형을 도입하고자 했다. 그러나 재계가 반발하자 정부는 오히려 최대 10년형을 선고할 수 있게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과도한 처벌이라는 반발에 부딪혀 철회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선 "기업하는 게 죄냐"는 푸념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이와 관련, 지난 6월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4단체는 "작업중지 명령의 실체적·절차적 세부 요건이 규정돼 있지 않아 작업중지 명령이 무분별하게 남발되는 문제점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재계 공동 의견을 담아 고용노동부에 제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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