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공도정책, 바다를 버린 조선 조정
   
▲ '대마도는 본시 우리나라 땅'이라고 쓰여진 돌비석 [사진=미디어펜]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걸작 홍콩 무협영화 '동방불패2'에서는 주인공(이연걸 분)이 해적 소탕을 위해 명나라 수군기지를 찾아갔지만, 군선도 군사도 하나 없이 텅 빈 군영을 허탈하게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명나라는 한때 환관 정화가 대함대를 이끌고 동남.남아시아 일대 바다를 누비며 원정을 다녔던, 해군 대국이었다.

그러나 바다에서의 영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일본의 해적인 왜구가 기승을 부리자, 명나라 조정은 '해금'(海禁)정책을 썼다. 국민들이 아예 바다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해군도 폐지해버렸다.

그렇게 바다를 버린 것은 '미래'를 버린 것이었다.

청나라도 비슷한 노선을 택하면서, 서양세력이 바다의 주인이 되고, 중국은 서양의 반식민지가 돼 버렸다.

이런 어리석음은 조선도 예외가 아니었다.

조선 역시 왜구가 두려워, 우리 영토인 섬들을 비우고 백성들을 육지로 강제 이주시키는 '공도'(空島)정책을 택했다. 육지로 오지 않거나, 몰래 섬으로 나간 백성들은 지키려 하지 않았다.

이것은 백성을, 또 바다를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조선에도 수군은 있었지만,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사가 되기 이전, 조선 수군은 바다에서 싸우지 않고 육지에서 전투하고, 바다라도 선상 백병전이 기본 전술이었다.

버려진 섬 백성들은 조선 조정을 따르지 않았다. 자신들을 보호해준다면, 어느 나라가 섬을 점령해도 상관이 없었다.

대표적 케이스가 영국이 거문도를 무단으로 점령했을 때, 이들과 잘 공존했던 거문도 백성들이다.

울릉도에 있는 독도박물관 아래쪽에는 '대마도는 본시 우리나라 땅'이라고 한글과 한자로 쓰여진 돌비석이 있다.

그렇다. 대마도(對馬島. 쓰시마섬)는 분명 우리 땅이었다. 신라 때에도 신라 땅이었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 세종 때는 '왜구의 소굴'이었던 대마도를 무력으로 정벌, 복속시켰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조선은 대마도에 관리나 군대를 파견하지 않았고, 백성을 이주시키지도 않았다. 조공과 제한적인 통상만으로 그만이었다.

그러는 사이 대마도는 어느 새 일본 땅이 돼 버렸다.

임진왜란 직전, 대마도 도주는 조선 정벌에 앞장서라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요구에, 비밀리에 조선 조정에 사람을 보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물었다. 몇 번이나 그랬다. 그러나 조선 조정의 대답은 없었다.

최신 무기인 조총도 2자루나 조선에 바쳤지만, 조정은 이를 창고에 처박아놓고 아무 관심을 갖지 않았다.

결국 대마도 도주는 조선을 침략한 왜군의 최선봉이 됐다. 그리고 대마도는 영원히 일본의 땅이 되고 말았다. 

하마터면 울릉도와 독도도 그렇게 될 뻔했다.

울릉도 역시 공도정책의 희생물이 되어 백성들이 안 사는 빈 섬이 됐다. 왜인들이 이 곳을 마음대로 드나들며 황금어장을 싹쓸이하다시피 한 것은 당연했다.

이를 안 안용복 등 일부 의롭고 용감한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울릉도, 독도를 지키고자 도쿄의 일본 막부까지 찾아가지 않았더라면, 울릉도와 독도 역시 대마도처럼 일본 땅이 됐을 것이다.

우리 스스로 지키지 않는 땅과 바다는 결코 우리 것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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