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부,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 열어 자판기업·LPG 소매·서점업 꼽아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 "적합 업종이란 건 있을 수 없어"…정부 규제 지적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중소벤처기업부가 일부 업종을 '생계형 적합 업종'으로 지정함에 따라 시장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6일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중기부는 지난 4일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를 열고 '자동판매기 운영업'과 'LPG 연료 소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했다.

이 조치에 따라 대기업은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에 따라 향후 5년 간 예외적 승인사항 이외에 사업의 인수‧개시 또는 확장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이를 위반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내지는 1억5000만원의 벌금과 함께 매출의 5%이내에서 이행강제금을 내야 한다.

중기부 상생협력지원과 관계자는 "자판기 운영업의 경우 소비자 기호 변화와 카페·편의점 등 대체시장의 성장으로 자판기운영 시장규모가 위축되고 있다"며 "대기업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해 나감에 따라 소상공인들은 매출 및 영업이익이 크게 악화되는 등 전반적으로 영세하게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며 정책 시행 배경을 밝혔다.

또한 중소‧소상공인 거래처의 상당수가 대기업으로 이전되는 등 시장 경쟁에 있어 소상공인의 취약성을 고려해 안정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중기부의 설명이다.

정부가 이 같이 족집게 식으로 대기업의 시장 참여를 막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2일 중기부는 '서적·신문 및 잡지류 소매업(이하 서점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했다.

이 당시 중기부 관계자는 "관계 전문연구기관 등과 공동으로 실태조사를 벌였다"며 ""전문가‧소비자 의견수렴·대-소상공인의 상호 협의 결과·동반성장위원회의 추천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고 말했다. 역시나 마찬가지로 정책 도입과 관련해 "최근 대기업 서점의 급격한 사업 확장과 이에 따른 인근 소상공인 서점의 매출 감소 및 폐업 증가 등 소상공인의 취약성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부가 이 같은 방침을 세운다고 해서 소상공인들의 허리가 펴지진 않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전임 정부와 국회는 이른바 '도서정가제' 또는 '책통법'으로 불리는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을 손질해 시행에 나선 바 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도서정가제는 모든 도서에 정가를 적용하는 것으로, 자본력이 뛰어난 대형·온라인 서점 및 대형 출판사의 할인공세를 제한하는 제도다. 중·소규모의 서점 및 출판사도 교보문고나 반디앤루니스, 영풍문고와 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해 지식 전달의 기초적인 매개체인 책이 시장주의적 가격경쟁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도입 취지다.

그러나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말과 같이 이 법은 오히려 중소 도서업자들의 몰락을 불러왔다. 1994년 5700여개 달했던 동네 서점은 2013년엔 1700개 수준으로 줄었고, 현재는 경영난이 가중돼 계속해서 문을 닫고 있다.

이 때문에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과 같은 정부의 시장 개입도 도서정가제와 마찬가지로 어떤 방식으로든 소상공인의 경제난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란 지적이다.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공무원들은 문제 해결자가 아니라 트러블 메이커 그 자체"라며 "설계주의에 빠져 상생을 결과가 아닌 목표로 잡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규정했다. 조 교수는 "중소 상공인 적합 업종 지정은 그 자체로 넌센스이며, 마치 19세기 프랑스에서 양초 장수들을 위해 낮에도 커튼을 치도록 한 것과 같다"며 "정부가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 교수는 "업계에서 살아남으면 적합한 것이고, 퇴출되면 아닌 것"이라며 "적합 업종이란 건 있을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일전에 정부가 대기업의 조명기구 시장 진입을 규제하자 오스람이 국내 시장을 석권했다"며 "호랑이를 내쫒으면 늑대가 오는 것을 모르는 정부의 규제 탓에 애먼 국내 기업들만 피해를 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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