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29년 만에 평양으로 원정에 나선 남북 축구경기가 생중계도 관중도 없이 치러지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H조 3차전인 남북 경기는 0-0으로 무승부로 끝났다. 그런데 이날 경기 진행 상황은 ‘전반 20분 현재 0:0’ 식의 문자 중계로 파악할 수 있었다. 북한 당국이 방송 중계를 할 수 있는 취재단의 방북을 불허하고, 자신들이 촬영한 중계 영상의 실시간 송출도 거부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날 경기는 당초 4만여명으로 예상되던 북한측 관중이 단 한명도 없는 ‘무관중’으로 진행됐다. 한때 압도적인 홈 관중단 응원이 우리선수들에게 부담 요소로 떠올랐지만 부질없는 기우가 됐다. 북한이 자국 응원단까지 김일성경기장에 입장시키지 않으면서 이날 경기는 응원, 취재, 중계가 없는 ‘3무 축구’로 치러졌다.

전대미문의 ‘깜깜이’ 축구경기가 벌어진 것은 그동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톱다운 식 외교로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이미지가 개선되고 있던 시점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국제 룰과 스포츠맨십에 의해 진행되는 운동경기에까지 정치적 이유로 어깃장을 부리는 북한의 처사가 국제사회에서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까지 남북 간, 북미 간 대화가 이어져온 것이 바로 지난해 2월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의 참가 및 남북한 고동 입장, 남북 단일팀 구성 등에 따른 것이었음을 상기해볼 때 이번에 남북 평양 예선전에서 보여준 북한의 행보는 정상국가 이미지를 깎아내린 이상한 행태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5일 한국과 북한 축구대표팀이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H조 3차전을 관중이 없는 상태로 벌이고 있다./대한축구협회

이번 남북 경기에 관심이 갖고 북한을 방문한 지아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도 “역사적인 경기인 만큼 관중석이 가득 찰 것으로 기대했는데, 경기장에 팬들이 한 명도 없어 실망스러웠다”고 평가했다. 

그는 15일(현지시간) FIFA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생애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한 소감을 밝히며 “경기 생중계와 비자 발급 문제, 외국 기자들의 접근 등에 관한 여러 이슈를 알고 놀랐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명백히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세상을 한순간에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순진한 것”이라며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을 북한 축구협회에 제기했으며 축구가 북한과 세계 다른 나라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번에 북한은 경기를 일주일여 앞두고 선수단 초청장은 발급하면서도 기자단과 중계진 수용 여부에 대해 입장을 유보하더니 결국 취재진은 물론 응원단의 입국까지 거부했다. 더구나 한국의 FIFA 랭킹이 37위로 113위인 북한을 압도하는 모습을 주민들에게 보여주기 싫어서 택한 결정이라면 더욱 실망스럽다.

그나마 평양땅을 밟을 수 있었던 선수단들은 육로나 직항로 대신 중국 베이징을 경유해야 했고, FIFA 규정에 따라 축구경기 때 태극기를 올리고 애국가는 부를 수 있었다. 북한 당국이 제공키로 한 것은 경기 실황을 담은 동영상 DVD을 선수단 귀국길에 전달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통일부는 안타까움을 표하면서도 이를 대북정책과 연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은 16일 정례브리핑에서 "어제 경기가 우리측 응원단이나 중계없이 치러진 데 대해서 정부로서도 안타깝고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면서도 "이번 경기는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그 자체로, 기존의 어떤 남북 합의에 의한 체육교류로서 진행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의 남북관계와 직접적으로 연관해서 말씀드리기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같은 날 “굉장히 아쉽고 안타깝게 생각한다. 무엇보다 평창올림픽이라는 스포츠경기를 통해 한반도 평화의 물꼬를 튼 것처럼 스포츠가 그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며 “정부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그렇게 되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15일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남북전의 결과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짤막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보도하지 않았다. 지난달 평양에서 치러진 레바논전의 경우 경기 영상을 조선중앙TV로 방영했으나, 이번 남북전은 방영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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