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태우 기자] 중국 시장에서의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위기 돌파를 위해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이 내놓은 해법은 '신남방정책'이었다.
중국 못지않게 많은 인구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시장을 공략해 중국에서의 부진 만회는 물론, 글로벌 자동차시장의 저성장 추세 속에서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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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이 지난 7월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현대자동차그룹 |
정 수석부회장은 26일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비롯한 인도네시아 정부 핵심 관계자들과 인도네시아 공장 건설을 위한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이날 정 수석부회장은 "현대차의 현지 공장 설립은 인도네시아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원을 바탕으로 이뤄낸 성과"라며 "인도네시아 정부의 친환경차 정책에 적극 부응하고, 아세안 지역 발전에 지속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차가 아세안 지역 완성차 생산기지 구축 검토에 나선 것은 중국 시장에서의 부진이 본격화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사태 발생 이듬해인 2017년이다.
당시 아세안 시장 공략을 위해 신설된 전담 조직은 3년여 간 면밀한 시장 조사를 거쳐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동쪽으로 약 40km 떨어진 브카시 시 '델타마스 공단'을 공장 설립 지역으로 최종 낙점했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서 판매실적이 사드사태 이전 대비 반토막 이하로 떨어졌고,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전반적으로 저성장 기조를 이어가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아세안, 그 중에서도 인도네시아를 선택한 것이다.
아세안 최대 자동차시장인 인도네시아는 지난해 약 115만대 판매, 연 5% 수준의 안정적인 경제 성장, 2억7000여만명에 달하는 세계 4위 인구, 평균 연령 29세의 젊은 인구 구조 등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큰 시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베트남, 싱가포르 등 아세안 주요국 자동차시장 역시 지난 2017년 약 316만대 수준에서 2026년 약 449만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아세안 국가들이 하나의 시장으로 묶여 있다는 점도 큰 강점이다. 아세안 국가들은 아세안자유무역협약(AFTA)에 따라 부품 현지화율이 40% 이상일 경우 역내 완성차 수출 시 무관세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현대차는 이같은 이점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인도네시아에 생산기지를 구축해 아세안 주요 국가로 수출할 경우 현대차는 국가별로 최소 5%에서 최대 80%에 달하는 완성차 관세 장벽과 자국 자동차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비관세 장벽을 피해 연간 450만대 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
현대차는 내달 인도네시아 공장을 착공해, 2021년말 15만대 규모로 가동 예정이며, 향후 최대 생산 능력 25만대로 확대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생산되는 완성차를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 아세안 역내로 수출할 예정이며, 호주, 중동 등으로의 수출도 검토 중이다. 완성차와는 별도로 연 5만9000대 규모의 CKD(반제품 조립) 수출도 계획하고 있다.
걸림돌은 일본이다. 아세안 시장은 '일본의 텃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도네시아 자동차 판매 상위 10위 중 9개가 토요타, 다이하쯔, 혼다, 스즈키, 미쯔비시, 히노, 이스즈, 닛산, 닷선 등 일본 업체들이다. 인도네시아 내 일본차 점유율은 90%를 상회한다.
인도네시아와 함께 아세안 내 양대 자동차 시장인 태국 역시 토요타, 이스즈, 혼다, 마쯔다, 닛산, 미쯔비시 등 일본 업체들이 대부분 점령하고 있다. 아세안 시장 자체가 비(非)일본계 업체가 진출하기 쉽지 않은 곳이다.
이 때문에 현대차는 지난 3년여 간 아세안 지역 완성차 공장 설립 검토 과정에서 해당 사안이 언급될 때마다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여 왔다.
다만 현대차의 인도네시아 투자가 우리 정부가 추진해 온 신남방 정책과 일치한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정부의 신남방 정책과의 시너지가 발휘될 경우 현대차의 아세안 시장 공략은 상당한 힘을 받을 수 있다.
실제, 현대차는 이번 투자를 결정하는 데 있어 우리나라와 인도네시아간 신뢰 관계 구축 및 교류 확대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지난 6월 일본 G20 정상회담에서 경제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했으며, 10월에는 양국 간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이 실질적으로 타결됐음을 공동 선언했다.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에 따라 높은 수준의 시장 개방에 합의함으로써 자동차 강판 용도로 쓰이는 철강 제품(냉연, 도금, 열연 등), 자동차부품(변속기, 선루프) 등에 대한 관세가 즉시 철폐됐다.
자동차 및 연관 산업의 수출 확대에 따른 국내 경제 활성화뿐만 아니라 아세안 현지에서의 우호적인 경영 환경 조성 등도 기대되는 대목이다.
현대차는 '현지화 전략'을 통해 일본차에 익숙해진 아세안 소비자들을 공략한다는 방침이다. 인도네시아 공장 생산 모델로는 아세안 전략 모델로 신규 개발하는 소형 SUV(B-SUV), 소형 MPV(B-MPV) 등과 아세안 전략 전기차 모델 등을 검토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동남아는 오랜 기간 일본 기업들이 점령해온 시장으로, 현대차가 후발 주자의 입장에서 시장에 안착하려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며 "하지만 거대한 잠재력을 가진 동남아 시장을 언제까지고 외면할 수는 없는 만큼 이번 도전은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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